[전장의 피아니스트] 폐허와 음악

며칠 전에 노예 무역 전 아프리카를 다룬 영화는 없냐는 질문을 한 분이 계셨는데 생각해보니 내전이 없는 중동 영화도 못 몬 거 같네요.
'음악이 금지된 시리아의 피아니스트 카림이 평화를 찾아 유럽으로 가는 난민선에 타기 위해 피아노를 파는 이야기'
로 축약할 수 있는 영화는 매일같이 총과 비명 소리가 들리는 중에도 서로를 위한 작은 친절을 아끼지 않고 희망을 붙드는 이들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적나라하게 내전의 모습을 보여주며 참혹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소리로 비참함을 표현하고 화면은 용기를 보이는 자들을 비춥니다.
레바논 출신의 감독이 만든 단편에서 확장된 작품이라고 하니 카림의 이야기가 실화라기보다는 음악이 금지된 상황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실화에 기반했다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카림이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고 피아노를 고치고 조율하고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인게 중요한거겠죠.
마지막 클로즈업은 가장 카타르시스가 넘쳤습니다. 단편에서 출발해서인지 좀 돌아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받는 영화입니다.
씨네큐브 2관은 처음 가봤는데 의외로 사운드가 괜찮네요.
(스포)
영화에서 인상 깊게 쓰인 곡이 베토벤교향곡9번과 베토벤피아노소나타21번입니다.
환희로 가득찬 순간에 자주 쓰이던 합창이 분명 즐거운 일상의 bgm으로 쓰였는데 불안요소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지막 평화같다는 생각과 함께 역설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고조시킵니다. 찰나의 행복, 마지막 희망이라는데서 폭탄 스위치를 누르는 손을 슬로우로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전장의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에 걸맞게 폐허를 울리는 발트슈타인은 이게 무슨 곡인지는 몰라도 한 번 쯤을 들어봤을 법한 곡입니다. 피아노를 오케스트라 체급으로 만드는 대곡이면서 태양신에 비유되는 화려한 주제, 베토벤을 빈에 유학보내고 하이든에게 소개하는 등 심적으로 물적으로 베토벤을 향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베토벤을 베토벤으로 만든 사람 중 하나라 꼽히는) 후원자에게 헌정된 곡이라는 점에서 왜 그 순간 이 곡이어야 했는지도 분명해보입니다. 특히 이 곡은 음악이 금지된 상황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은 예술 이상의 것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라 말한 감독이 선곡한거라 더 의미가 크지 않나 합니다.
(베토벤이라는 불굴의 음악가에 대한 이미지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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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나오는 여자는 총을 든 계기, 그들이 왜 공포대상인지 말하는 걸 보면 걸스 오브 썬이 모델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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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에 피아노 스턴트가 연주 대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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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보고나왔는데... 선곡에 대한 멋진 해석이군요!
영화가 매끄럽진 않았지만 현장감이 엄청났습니다.
전 인트로의 트로이메라이씬이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