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영화를 보면서 혼자 지하철을 탔던 게 언제였더라? 했는데 딱 주인공들 즈음이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너가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냐고 걱정하던 부모님 모습도 생각나고요 ㅎ
이렇게 길게 지하철을 타고 가 본 적 없지만 친구들과 함께 호기롭게 왕복 몇 시간 종착역을 향해 떠나는 발걸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느껴집니다.
"세상의 끝"을 주제로 한 사진을 찍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종착역을 찾아간다는 부분에서 이미 거긴 선로가 이어져 있어서 원하는 풍경이 아닐텐데, 싶었지만 영화는 애초에 종착역에 도착하는게 목적이 아니었다는 듯 선로의 끝을 찾고 싶은 14살 4명의 여정을 더 멀리 이어갑니다.
이미 무리가 된 3명에 끼어든 전학생 1명이라는 조합에서 혹시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가 파생되는 것인가 하는 조마조마함을 갖고 본게 민망하리마치 어색한 듯 친밀한 듯 조심스레 서로를 향해 삐그덕거리서도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소담하니 몽글몽글한 감성이 피어오르게 합니다. 어색하게 속내를 꺼내본다든가, 친인척의 죽음을 인생 경험을 더 많이 쌓은 것마냥 이야기하며 공통점을 만들려 한다든가 아직은 어리숙한 관계맺기는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아득한 감상에 젖게도 합니다. 그 때는 지도앱이나 보조배터리도 없었지만
관람 할 때 주변에 중년남성 일행, 중년여성 일행이 따로 따로 있었는데 끝을 찾는다면서 명확한 끝이 없는 소소한 신변잡기식의 이야기에 아저씨들은 결말이 없다며 불만을 표하고 아줌마들은 우리도 그랬었지 라며 공감을 표하시더군요. 30대 남성 감독이 만든 여중학생의 일기 같은 영화는 어린 시절 추억을 얼마나 끌어내 공감할 수 있는가에 호불호가 갈릴 듯 합니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는 중학교 첫 여름방학에 왜 세상의 끝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얘들에게 주었나 싶긴한데 또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있나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가 산티아고 도착 직전 작은 마을에서 어떤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를 서쪽 끝 피니스테라에 가져가달라는 부탁을 받아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꽂아두었는데 노쇠하여 더 이상 멀리 갈 수 없는 몸 대신 오래 써 온 지팡이를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둬달라는 건 무슨 마음일까 했는데 막상 도보로 느지막이 도착한 피니스테라가 저한텐 별 감흥이 없었어요 😂
직전 마을에서 세상의 끝은 여기 아니냐 하며(생각해보니 이 날도 폭우가) 감동을 받아서 그런지 ㅎ 서로 포옹하며 축복의 말을 주고받는 다른 순례자들과 달리 바다 보면서 와 날씨 좋네 어제까지 그렇게 비가 오더니만, 여기가 반환점이네 힘들다 이제 가야지, 인증서나 받자 하고 후딱 내려왔거든요.
세상의 끝이래 900km 여정의 끝인데 어떤 기분일까 🥺 했던 기대감은 어디가고 얼레벌레 보낸 게 아쉽기도 한데 한편으론 그냥 거기까지 가는 시간과 만남이 더 무게있는 추억이어서 굳이 거기서 회포를 풀 것도 없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보고 나니 그 때 기억이 나더군요.
끝이 끝이 아니라 그냥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찍고 가는,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한 곳.
필름카메라로 각자의 시각을 기록하기보다 저거 찍자 하며 우루루 찍은 사진과 달리, 폭우와 휴대폰방전으로 오도가도 못하고 인적 없는 마을회관에 갇혀 먼저 가신 이에 대한 추억으로 밤을 보내고 난 뒤 모두가 잠든 아침, 홀로 깨어나 남기는 신발과 바깥풍경
아직은 두려움이 더 큰 노화처럼 걱정과 두려움에 불시착한 곳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출발지일 수도 있다는 낯선 설렘
종착역은 마지막역이면서 첫번째 역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