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초간단 리뷰
1. 시스템과 체제를 원망하는 청춘은 훗날 레지스탕스가 될 것이다. 젊은 혈기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면 1968년의 적군파가 되거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학생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적군파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학생운동의 근본은 같다. 기성세대의 권력 사유화에 대한 반발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체계는 비교적 합리적인 외피를 쓰고 있다. 물론 그 내면에 권력의 사유화는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자본 계급주의'가 뿌리깊게 박혀 금수저는 여전히 금수저고 흙수저는 여전히 흙수저다. 체제에 반발하기에 우리는 '살아야 함'을 강요받았다. 굶어죽어서는 안되며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서 집을 사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기성세대에게 '결혼'이란 삶을 살아가며 거치는 통과의례지만 현대사회에게 '결혼'이란 성공한 자의 특권이다. 가난은 청춘의 권리를 거세시킨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청춘은 돈 벌고 철 드는 일에 더 충실하도록 강요받는다.
2. 그럼에도 청춘에게는 늘 낭만이 있다. 기차에서, 언덕길에서, 오시이 마모루가 앉아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운명처럼 사랑을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낭만적인 청춘의 연애담으로 시작해 기성세대가 만든 틀 안에서 성장해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먼훗날 우리'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닮았다. 오늘날 청춘멜로영화들이 이같은 시대상을 반영한 것에 대해 기성세대는 반성해야 한다. 이들 영화는 일본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그러나 한국의 청춘연애담이 이것과 다를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우리는 '자본 계급주의'가 다룬 비극을 '기생충'으로 목격한 바 있다. 만약 '기생충'을 기우(최우식)와 다혜(정지소)의 관점에서 봤다면 자본 계급주의에 기반한 비극적 멜로영화가 됐을 것이다.
3. '먼훗날 우리'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젊은 시절의 낭만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기차에서, 언덕길에서, 오시이 마모루가 앉아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는 관계를 이어가다 사랑에 빠진다. 가난하거나 어떤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들은 꿈을 꾸고 미래를 상상한다.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난은 젊은 연인에게 현실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이는 사람을 변하도록 만든다. 이는 살기 위해,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 변하는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애정의 변화로 느껴진다. 결국 닿을 수 없는 연인은 이별한다. 그 순간에 청춘은 열차에 타지 못하거나 주저 앉아 눈물흘린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야경이 보이는 옥상 위에서 안부를 묻고 이상했던 하루를 복기한다. 그리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주방에서 바닥으로 다이빙한다. 청춘은 찰나에 지나가지만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4.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먼훗날 우리'와 조금 더 닮았다.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카스미)는 열차 막차시간에 우연히 만났다. 둘은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봤다는 우연으로 가까워지고 밤을 보낸다(풋풋하게).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젠칭(정백연)과 샤오샤오(주동우)가 눈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무기와 키누는 밤거리를 걷는다. 두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꿈을 이야기하며 가까워진다. 집안의 취업 압박에 고민하던 키누는 무기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작은 집이지만 마치 신혼부부처럼 아기자기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터인 무기은 정당한 단가를 받지 못하고 키누는 고된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결국 무기는 키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그림을 내려놓고 취직하기로 한다. '가장의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무기는 키누와의 관계에 소홀해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기로 한다.
5. 무기와 키누가 이별에 이르는 과정은 젠칭과 샤오샤오의 그것과 닮았다. '성공해야함'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길이라고 믿지만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 그렇게 벌어진 관계는 열차에 타지 못한 젠칭(두 사람은 열차에서 처음 만났다)과 밤거리를 보지 않는 키누(두 사람은 밤거리에서 처음 만났다)에게서 드러난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차 안에서 대화를 하며, 무기와 키누는 자신과 똑 닮은 어린 연인을 보며 청춘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화해한 것 같은 무기와 키누가 결국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도 더 이상 서로에게 청춘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21살에 만나서 25살에 헤어졌다. "아직 청춘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찌들어가는 과정을 저리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청춘이 지나갔다고 해도 나름 설득력이 생긴다).
6.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의 경우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인어공주와 왕자처럼 동화같은 사랑을 했던 그들은 결혼이라는 과제 앞에서 현실을 마주한다. '인어공주'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조제는 츠네오와 이별한다. 츠네오도 이를 받아들이지만 주저 앉아 눈물흘린다. 지나가버린 청춘이 후회되고 돌아온 현실의 자동차 소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일본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부족한 부분은 한국판 '조제'에서 설명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빙하는 일본의 조제는 인어공주가 바다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조제(한지민)는 스스로 운전을 하고 장을 본다. 왕자에게 기대서 삶을 사는 인어공주가 아닌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어른이 됐다.
7. 청춘은 찰나에 지나간다. 뜨겁게 연애를 하건, 뜨겁게 체제에 저항해 싸우건 청춘은 언젠가 지나가지만 삶은 계속된다. 27살에 생을 마친 몇 명의 아티스트들을 떠올려 본다. 영원한 청춘이 될 게 아니라면 우리는 청춘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은 청춘의 기억을 머금은 채 지속된다. 젠칭과 샤오샤오, 무기와 키누, 츠네오와 조제는 서로에게 청춘이었다. ('먼훗날 우리' 리뷰를 쓰면서 했던 말이지만) 뜨겁게 사랑을 했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청춘이었다. 삶에 찌들어 더 이상 청춘의 시대정신을 잃었다 하더라도 청춘의 기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로드뷰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무기의 천진난만한 미소처럼.
추신1) 영화보다가 이상하게 공감한 지점: 내가 여자친구에게 처음 사귀자고 말했던 말에도 우리는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를 보고 맥주마시면서 온갖 쌍욕을 하다가 사귀었다(마이클 베이가 이어준 커플). 남녀 사이에 (오시이 마모루처럼)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추신2) '꽃다발 같은 사랑'이 뭘까 궁금했다. 화려하지만 금방 시들어버리는 사랑인가 싶었다. 그런데 꽃다발을 사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금방 시들 것을 안다. 그들은 단지 꽃다발의 화려했던 기억을 주고 받는 것이다. 청춘은 꽃다발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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