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1967)
메밀꽃 필 무렵은 여러 차례 영화화도 되고 드라마화도 되었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바로 1967년 이 작품인 듯하다.
사실 메밀꽃 필 무렵을 영화화하기란 어렵다. 이것은 단편소설이다. 단편소설은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아주 짧고 강렬하게 삶의 한 순간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장편영화로 만들려면 그 안에 살이 붙고 서사가 들어가고 장면을 늘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보여준다는 단편소설의 그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다. 장편영화 메밀꽃 필 무렵은 걸작 단편소설을 그냥 가져오기만 해선 안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 영화화하기 힘든 또다른 이유는, 로드무비의 쇠퇴이다. 예전에는 지리적 거리 혹은 물리적 거리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 사람들이 평생 한번 만나고 두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등, 고향에 영 가지 못하고 장돌뱅이가 되어 떠돌아다녔다는 등 하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물리적 거리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거기에는 아무 신비로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 메밀꽃 필 무렵은 물리적 거리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이다.
주인공 장돌뱅이 허생원이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평생을 이곳저곳 헤멨으나 만나지 못한 것도 물리적 거리가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허생원과 동이가 한밤중 메밀꽃들이 흐드러진 환상적인 길을 걸으며 서로를 발견해가는 것도
길의 신비로움이리라. 오늘날에는 이 길의 감성이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날 보면, 이 영화에서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썰물처럼 사라져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이 영화에서, 과거 사람들이 느꼈을 그 운명과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찬가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이 1967년 영화가 성공한 영화인 이유는,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원작을 잘 살려서가 아니다. 이 영화는 허생원의 인생역정이 구구절절 창작되어 들어갔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다수 들어가있다. 원작에는 없는, 걸출한 코메디언 김희갑의 개그도 들어가있다.
하지만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정서인 아련함, 서정적인 아름다움, 운명에 대한 체념 및 정화라는 주제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박노식, 김지미, 김희갑, 허장강, 이순재 등 걸출한 일급배우들의 열연에 있을 것이다. 원작 소설에 없는 등장인물들이지만, 너무나 생생하고 활기차고 마치 그 시절 장돌뱅이들을 스크린에 옮겨다놓은 듯한 실감을 준다.
떠돌이 약장수 역할을 맡은 허장강은 배가 아파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당나귀에 타고 이 장터에서 저 장터로 떠돌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길 위에서 죽고 말 것이다. 허장강은 이를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냥 걸음을 옮길 수 있는 한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죽어가는 허장강이 팔고다니는 것이
무슨 병이든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사실도 역설적이다. 그의 떠돌이 친구 박노식과 김희갑도 마찬가지다. 친구 허장강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다들 안다. 하지만 슬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자기들 운명도 마찬가지니까. 그렇다고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팔자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다.
죽어가는 허장강을 주막으로 데려가서 "어차피 뒈질 놈, 좋아하는 술이나 실컷 먹고 뒈져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셋이서 술을 진탕 마시고 길을 떠난다.
아들도 아내도 수십년 동안 내팽개치고 장터에서 장터로 떠돌아다니는 김희갑은 현명하고 유쾌한 친구다. 어쩌면 단조로워졌을 지도 모를 이 영화에 흥미와 유머러스함, 다채로움을 부여하는 중요한 연기를 한다. 괴로운 삶을 인내와 유머러스함으로 승화시켜 오히려 즐길 줄 아는 우리 민중의 잘 나타내는 캐릭터다.
박노식이 맡은 허생원 캐릭터는 너무 설명이 부여되어 좀 아쉬운 감이 있다. 단편소설에서는 허생원에 대해 얼핏얼핏 암시만 함으로써 아련하고 애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이 장편영화에서는 허생원에 대해 구구절절 그 사연을 보여주어 관객들을 감동시키려 한다. 그나마 박노식과 김지미라는 두 대배우들의 열연이 있어서 감동을 주었던 것이지, 스토리 그 자체는 신파조 스토리다.
하지만 허장강과 김희갑이 이 영화를 살린다.
박노식 곁에 좌청룡 우백호라고 허장강과 김희갑 캐릭터가 붙는다. 너무나 생생한 장똘뱅이 캐릭터들이 곁에 붙어서 "암, 그렇지" "하아, 난 거기가 좋네"같은 식으로 맞장구를 쳐가며 박노식의 신파조 스토리를 아련한 옛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젊디 젊은 이순재의 투박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도 한몫 거든다.
이들이 함께 한밤중에 달빛과 별빛 받으며 메밀꽃들 사이를 걸어가는 클라이맥스는 정말 명장면이다. 장면만 명장면이 아니라, 이제 못볼 대가급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의 절정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허장강이 길 위에서 죽는 데서 끝난다. 누구도 허장강이 죽는 것을 보아준 이 없었다. 나귀 등에 타고 길을 가는데, 친구들이 보니 벌써 죽어있는 것이다. "허, 이 친구 죽었네 그려." 친구들은 슬퍼하지도 않고 탄식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이것이 우리의 팔자라는 듯. 허장강을 길가에 묻고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난다.
이 영화가 주는 애틋하고 아련한 서정은 단편소설에서 나왔다기보다, 영화 그 자체가 가지는 정교한 장치들에서 나왔다고 본다. 이 영화는 대성공작이다.
서구적인 미녀 김지미가 드센 팔자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며 떠도는 시골처녀 역을 맡은 것이 좀 안어울리는 감이 있지만. 원래 연기를 잘 하는 대배우라서 영화에 플러스가 되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 문예영화의 걸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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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관 다른 느낌일 것 같아서 한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