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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넷플릭스 '낙원의 밤' 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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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감독과 영화를 보다' 프로그램에 김지운 감독님 팀으로 참가했었다. 당시 나는 감독님과 술을 마시며 농담으로 "감독님 뮤지컬 영화 만드시면 어떨지 궁금합니다"라는 식의 물음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나 이제 쉬운 영화 좀 하고 싶다"였다. 김지운 감독은 그 해에 '달콤한 인생'을 개봉했고 바로 전작이 '장화, 홍련'이었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 등 그의 필모 중에서는 '그나마' 쉬운 영화들을 거쳐 두 작품 연속으로 규모가 큰 작업을 하고 나니 쉬운 영화가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08년, 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라피 중 최고 난이도 작업현장을 자랑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개봉한다. 커머셜무비나 옴니버스 영화를 제외한다면 그는 단 한 번도 '쉬운 영화'를 한 적이 없다('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라스트 스탠드', '밀정', '인랑'). 

 

2.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고단한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상상해보자면,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투자금을 받아서 수백명의 스탭과 배우들을 데리고 의견을 조율해가며 장면을 찍는다.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대로 밀어붙이고 싶지만 투자자의 의견이나 관객의 반응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물어뜯기 좋아하는 평론가나 영화기자들이 뭐라고 쓸 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 오래전 종로 단성사나 피카디리 극장 맞은 편 다방 창가에는 영화인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개봉날 자신의 영화가 걸린 극장 앞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상업영화감독이 하는 모든 작업은 수백억의 투자금을 책임지기 위한 노력이다. 만약 내가 "내 어깨의 수백억의 투자금이 있다.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서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하고 관객들에게도 만족을 줘야 한다"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면 중압감에 잠도 못잘 것 같다. 박훈정 감독 역시 그런 부담감을 느꼈을까? '낙원의 밤'에서는 이전 영화와는 다른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3. "'낙원의 밤'은 저예산 영화다"라고 말하면 몇 명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의 장편 입봉작 '혈투'를 제외하고 본다면 '낙원의 밤'은 그가 만든 이전 영화들보다 '돈 쓴 티'가 나지 않는다.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박호산 등 좋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신세계', '대호', '브이.아이.피'에 출연한 배우들보다는 몸값이 비싸지 않은 편이다. 젊은 배우들을 대거 등용했지만 화려한 스케일과 큰 세계관을 가진 '마녀'보다는 미니멀하다. 최신 세단 몇 대가 박살났고 세트장 몇 군데를 짓긴 했지만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의 전작들보다 돈을 많이 쓰지 않은 영화다. 나는 그동안 "제작비가 넉넉해야 감독이 자기 멋대로 영화를 찍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승원 감독이나 이돈구 감독 같은 독립영화계 재능있는 사람이 제작비 넉넉하게 들고 만드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낙원의 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제작비로부터 완전한 해방은 아니지만) '낙원의 밤'은 전작에 비해 다소 해방감이 느껴진다. 

 

4. '낙원의 밤'은 '조폭 느와르'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조직을 위해 개처럼 일했다가 팽 당하는 주인공의 비극적 이야기다. 태구(엄태구) 제주도로 도망와서 쿠토(이기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을 만나 휴식을 얻으며 지낸다. 그러다 태구의 보스인 양 사장(박호산)이 태구를 배신하게 되고 그는 거대 조직에 쫓기는 몸이 된다. 이 간단한 이야기는 90년대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부터 이어진 패배주의적 조폭영화의 관습이다. 이를 고스란히 따르면서 영화는 사소한 것들을 비틀기 시작한다. 우선 이야기의 배경이 제주도다. 조폭영화(이 경우 '느와르'와는 별개의 개념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같이 쓰는 편이다)는 주로 도시의 밤거리를 무대로 삼는다. 네온사인의 '빛'과 밤의 '어둠'이 조화를 이뤄 느와르적 풍경을 만든다. 이것이 제주도로 옮겨지면서 네온사인은 달빛이 비친 바다의 일렁임으로 바뀌고 밤은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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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고 '낙원의 밤'에서는 '마초'가 없다.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태구는 강한 사내지만 그는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채 쫓기다가 당한다. 이는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을 통째로 엎어버린 '신세계' 이자성(이정재)과 대조적이다. 양 사장은 배신자의 캐릭터에 충실하다. '쫓는 자'이면서 마초 역할을 해야 할 마 이사(차승원)는 중요한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헐렁해진다. '힘숨찐'이었던 쿠토는 태구와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박훈정 감독을 스타반열에 올린 '신세계'에 비교한다면 '낙원의 밤'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은 다소 연약하다. 쎈 척 하는 마 이사조차 양 사장이 하는 짓을 보고 "뭐 이런 양아치가 다 있어"라며 기겁한다. 이는 '대호'나 '브이.아이.피'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또 '낙원의 밤'은 누구도 상황을 지배하지 못한다. 관계의 정점에 있던 마 이사나 박 과장조차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정작 그들이 눈치보는 '정점'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권력관계의 정점을 기어이 드러냈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다. 

 

6. 이 모든 차별의 중심에는 '재연'(전여빈)이 있다. 재연은 삼촌 쿠토를 제외하면 이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있다. 그리고 재연은 여자다. 재연은 태구의 조력자처럼 이야기에 뛰어든다. 과거 조폭영화의 공식대로 간다면 재연과 태구는 멜로 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신세계'나 '브이.아이.피', '대호' 등 박훈정 감독의 이전 영화들(혹은 각본을 썼던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에 빗댄다면 재연은 희생자가 되거나 존재감이 거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재연은 태구와 협력관계에 머물면서 끝에 가서는, 마치 '신세계'의 이자성처럼 상황을 정리해버린다. 조폭영화의 물고 물리는 연결고리의 정점에 남은 사람은 여자다. 박훈정 감독은 이 이야기를 '마녀'와 함께 구상했다고 한다. 그때쯤 감독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궁금하다. '브이.아이.피'를 만들고 들었던 혹평이 영향을 준 건지 잘 모르겠다(시기가 안 맞긴 하다). 

 

7. 조폭영화의 정점에 여성 캐릭터를 올려둔 것이 획기적인 시도는 아니다. 이전에도 '차이나타운'이나 '미옥'이 있었고, 뒤져보면 더 나올 수도 있다('조폭마누라'는...넣어두자). 그러나 공식을 전면에 배치하고 노골적으로 배신하는 건 꽤 신선하다. 그것도 한국형 느와르(a.k.a. 조폭영화)의 정점에 있는 '신세계'를 만든 사람이 한 일이라 더 신선하다. '낙원의 밤'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이 같은 시도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공개 직후 관객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신세계'의 카리스마에 익숙한 관객들은 아직 그걸 더 보고 싶은 모양이다. 웨스 크레이븐은 '스크림'을 만들면서 스스로 창조한 슬래셔 무비를 끝장내버렸다. '낙원의 밤'은 "조폭영화의 '스크림'"이 될 수 있었지만 거기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낙원의 밤'은 '스크림'처럼 장르를 끝장내는게 재미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했다. 

 

8. 결론: '낙원의 밤'은 장르의 관습을 비틀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무기력한 캐릭터들이 관습대로 행동하는 과정이 큰 재미를 주지 못한다. 이것이 마지막 장면을 향한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후반부의 드라마도 약하다(마 이사가 재연을 살려둘 때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다. 적어도 '신세계'의 마지막 장면만큼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했다). 박훈정 감독은 정말 이 영화를 마음대로 찍었을까? 혹시 돈은 덜 주면서 간섭은 심한 투자자를 만난 것은 아닐까? 어느 쪽이건 '낙원의 밤'에 대한 아쉬움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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