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익무시사] 장소와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스포)
※ 이 글에는 <아무도 없는 곳>의 스포일러가 담겨져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안 봤거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이 글에서 나가거나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몇년전에 어떤 영화 모임을 통해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나머지 2, 3차까지 가다 마지막에는 근처에 살던 사람의 집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 집은 한옥이었고 마당에서 장작불을 피울 수 있는 운치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장작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원을 그린 형태로 모여 앉아 술이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풍경이었죠.(마침 그날 본 영화도 <풀잎들>) 밤이 깊은데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영화 얘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개인의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몇년전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정신없는 상황과 소중한 사람을 보냈던 감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줬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나서 그 마음정리하는데 3년 정도 걸렸다고 하면서 과거 조상들이 3년상을 치루는 이유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그만큼 필요해서 그랬던게 아닐까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속내를 얘기할 수 있었던데는 그때의 공간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가 어느정도 도움을 주지않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씁쓸한 감성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보다 보면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극중 소중한 존재를 상실한 사람들에게서 부모를 떠나 보낸 사람의 모습이 연상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대화하는 장소의 분위기가 마치 과거 한옥에서 다같이 이야기하던 풍경을 보는 것같았습니다. 영화가 너무 잔잔하거나 극적이지 않고 어렵다는 반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했기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정리의 하나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주인공 창석에게 하는 이야기도 하나의 마음정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제는 그때 모였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도 기억할 수 없고 그때의 느낌과 분위기만 기억속에서 맴돕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때의 분위기와 풍경을 아련히 추억해봅니다.
P.S - 강변에 아직 렌티큘러 포스터가 남아있습니다.
포스터 재고 지점 스포일러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