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결말 부분의 대사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말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당연히 스포가 있습니다)
작년에 영화관에서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을 정말 재밌게 봤었네요. 다만 결말부분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근데 영어원문을 찾아보니 제가 오해하고 있었더군요. 번역이 좀 아쉽다고 생각해 글 올려봅니다.
맨 마지막에 아래 두 사람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끝을 맺죠. 줄쳐놓은 표시부분의 번역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작가(주드로): 그래서 어떻게 됐죠?
제로 무스타파: 그는 놈들의 총에 맞았어. 그래서 내가 다 상속받았지.
젊은 작가(주드로): 식사 후 객실 열쇠를 받으러 갔는데 무슈 장은 자릴 비웠더군요.
제로 무스타파: 우릴 잊었나 보군
젊은 작가(주드로): 물론, 최근 들어 그랜드 부다페스트와 같은 곳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공유지가 됐지요. 그와 새 정부와의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제로 무스타파가 막대한 재산을 돈은 많이 들고 적자 투성인 이 비운의 호텔과 맞바꾼 거예요. 왜일까? 그저 감상적인 이유로? 평소의 나라면 묻지 않았겠지만 내 정신건강을 위해 꼭 이유를 알아야 했죠. “결례가 될까 묻기 조심스러운데”
제로 무스타파: 아니, 괜찮네
젊은 작가(주드로): 이 호텔이 사라져버린 그의 세상과 선생님을 이어주는 끈입니까?
제로 무스타파: 그의 세상? 아니. 그렇지 않아. 둘이 같은 일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아니, 이 호텔은
아가사를 위한 걸세. 우린 여기서 행복했네. 잠깐 동안은... 솔직히 내 생각에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제로 무스타파: 올라갈 건가?
젊은 작가(주드로): 아뇨, 더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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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에서 밑줄 친 저 문장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구스타브는 제로를 구하려다 자신의 목숨을 잃었고, 게다가 제로는 이 덕분에 구스타브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죠. 그럼 평생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데, 위 문장들이 너무나 무심하고 태평해서 제로 무스타파라는 인물에 대해 실망했네요.
제가 느낀 뉘앙스는, “둘이 같은 일을 하는 동등한 위치였는데 그럴 필요가 있냐”, “구스타브는 그저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상 속에서 살다가 죽은 인물이야” 였네요;;
근데 영어 원문을 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둘이 같은 일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는 부분은, “You see, we shared a vocation. It wouldn't have been necessary.”(우리는 소명의식을 같이 했네. 그러니 그럴 필요는 없었지) 였습니다.
vo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job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높은 차원의 숭고한 것인데, 이것을 단지 ‘일’이라고 번역한 것은 아쉽네요.
그리고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부분은,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하지만 말하건대, 그는 훌륭한 품위와 함께 그 환상을 분명히 지켜내고 있었어) 였네요.
sustain이라든가, 특히 marvelous grace 같은 단어가 전혀 번역이 되지 않아, 뉘앙스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살려져서 번역이 됐다면, 영화관을 나오며 무스타파라는 인물의 무정함에 실망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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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신 두 문장이 많이 다르네요. 이럴 때는 정말 원어로 알아듣는 분이 부러워요.

생각까진 안들었는데,뉘앙스가 많이 다르긴 하네요.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
-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 하지만 말하건대, 그는 분명히 훌륭한 품위와 함께, 그 환상을 지켜내고 있었어
원 번역문을 보면 아마 한 스팟에 들어간 자막 같아요.
원하시는 내용을 한 스팟에 다 넣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고 소설 번역이라면 가능할 번역문입니다.
예시로 주신 것처럼 아예 직역투로 쓸 순 없으니 구어체로 다듬는 문제도 있고요.
원문의 뉘앙스는
자신의 세상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그 환상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뉘앙스입니다.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등바등 추접하게가 아니라 품위 있고 고상하게.(진짜 구스타브답네요)
굳이 다시 영화를 보지 않아서 스팟이 어떻게 쪼개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저 정도 번역이면 원문의 뉘앙스는 다 넣었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한데.. 이대로도 괜찮은 번역이라고 봅니다.

말씀하셨다시피 "품위 있고 고상하게"라는 부분이 포인트인 것 같은데, 저에게는 그런 뉘앙스가 전혀 안 다가와서 결말의 전체적 인상까지 달라졌어서요. 또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구스타브는 그 세계의 환상이라도 sustain(지키다, 유지하다)해내고 있었다는 건데, 이런 뉘앙스도 저에게는 전혀 안 다가왔어서요;
개인적으로 영화 상영 내내 너무 재밌게 보다가 결말에서 좀 깼는데, 원문을 보니 그렇지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아 글을 올려봤네요.
저도 제가 한 번역을 영화 자막으로 넣는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같이 영화를 오해하지 않고 바르게 이해한 분들한테는 아무 문제 없는 부분이죠. 역시 영화 번역은 어렵네요ㅠㅠ



저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뉘앙스 전달의 측면에서 자막이 종종 신경쓰이더라구요.
전문 번역가 분들이니 심각한 수준의 오역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대사의 맥락을 오해하거나 캐릭터의 성격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뉘앙스가 완전히 달리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번에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볼 때도 많이 느꼈구요.
그나마 극장 상영작은 괜찮은데, DVD 등으로 출시되는 고전영화나 비흥행작 같은 경우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정말 고전영화의 경우 번역이 너무하다 싶은 때가 있더군요. 옛날에 했던 번역 그대로 사용해서 그런건지..

와..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두번째 문장은 영화의 테마를 드러낸다고 보는데 뜻은 비슷하게 해석해놓긴했는데 뉘앙스가 좀 다르긴하죠
저역시 두번째 문장의 핵심은 grace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구스타브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단어라고 봐요


결이 좀 더 풍성해지는데요!
저도 영화 보면서 저 대사에서, 주인공이 너무 냉정한 것 같아서 영화의 여운이 순간 확 깼는데... 원문 보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