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카오스워킹 후기
익무 기대평 이벤트로 '카오스 워킹'을 봤습니다. 좋은 이벤트 덕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후기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더그라이먼 감독의 전작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워낙 재밌게봤고, 톰홀랜드와 매즈미켈슨을 정말 좋아하는지라 기대를 가득 하고 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는 있었습니다.
생각을 숨길 수 없다는 설정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를 기대한 가장 쿤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설정을 잘 사용해서 전개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지 않고 생각으로 대화하는 장면은 제가 좋아하는 이영도 작가의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나오는 종족인 나가를 떠올리게 하더라구요. 제가 염원하는(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새시리즈 영상화를 진행한다면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보았습니다ㅋㅋㅋㅋ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설정이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보영씨와 이종석씨가 주연했고, 민준국씨...가 아니라 정웅인씨가 열연했던 우리나라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마음을 읽는 설정이 등장했죠. 위에 언급한 이영도 작가의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도 그러한 설정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의 나가는 정신을 닫을 수 있고,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상대가 마음을 읽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설정상 눈을 보면 마음을 읽는데, 읽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보영씨가 눈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장면이 기억나네요.
이 영화에서도 마음을 읽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노이즈에 충분히 적응된 시장같은 캐릭터는 마음을 감출 수 있고, 마음이 노출되는 세상에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능력은 권력이고 힘입니다. 톰 홀랜드가 연기한 토드 휴잇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나는 토드 휴잇이다.'를 계속 생각하지만, 당연히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토드 휴잇이 뭔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구나 하는걸 눈치채버리고 말죠.
마음을 감출 수 있다는건 우리가 관게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솔직하다면 그 세상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세상과 많이 다르겠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밥한번 먹자라는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세상이 오는 겁니다ㅋㅋㅋ 이런 사소한 거짓은 물론이고 최근 개봉한 영화 '페어웰'도 할머니의 시한부 사실을 '할머니를 위해' 말하지 못하는 설정이 영화의 출발입니다. 거짓은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일반화를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내 삶이죠.
칸트와 같이 하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법칙을 가진 사람들을 파훼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설명이 '누군가 타인에게 피해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조차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가'하는 가정입니다. 영화에서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설정과 함께 등장인물이 처하는 상황에 따라 이 철학적 사고실험을 유쾌하게 패러디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 노출된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은 영화를 단순히 재밌는 블록버스터일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철학적 배경을 가질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듭니다. 더그 라이먼 감독의 전작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역시 삶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리게 하는 실존적인 철학적 주제를 통해 환상적인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은 충분히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설정을 가지고도 이를 영화에 풀어내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톰홀랜드는 토드 휴잇 역할에 정말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어울렸고, 톰홀랜드 캐스팅은 신의한수 였던 것 같습니다. 데이지 리들리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상당히 매력적이더라구요.
매즈미켈슨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중년 카리스마 제대로 보여주는 배우지만, 솔직히 이 작품은 매즈 미켈슨의 매력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깊이 있는 스토리를 끌어낼 수 있는 설정이 있는 캐릭터고, 배우의 역량도 충분하지만 영화의 단순 재미를 위해 매즈미켈슨의 시장 캐릭터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상당부분 들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작이 있다고 하던데 원작에서는 이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시장 캐릭터를 좀 더 비중있게 묘사했다면 영화가 훨씬 깊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모두 죽고 남자만 남아있다는 설정도 흥미로웠지만, 영화가 이 설정을 묘사하는 방법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스포를 자제하는 리뷰라 자세히 묘사는 못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작에 있는 내용이라 억지로 넣은건가 싶을정도로 무책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혹평하는 분들의 의견에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도 그 설정을 풀어내는데 실패했고, 사실 결말부에서는 급마무리를 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볼거리도 확실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중간 중간 자잘하게 들어있는 유머들도 한국 관객 정서에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다수고, 저 또한 단점들도 있고, 백프로 만족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가진 장점만으로도 관람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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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봤습니다. 시장은 속편에도 또 나올 듯하더라고요.
속편이 나와주면 좋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