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lfman (1941) 최고의 늑대인간 영화
이 영화, 최고의 늑대인간 영화이기 전에 아주 훌륭한 드라마이다. 구성이 탄탄하다.
울프맨이 등장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 중반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하지만 늑대가 안 나오는 장면에서도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다.
아주 서서히 캐릭터를 쌓아올린 다음에야 터뜨리는 타입의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드라마성이 풍부하다.
래리라는 청년이 미국으로부터 웨일즈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족가문인 탈보트 가문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큰 아들이 모든 것을 상속한다는 원칙에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가,
큰 아들이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상속하러 돌아온 것이다.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귀족이니 신분계급이니 하는 것 무시한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개방적이고 쾌활하게 행동하여 혼자 튄다.
그는 골동품상 주인의 딸인 그웬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웬은, 마을을 지배하는 귀족가문 장속자가 왜 이러고 다니나 하고
당황하지만, 알고 보니 그런 거 전혀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 끌린다.
울프맨과 전혀 상관없는 멜로드라마 이야기다. 이게 상당히 오래 나온다. 하지만 이 부분도 재미있다. 주연배우 론 채니 주니어 연기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셋트에서 찍은 것인데,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라든지 신분계급제에 젖은 사회와 사람들이라든지, 귀족가문의 묘사 등
상당히 그럴 듯하다. 이 영화를 만든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람들이 유럽에서 망명온 사람들이었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하지만 래리는 울프맨이 되어 살해당할 운명이다. 관객들도 이를 안다. 그래서, 순수하고 쾌활한 래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다.
뛰어난 점은 1도 없는 사람이지만, 무난하고 평탄하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고 하며 살았을 청년인데 말이다.
울프맨에게 죽을 운명의 사람들은 손바닥에 이런 별 표시가 생긴다. 이거 꼭 나찌독일에서 유태인들에게 찍었던 표시 같다. 그래서
이 영화 각본가가 유럽에서 망명온 유태인이라 자기 경험을 각본에 반영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래리는 늑대에게 살해당하는 여인을 구하려다 늑대에게 물린다. 래리가 겁장이였으면 이기주의자였으면 그는 울프맨이 안되었을 것이다.
래리는 서서히 자기가 울프맨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원래는 래리가 울프맨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만들려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랬다면
영화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들 중 하나인 울프맨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래리는 울프맨이 됨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소외되어감을 느낀다. 래리가 마침내 울프맨이 되어가는 과정은, 런던의 늑대인간 영화처럼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만든 아찔하도록 힘든 과정을 거친 것이다. 지금 보면 털모자 쓴 것처럼 어설픈 분장이지만, 당시에야 첨단 특수효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늑대인간 분장이 음침하고 어두운 숲 배경으로 해서 보여진다는 것이다. 분위기 한번 죽여준다.
래리는 자기를 묶어달라고도 하고, 자기가 울프맨이라고 이야기도 해보고 하지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그는 울프맨이 은으로 만든 막대로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늑대를 잡으러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숲으로 달려갈 때,
아버지도 함께 간다. 래리는 아버지더러 은으로 만든 지팡이를 갖고가라고 부탁한다.
래리는 늑대로 변한 아들을, 아들인 줄 모르고 은 지팡이로 때려죽인다. 이거 한대 맞고 죽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때려서 죽인다.
살살 때리는 것도 아니고, 있는 힘껏 때린다. 아버지가 아들인 줄 모르고.
죽은 울프맨이 서서히 아들로 변하자, 아버지는 지팡이를 던지고 얼굴에 절망이 흐른다.
아버지 역을 맡은 클로드 레인즈의 이 훌륭한 연기가 걸작 울프맨의 마무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한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4번이나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대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