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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1977) 김기영 감독의 최고걸작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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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은 이 영화에서 드디어 영화라는 한계를 넘고 말았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매혹적이고 신비롭다.

 

이 영화는 기승전결, 구성, 클라이맥스, 등장인물 그런 것 없다. 

 

예를 들자면 "우리 집에 수수께끼 인물이 찾아왔는데 글쎄 그가 하늘로 날아가버리지 뭐야? 그래서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는 어느 재벌 그룹 회장 사생아였대, 그런데 회장이 그를 낳기 전에 치악산으로 가서 죽은 여자 귀신을 만나 그를 낳았다는 거야. 그런데 여자 귀신은 한라산까지 걸어갔대. 한라산에서는 요즘 수목장이 한창이래. 한라산 중턱에서 봉우리가 하루 2미터씩 솟아오른대. 신기한 일이지 뭐야. 그런데 요즘은 제주도 앞바다에서 고기가 안 잡힌다지. 제주도 무당들이 난리났다며?" 뭐 이런 식이다.

 

주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 처음 영화는 신비의 섬 이어도와 신비하게 행방불명된 천남석이라는 지방지 기자에 대한 초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여진다. 그것을 추적하는 선우현이 주인공인 추리물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천남석이 그냥 기자가 아니라, 무슨 신화에 나오는 신비한 영웅처럼 초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어? 좀 이상하다. 이거 추리물 아니었나? 갑자기 신화와 전설을 그린 초현실적인 영화가 되었네? 그러더니 갑자기 천남석이 살던 섬에 술집작부 손민자가 중심인물이 된다. 어느 순간 주인공인 줄 알았던 선우현이 사라진다. 이런 식이다. 주제가 몇십분마다 바뀐다. 종교영화로 가다가 몇십분만에 멜로영화로 갔다가 몇십분만에 SF영화로 갔다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된다. 주인공도 선우현이 나왔다가 천남석을 바뀌었다가 손민자로 바뀌었다가 하는 식이고.

 

그런데 이런 형식을 가진 영화가 영화로서 완성도를 가진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각 쟝르 부분들이 산산히 흩어져버리기는 커녕 하나로 묶인다.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런 무질서한 흐름이 오히려 이어도라는 영화의 강렬함을 증폭시킨다. 이어도는 전설 속에 존재하는 섬이다. 난파한 어부들이 거기 끌려간다고 두려워하는 죽음을 상징하는 무서운 것임과 동시에 어부들이 필사적으로 헤엄을 쳐서 다가가려 하는 파라다이스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다. 이런 이어도를 어떻게 그릴 수 있겠는가? 선우현이나 천남석이 이어도를 찾아가다가 마침내 발견하는 줄거리로 갔다면 이 영화는 코메디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이어도의 단서를 발견하는 줄거리로 갔어도 코메디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형체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조차도 못얻는 막막한 것이니까 이어도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두서없고 너무나 막연하고 과잉인 주제와 이야기 속에서 표류한다. 지금 이게 뭔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나? 과연 이것과 앞의 줄거리는 어떻게 연결되나? 연결되기는 하는 걸까? 이런 모호함과 미로에 갇힌 기분이 바로 이어도다.    

 

이어도라는 복잡한 것은 하나로 정의되지도 않는다. 천남석의 열정, 선우현의 냉정함, 무속신앙, 천남석을 향한 여인들의 질투와 사랑, 천남석의 이상주의, 물 속으로 뛰어드는 해녀들의 생명력, 몸 파는 손민자의 과묵함과 신비로운 이미지 등이 다 이어도의 여러 측면들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거대하고, 엄청난 것들을 그냥 풀어놓고, 등장인물들이 계속 바뀌고 하다가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래도 결말에서는 어떻게든 수습하고 완결 짓고 끝나지 않겠어?" 하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영화는 그냥 그 상태로 끝난다.  

 

이 영화는 손민자 역을 맡은 이화시의 영화다. 이렇게 강렬한 캐릭터가! 무당 역을 맡은 박정자의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이화시다. 한 카리스마 하는 박정자를 맹물로 만드는 엄청 강렬한 캐릭터다. 

 

 

 

 

 

 

 

 

이 영화 주인공이 계속 바뀌기는 하지만, 그 중 가장 비중있는 주인공이 이화시다. 술집 작부이기는 하지만, 양파껍질 벗기듯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꾸 아이덴티티가 바뀐다. 영화 이어도에 걸맞는 주인공이다. 이 영화 이어도는 빨간 옷을 입고 하늘도 바다도 섬도 사람들도 노려보는 이화시에 의해 완성되었다. 

 

등장씬부터 비범한 이화시는 배가 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 신문을 읽는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빨간 양산을 쓰고 빨간 치마를 입고.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이화시가 남들보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사람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화시는 관객들의 이 예상보다 열배는 더 강렬하고 개성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관객들을 기절초풍시킨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하다. 천남석의 익사체가 물에 떠밀려 오는데, 썩은 시체의 X지에 대나무를 꽂아 고정시키고 이화시가 X지에 삽입하는 장면을 (암시가 아니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거 이래도 되나? 강렬한 이화시 캐릭터에 맞는 줄거리기는 한데 죽은 시체와 정사, 그리고 시체의 아이를 밴다는 설정은 뭔가? 죽은 시체의 고환에서 살아있는 정자를 끄집어내는 종교적 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꿈에도 생각 못해본 엄청난 것이다. 그렇게 강렬한 이어도 영화를 더 강렬하게 끝낸다. 그래, 나는 압도당했다. 인정 안 할 수 없다. 

 

 

 

이화시는 이어도에 맞짱뜨는 인간의 상징이다. 운명의 안에서 살아가고 인간의 비참함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운명을 조롱하고 굳세게 지배하는 인간이다. 이 모호하고 신비로운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존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이화시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화시의 행동이나 동기에 대해 아리송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그렇게 행동했었다. 그렇게 많은 개성적인 인물들이 영화 내내 부침을 겪지만, 끝에 단단한 영웅으로 우뚝 서는 것은 이화시다.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어렵지 않을까? 이것은 영화적 문법을 초탈하여 감독 정신의 신비한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좋은 감독같았으면 여기 있는 이어도 영화의 특징들을 결코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김기영 감독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내면의 

비젼을 가지고 환상적인 미로를 대하소설 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분야 불문하고 예술가하면 누구나 한번 꿈꾸어 보는 경지가 아닐까? 

 

 

 

 

 

 

 

 

 

 

 

 

 

 

 

 

P.S. 아무리 봐도 하녀의 성공은 김기영 감독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다. 

하녀 - 화녀 - 수녀 - 충녀 - 화녀 82 등 계속 하녀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주제를 변주해나간 것도 주제를 발전시켜나간 것도 변형시킨 것도 아니다.

같은 영화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나마 하녀와 화녀가 볼 만했고, 나머지는 평작 혹은 그 이하다. 사실 첫번째 작품 하녀 외에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죽을 당시 진행했던 영화도 악녀라는 제목이었다. 

살아 생전 자기 르네상스가 오고 투자자도 나서 영화 프로젝트를 하게 돼서 좋아했는데 그만 화재로 사망했다고 한다. 전작들을 능가하는 걸작을 내놓겠다고 의욕이 충만했었다는데 참 안타깝다. 감독 자신의 인생조차 

하나의 신화로 끝내고 만 것인가? 

 

P.S.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유명한 미녀 홍낭자가 있다. 동남아 어디에 있다는데 아직까지 찾은 사람이 없다. 1969년 작인데, 이순재, 문희 주연이다.

이 포스터만 보면 심히 난감하다. 문희가 있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칼을 든 동자승은 누구이고 대괴수 용가리가 불을 뿜는 장면은 왜 나오는가? 도무지 스토리가 상상이 안된다. 누가 조만간 찾아줬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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