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2' 영화평론가의 리뷰

영화평론가이면서 진지하게 게임 비평까지 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은데...
일본 영화 사이트 '리얼사운드'에 영화평론가의 <라스트 오브 어스 2> 리뷰가 실려서 옮겨봤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좀 고생했네요.^^
찬반양론이 들끓어서 게임을 잘 모르는 분들도, 무슨 게임인가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게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해설하고, 여러가지 논란점들도 짚어주기 때문에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게임의 작품성에 찬사를 보내는 글입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2>라는 게임이 싫으신 분들은 미리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https://realsound.jp/tech/2020/07/post-594188.html
(스포일러 있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영화를 가장 위협하는 게임
영화평론가 오노데라 케이가 ‘문제작’의 가능성을 고찰.
여러 작품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 온 미국의 게임 개발사 ‘너티독’의 AAA(트리플 에이) 타이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전례 없는 도전적인 스토리와 방향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을 당황시킨 ‘문제작’이었다. 이 게임으로 인한 소동으로 모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가 SNS에서 협박을 당하기도 하는 심각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한편으로 이 작품을 극찬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과격한 찬반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플레이하는 영화’라는 별명을 지닌 이 시리즈를, 영화평론가의 시선에서 풀어보면서, 이 작품이 진정으로 그린 것과 그것을 통해 내다보는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중요한 요소, 및 전작의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이미 클리어한 사람들, 혹은 이 작품을 둘러싼 비판 의견을 접하고 작품에 손을 대길 포기한 사람들, 혹은 게임 도중에 플레이를 중단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기 때문에, 아직 플레이하지 못한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명작이라 불린 전작
시리즈의 무대는 문명이 파괴되고 황폐해진 미국. 수수께끼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감염된 인간이 좀비 혹은 괴물 같은 형태가 되어 인간을 공격하면서 그러한 세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주인공은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서 고독한 삶을 살아온 중년 남성 조엘이다.
그는 14세 소녀를 목적지까지 데려가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감염자, 혹은 인간 약탈자들한테서 몸을 숨기고, 때로는 살인을 저지르며 도보로 여행하는 조엘과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면서 차츰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간다. 그 여행길 가운데, 소녀 엘리는 놀랍게도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지닌 기적의 아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시리즈의 장르는 이른바 ‘스텔스 액션’이다. 제한된 무기, 탄약을 이용해 장해물이 되는 인간 혹은 감염자들을 제거해가면서 진행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의 배후로 돌아가서 암습하는 등, 가능한 한 피해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요령이다. 한번 발각되면 적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때문에 긴장감 넘치는 플레이가 요구된다. 또한 드라마 파트에선 여러 좀비 영화나 드라마의 설정들을 밑바탕으로 하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을 떠올리게 하는, 인간이 멸망해 가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구원 없는 전개가 묵직하게 그려진다.
전작의 클라이맥스는 충격적이었다. ‘파이어플라이’라는 무장조직이 엘리를 받아들이는데, 그들은 그녀의 신체를 이용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려 한다. 그런데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엘리의 목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고뇌에 빠진 조엘은 결심을 굳히고 파이어플라이의 연구시설 직원들을 차례로 살해한 뒤 엘리를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깨어난 엘리에게 조엘은 거짓말을 해(역주: “엘리의 항체로도 백신을 만들지 못한다”고..) 그녀가 죄책감을 갖지 않게끔 한다.
인류의 미래를 희생시키고, 연구시설 사람들의 목숨까지 희생시키면서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한다. 엘리는 조엘에게 있어서 어느덧 그 정도로까지 소중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씁쓸하고도 감동적인 스토리를, 여러 플레이어들이 지지하면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명작으로 불리게 되었다.
초반부터 충격적인 전개가 펼쳐지는 속편
호평 받은 전작에 이어 큰 기대를 모은 속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인 ‘잭슨’이라는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에는 평화롭게 사는 조엘과 19세가 되어 성장한 엘리가 살고 있었다. 엘리는 절친한 여자 친구인 ‘디나’와 막 연인 사이가 되어 사귀기 시작한 상황이다(역주: 엘리의 성적지향은 레즈비언).
헌데 그 스토리 가운데, 팬들의 입장에선 초반부터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전작의 주인공 조엘이 여러 사람들에게 납치돼, 집요하게 고문을 받고 구타당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엘리는 조엘을 구하려 하지만 심하게 두들겨 맞고, 상대가 봐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초반부터 끔찍한 죽음을 당하는 조엘
조엘을 죽이는 의문의 여성 '애비'
조엘의 어이없는 죽음에 많은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주인공은 조엘의 복수를 다짐하는 엘리로 바뀐다. 조엘을 끔찍하게 죽인 그룹의 주모자는 ‘애비’라는 여성이다.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엘리와 디나는 애비가 소속된 무장조직 WLF의 거점인 시애틀로 여행을 떠난다.
이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염자와 적대 조직을, 최대한 은신한 상태에서 쓰러트리면서 목적지로 향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헌데 어두운 실내에서 감염자들이 계속해서 공격해오는 스테이지는 웬만한 호러 게임만큼이나 무서워서, 필자처럼 겁 많은 플레이어의 경우, 냉정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필자는 일부 스테이지를 눈물을 머금고 공략했고, 어둠 속을 그저 달리며 칼을 휘두르는 식의 무대포 플레이로 간신히 넘기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처럼 심약해진 상태에서 시애틀의 한 병원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직감적으로 ‘병원에 가는 건 분명 무서울 거야... 싫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곳은 감염자가 없는 스테이지여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도하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방심하게 해놓고선, 사실 종반부에 병원에 다시 가게끔 만드는 잔인한 전개가 마련돼 있다. 이 작품의 제작자는, 그렇게 마음 약한 플레이어의 심리를 죄다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판의 대상이 된 ‘애비 파트’
본 작품이 물의를 일으킨 건 여기서부터다. 엘리를 조작해 스테이지를 진행하다 보면, 그녀는 복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과 또 그들이 데리고 있던 개들을 계속해서 죽이게 된다. 플레이어는 엘리가 저지르는 살인을, 화면과 컨트롤러를 통해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가운데 ‘이렇게 살인을 계속 저지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플레이어의 마음속에 생기게 된다. 그리고 목숨을 잃은 조엘은 이런 전개를 원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과거 회상 장면들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이후 이 작품은 마침내 문제의 전개로 돌입한다. 엘리의 스토리는 도중에 중단되고 게임은 ‘애비 파트’로 바뀐다. 그렇다. 조엘을 고문해서 살해한 가증스런 주모자 애비의 시점으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애비 파트의 분량은 게임 전체에서 무려 절반 가까이나 된다. 플레이어는 증오하는 캐릭터를 가지고, 중반부터 종반까지 주인공으로 삼아 조작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엘리의 원수인 애비로 체인지
이러한 게임의 방향성을 놓고, 일부 팬들은 어그로로 인식하거나 혹은 제작자의 판단 미스로 여기고 분노를 터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작품이 영화였다면 이렇게나 원성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반응이 나온 데에는 게임과 영화의 특성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것도 크다는 것을, 일단은 이해해 보도록 하자.
그러한 관점에서 가장 큰 요인이 되는 것은 총 플레이 시간이다. 클리어하기까지 대략 20여 시간이 걸리는 가운데 10시간 정도를 애비의 시점으로 계속 플레이한다는 것은, 영화 관람 시간을 훨씬 초월한 시간 동안 애비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애비를 자신의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게 만드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요인은 성취감이다. 게임 플레이라고 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거쳐 공략해 나감으로써 보상받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모처럼 플레이하는데, 자신의 행동에 따라 게임의 세계에서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플레이를 하다보면 점점 불행한 방향으로 빠져들게 된다.
엘리와 애비의 끝없는 보복
헌데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런 식으로 이해한 데서 오는 감상이, 제작자의 의도나 드라마 파트에서 표현된 것을 오해하면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시리즈가 영화적이라고 언급되는 이유는, 디테일한 그래픽 표현과 연출을 통해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과 철학적인 의문이 들게 하는 듯한 상황을 훌륭히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그 세련된 표현 가운데에는 불필요한 상황 설명이나 해설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 같은 장면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이 작품이 호소하고 있는 것을 빼먹은 채 진행하게 되고, 감정이입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특히 이번 속편은 ‘닐 드럭만’을 비롯한 감독진의 연출, 아름다운 무대를 창조한 미술팀, 그리고 촬영팀의 노고로 어지간한 영화를 월등히 뛰어넘는 고도의 표현을 달성해 냈다.
애비 파트에서 그려진 것은, 엘리의 입장에선 적인 이들의 과거다. 엘리에게 살해당하기 이전의 사람들과 개들이 생생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애비 일행에게도 인생이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엘리가 저지른 짓(살인)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플레이로 인해 죽어나간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쾌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실은 애비의 아버지가, 전편에서 조엘이 저지른 살육으로 인해 목숨을 빼앗긴 파이어플라이의 의사였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엘리가 조엘의 복수를 하기 이전에, 사실은 자기 아버지를 위한 애비의 복수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의 보복은 다시금 애비의 복수를 불러온다. 이 끝없는 복수의 대립이 암시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병원 지하에 존재하는,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는 장소이다.
그라운드 제로란 폭심지 등을 뜻하는 말인데, 그렇게 불리는 곳 중 가장 유명한 장소는, 2001년 테러로 인해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자리일 것이다. 미국의 도심부가 그렇게 공격 받았을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아마도 그곳이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9.11 테러는 광신적인 이슬람 무장조직 알카에다가 저지른 짓이라고 하지만, 그 조직이 그러한 행동을 벌인 원인에, 미국 정부의 책임도 있지는 않았을까.
미군의 보복 행동과 군사 침공, 범인 색출 과정에서의 고문 행위는 엄청난 혼란과 많은 일반시민의 피해를 초래하게 됐다. 그렇게 가족을 빼앗기고 존엄을 빼앗긴 자들은 더더욱 미국을 증오하게 된다. 이러한 복수의 대립은 과연 언제나 끝이 날까.
이 작품의 최대 스포일러는
그런데 이러한 전개를 이야기로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얼핏 보기에 이 작품은 대립하는 쌍방 각자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고, 양쪽 다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정의의 편과 대립하는 상대 역시 다른 한편으로 정의의 편이다’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야기는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한 플레이어는, 제작자의 의도를 오독한 채 이 작품을 플레이해 버리게 된다.
애비 파트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 전작에서 나온 조엘-엘리의 관계와 흡사한 구도다. 애비는 시애틀에서 활동하던 중, ‘레브’라는 아이와 만난다. 레브를 돕고, 또 거꾸로 레브의 도움을 받으면서, 애비와 레브의 유대 관계는 돈독해진다. 이후 애비는 누군가를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의료 기구를 손에 넣으려 하고, 그로 인해 동료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약한 입장에 처한 인명을 구하려 한다. 이러한 갈등은 조엘이 일찍이 경험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전개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플레이어는, 엘리는 올바른 입장이고, 애비는 증오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분명 조엘을 살해하던 시점에 애비는, 복수심에 불타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애비 파트를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그녀가 사실은 친절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헌신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성장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반대로 엘리의 경우는 어떨까. 그녀는 자신의 복수에 어느 정도 갈등을 느끼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돌진해 나가는 캐릭터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복수를 이루려고 한다.
플레이어가 애비를 계속 조작하다 보면, 마침내 엘리가 있는 장소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애비의 시점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엘리와 1대1 데스 매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최후의 적은 바로 엘리였던 것이다. 이것이 사실은 이 작품의 최대 스포일러이다. 그렇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성장한 애비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모한 엘리를 쓰러트리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지옥의 데스 매치가 제시하는 인간의 극한
그 증거로, 애비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엘리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레브의 호통을 듣고 복수를 단념하고, 최종적으로는 엘리를 용서하는 선택을 한다. 한편 데스매치 중 플레이어가 실수하면 그 즉시 엘리는 샷건으로 애비의 안면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린다(참으로 비참한 처형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엘은 엘리가 그러한 복수를 하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항체를 지닌 인간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엘리에게 동정하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녀가 살인을 계속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엘을 죽이기 전까지 애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증오해야 할 대상이었던 애비는, 이제 엘리의 모습이 되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후에 에필로그가 존재한다. 애비의 용서로 목숨을 건진 엘리는 거처를 옮겨, 디나와 행복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애비에 대한 복수를 잊을 수 없는 엘리는 또다시 에비를 죽이기 위해 애비와 레브의 발자취를 뒤쫓게 된다.
이제는 본인 스스로도 그런 행동이 자신의 마음을 구원할 거라고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비를 쫓는 것 자체가, 이제는 그녀가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는 아직 어린 레브를 인질로 삼는 짓까지 저지르며, 싸울 뜻이 없는 애비를 강요해 재대결을 펼친다. 이 서글픈 복수의 화신, 비참한 폐인이 바로 전편에서 세상의 구원과 맞바꿔 얻어낸 생명이라니. 이 상황을 만약 조엘이 보게 된다면, 분명 견디기 힘든 심정일 것이다.
둘 다 부상을 입은 엘리와 애비가 얕은 물 위에서 펼치는 목숨을 건 싸움은 처절해진다. 엘리는 애비에게 물어 뜯겨서 두 손가락을 잃고, 애비는 물에 잠겨 생사의 기로에 선다. 그야말로 지옥의 싸움. 그리고 마침내 엘리는 애비를 죽일 기회를 갖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시하는 조엘과 엘리의 승리
거기서 엘리는 과거에 조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복수를 포기한다. 왜 엘리는 그 상황까지 가놓고서 복수를 그만둔 것일까. 이 장면에서 (복수를 달성 못해서) 실망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엘리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그리고 복수를 달성한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은 구원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조엘과 나눈 대화 장면에서 제시된다.
(조엘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이루지 못해서 삶의 의미를 박탈당했다고 느낀 엘리는 오랫동안 조엘에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이제는 용서할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에 조엘이 살해당함으로써 엘리는 조엘에게 화를 냈던 걸 사과할 기회도, 그를 용서할 기회도 영원히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다. 엘리의 마음을 구원할 수 있는 건 복수의 완성이 아니라, 그저 조엘을 용서하고 동시에 속죄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애비는 더 이상 가증스러운 악마가 아니라, 그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다. 바로 과거 조엘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엘리는 그녀를 용서하고 풀어줌으로써,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 그것은 엘리의 마음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엘을 용서하는 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애비는 파이어플라이로 다시 돌아가려던 참이기도 했다. 그녀를 돕는다는 것은, 조엘이 과거 파이어플라이에 대해 저지른 죄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며, 애비의 아버지에 대한 속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전작의 엔딩을 보다 올바른 결말로 새롭게 고친 것이 아닐까 싶다. 엘리는 마지막 순간에 성장하여 선량함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조엘이 갖고 있던 그녀에 대한 깊은 애정이 마침내 엘리의 마음에 도달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 결말은 지옥을 통과한 끝에 겨우 도달한 엘리의 승리이며, 애비 일행의 승리이자, 조엘의 승리인 것이다. 그 점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작품을 플레이한 것에 대한 깊은 성취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엘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결말을 짓고 있다. 그것은 두 손가락을 잃은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엘리가 기타 줄을 튕기지 못해서 기타를 제대로 치지 못하게 된 장면은 비통하지만, 그 후 기타를 두고 혼자서 걸어가는 묘사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엘리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많은 죄를 짊어지고서, 마침내 조엘한테서 보호 받던 소녀 시절의 자신과 결별하고, 성장한 어른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되찾은 것이다.
일직선 진행이기에 도달한 경지
이 작품은 적어도 필자가 아는 한, 인간과 인생을 가장 깊이 있게 그려낸 드라마를 지닌 게임 작품이자, 전작과 비교해서도 예술성이 높고, 제작자의 의지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게임에 이렇게까지 작가성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논란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 대한 비판 가운데에는 캐릭터가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살인에 (플레이어를) 가담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도 많다. 캐릭터의 결단을 플레이어에게 맡겨서, 여러 가지 결말을 보여주는 멀티 엔딩으로 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작품의 훌륭한 드라마와 심사숙고해서 만든 아름다운 엔딩을 이해한 끝에, 굳이 멀티 엔딩 같은 걸 체험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 각본은 드라마의 모든 묘사들을 결말과 관련지어 그리고 있지, 독자나 관객이 마음에 들어 할 엔딩을 여럿 준비하고 그 중에서 골라서 선택하라는 식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다. 문학과 영화에는 만드는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는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멀티 엔딩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게임 작품에는 지금과 같은 의견들이 나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제작자의 작가성이란 것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으로서 취급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냐면,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라는 게임이, 오락 작품으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분명코 문학이나 영화에 버금가는 당당한 예술 작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행동을 강제시킴으로써, 캐릭터의 결단을 추체험(追體驗)시킨다는, 게임만이 가능한 강점도 발휘하고 있다.
이전에도 영화가 게임의 급격한 성장에 위협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것은 플레이어에 대한 서비스 정신보다도, 일직선 시나리오를 극한까지 가다듬고, 타협 없이 작가성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은 만들기에 따라서, 명작 문학이나 거장의 영화 작품 같은 고전을 뛰어넘어, 인류 최대의 예술로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가 될 수도 있다. 예상되는 비판을 감수하고, 또한 거액을 투자한 제작 시스템에서, 이처럼 도전적인 자세를 일관하며,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공적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임이 어떻게 진화하든지 간에, 이 작품은 혁명적인 걸작으로서 역사에 남을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내용물의 성공에, 그리고 강한 의지에, 지금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서, 이 작품의 LGBT에 관한 표현에 대해, “지나치게 PC적이다”라는 수준 낮은 비판도 존재한다. 제작진은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걸 미리 예측하고서, 극중 엘리와 디나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트집 잡는 보수적인 남성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 모습이 바로 비판자들 그 자체라는 비아냥거림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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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게임이었다..

만약 라스트 오브 어스의 후속영화로 나왔다면 라스트 제다이 꼴이 나지 않았을까 싶어요..어쨌거나 전작의 주인공들을 부정했기 때문에요

그래도 게임 자체는 언젠간 유저들에게 재평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복수의 악순환은 흔한 소재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모순 그 자체입니다.
애비가 조엘과 같은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조엘이 엘리에게 이입하는 그런 감정없이 그저 따라할 뿐이에요.
그래서 플레이어는 불쾌함 가득 안고 게임하게되는거구요.
애비파트빼곤 정말 잘만든게임이라 DLC로 갈아엎으면 훨씬 좋은 평가를 얻을겁니다.

전편 주인공들 '팬들'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이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 식이라, 찬반 양쪽이 평행선 같습니다. 감정이 앞서는 문제라 설득도 안 되죠. 저는 전편 좋아했지만 속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토리가 왜이랬나 싶지만 다음 편이 나오면 저는 구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리뷰를 쓴 사람은 결국 게임 평론가가 아닌 영화 평론가라는 사실이 몇 가지 문장이나 표현에서 드러나네요. '영화를 위협하는', '멀티엔딩은 작가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문학이나 영화에 '버금가는' 예술 작품 등등의 표현은 결국 게임의 내러티브가 아직은 영화보다 열등하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체험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나 문학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예술로서 구현될 수 있다는 점, 그렇기에 메타픽션이나 선택의 중요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드는 장르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문장들이에요. '필자가 아는 한 인간과 인생을 가장 깊이 있게 그려낸 드라마를 지닌 게임 작품'이라는 표현도, 만약 필자가 바이오쇼크나 소마, 언더테일을 플레이해봤다면 그렇게까지는 표현하지 않았으려나요 ㅋㅋㅋ 그래도 영화 평론가의 입장에서 해석한 닐 드럭만의 시도는 상당히 흥미롭네요. 해석이 정당한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재밌는 글이에요.

물론 이 글도 한 평론가의 글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평론가들의 성향이 이글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golog님도 그럴꺼 같아요. 그리고 뭔가 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게 대게 아이러니한거 같아요. 요즘 유투브로 보고나서 평가하는것도 그렇고 꽤나 공들여서 만든 부분도 많고 플레이 해서 직접 느낄수 있는 부분도 대게 큰거 같은데. 영화도 영화관에서 봐야 느낄수 있는 시네마적인 경험도 있고 게임도 플레이를 해봐야 느낄수 있는 시네마적인 경험이 있는데 이쪽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것 같아요.
글 번역하는것도 힘드셧을꺼 같은데.. 글 잘 읽었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행동해야만 하기에 느껴지는 강한 추체험
라는 평이 인상적이네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는 점이 슬프네요 그랬다면 분명 미적지근해졌을겁니다


글을 읽다가 '복수에 의해 인간성을 잃는 것'을 알게되니 뭔가 마음이 바뀌게 되네요. 다시 생각하니 개연성이 다소 아쉬운거 빼면 잘 만든 게임이라고 느낍니다.
처음 했을때 그 기분은 정말 불쾌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그 불쾌함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게 되는기분이 드는건 거의 처음 느끼네요.
그러나 출시 이전 어떻게든 2편을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말한 제작사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도 괜찮을텐데 초반에 돌이킬 수 없을정도의 무리수를 둔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고 느낍니다. 이번에 생긴 사태를 기반으로 삼아서 다음 작품을 만들때 도움이 됬음 좋겠습니다.


게임이라고 해도 플롯적으로는 엄청나게 고심했을 게 느껴집니다.

게임이니까 논란이 컸지, 드라마로 나올 땐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네요.
여러모로 많은 고민에 빠지게 한 작품이었어요.
영화를 체험 한다라는 느낌이랄까요..
인물들의 극한의 감정들을 PLAY를 하니...
이건 정말 가슴으로 오는 그 수많은 감정들은..
잊을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