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없음) '아이즈와이드셧' 리뷰 겸 작품을 둘러싼 논란 정리글
역시 큐브릭 감독님이 괜히 전설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군요. 큐브릭 감독님의 마지막 연출작인 이 작품... 역시 굉장했습니다. 큐브릭 감독님의 작품들 중에서는 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작품이지만, 전 이 작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큐브릭 감독님의 작품들의 배경에는 복잡한 여러가지 사연들이 얽혀있죠. 감독님이 살아계실 당시 모든 TV들은 4:3 비율의 정사각형 아날로그 방식이었으며, 홈 비디오 시장으로 출시되는 영화들은 극장용 화면비 (감독과 촬영감독의 의도된 화면비)와는 전혀 상관없이 좌우가 한없이 크롭되어 4:3 비율의 TV에 꽉 차게끔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큐브릭 감독님은 스코프 비율에 맞춰 촬영한 본인의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4:3 비율에 맞춰 좌우가 많이 크롭된 채로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한 훼손된 형태로 본인의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는 현실을 개탄스러워하며 그 후로 스코프 비율로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큐브릭 감독님의 영화는 좌우는 잘리지 않게 되었지만, 놀란 감독님의 영화들처럼 여러 화면비로 공개되게 됩니다. 큐브릭 감독님은 상하 여유가 많이 남게 촬영을 하게 되고, 북미 극장에서는 1.85:1 비스타 비율로, 유럽권 극장에서는 상하 정보량이 더 많은 1.66:1 비율로, 그리고 홈 비디오로는 정보량이 가장 많은 4:3 비율로 출시되게 됩니다. 이 때 감독님의 원 의도된 화면비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보량이 가장 많은 홈비디오용 4:3이 맞다", "아니다 그건 큐브릭이 좌우가 잘리는 걸 혐오해서 여유를 두고 찍은 거고, 북미 극장용 1.85:1이 맞다", "아니다 유럽 극장용 1.66:1이 맞다" 등.. 아직까지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큐브릭은 그저 의도와 달리 좌우가 잘리는 걸 굉장히 싫어했고, 블랙바가 생기는 것도 굉장히 싫어했기에, 그냥 관람 디바이스에 맞춰 블랙바가 전혀 생기지 않게끔 트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의견에 맞춰서 최근 블루레이 고화질로 재출시된 큐브릭 작품들은 4:3도, 1.85:1도, 1.66:1도 아닌, 현대 와이드스크린 TV 풀스크린 비율인 1.78:1 (16:9) 비율로 출시되었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제가 얘기하고자했던 바는, 큐브릭이 이토록 본인의 영화가 전세계 그 누구에 의해, 그 어떤 극장이든 디바이스에 관람되더라도 최적의 환경으로 관람될 수 있기를 원했던 완벽주의자인 감독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도 본인이 의도했던 구도에서 잘린 화면을 보게하고 싶지 않아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상하에 여유를 굉장히 많이 두고 촬영했다는 뜻인 거죠. 결과적으로 제가 극장에서 관람하게 된 화면비는 1.85:1의 비스타 비율이었고, 상하 정보량이 모자라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1.85:1, 1.66:1, 1.78:1, 4:3 그 어느 비율로 봐도 큐브릭의 굉장한 연출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시종일관 등장하는, 공간 전체를 훑는 굉장한 원테이크 샷부터 시작해서, 당시엔 아마 "에이, 저게 뭐야 허무맹랑하게"라고 말했을지 몰라도 현대에 와서 보면 섬뜩하게시리 상류층의 괴기한 취미생활을 묘사해놓은 부분하며,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편집까지.. 시대를 앞서나가다 못해 그냥 시대개념 자체를 파괴해버린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지금 봐도 대단하고, 수 십년 후에 봐도 여전히 대단할 것 같습니다. 특히 중반부의 그 복면가왕(?) 시퀀스는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네요. 그 시퀀스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챙겨봐야 합니다.
이 영화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 바로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잘생기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영화 속 플롯에선 마치 별볼일 없는 외모의 인물인 것처럼 활용될 때의 이질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잘생기고 아름다운 역할로 나와서 좋았습니다. 이 분들은 도저히 어느 측면에서 봐도 일반적인 외모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그리고 연기력 역시 끝내주었습니다.
톰 크루즈의 과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작품도 그렇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님의 '매그놀리아'도 그렇고.. 과거엔 이렇게 작가주의 감독님들의 드라마 장르의 걸작들에서 연기력을 제대로 뽐내 주었는데, 최근 들어선 스스로를 그냥 액션 배우로 소비시켜버리고 있는 것 같아 상당히 아쉽습니다. 톰 크루즈가 감정 연기를 못하는 배우였다면 아쉽지도 않았겠지만, 이 작품을 보시면 그의 감정 연기가 정말 제대로 빛을 발하기에 그의 최근 행보가 더 아쉽네요. 물론 다른 배우들은 엄두조차 못 낼 굉장한 스턴트들을 소화해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러한 거대한 액션 영화들 사이사이에 이전처럼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에도 몇 편 출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히 많습니다. 먼저, 영화가 너무 선정적이어서, 최초 공개 당시 원본으로는 미국에서 R 등급조차 받지 못하고, 극장 상영에 매우 불리한 NC-17 등급을 받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북미 극장에 초기 공개된 버전은 CG 인물들로 선정적인 부분들을 가린 버전이라고 합니다. 큐브릭 감독님의 정교한 프레이밍을 전부 망쳐버린 반쪽짜리 영화가 되어버린 것이죠. 다행히도 이번에 CAV 기획전에 상영된 버전은 이 버전이 아니라, CG 인물들이 추가되지 않은 원본 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버전 같은 경우엔 세상에 공개된 두 버전이고, 이 외에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버전에 대한 소문들은 아직까지 무성합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나흘 전, 이 영화의 최종 편집본을 워너 브러더스에 보여줬을 당시, 선정성 문제 때문에 CG 인물을 넣는 문제와는 별개로, 워너 측에서는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큐브릭 감독님은 본인의 최종 편집본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있으셨고, 당연히 잘라내는 것을 거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나흘 후, 건강 문제가 전혀 없던 큐브릭 감독님이 돌연 사망하시게 되고, 워너는 결국 본인들이 원했던 대로 영화의 일부분을 잘라낸 채로 영화를 대중에 공개했다고 합니다.
결국, 애초에 등급 심의를 넣기 전부터 워너 측에서 잘라낸 (세상에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루머에 의하면 그 잘라낸 부분이 상류층의 어두운 치부들을 현재 대중에 공개된 버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현재 공개된 영화보다 더 직접적인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이걸 큐브릭 감독님께 질문드릴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면, 북미에선 그 잘라낸 부분과 큐브릭 감독님의 갑작스런 죽음과 연관지어 한동안 괴담들이 많이 퍼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건 그저 루머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쨌든 전 잘려나간 부분들이 포함된 큐브릭 감독님의 원본이 보고싶긴 합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감독판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오길 바라며 긴 글 줄이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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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예전에 볼 때도 이 영화를 큐브릭 영화중에
제일 재밌게 본지라 이번에 다시 보고싶은데
아쉽게 기회가 안 되네요ㅎ
처참했던 저스티스 리그도 스나이더 컷 내줄 거면 아이즈 와이드 셧 큐브릭 컷도 내놔라 워너 놈들아ㅠㅠ
아주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