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에 대한 단상
1.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고, 즉 관객을 보고 상황 설명이나 이후 전개에 대해 말해 주는 장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생소한 연출은 아니지만, 허안화 감독의 이러한 연출은 3시간이나 다름 없는 이 긴 영화에 몰입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 줍니다.
마치 서사극처럼 이 영화에 몰입하지 말라는 감독의 주문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극 영화를 보다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긴 런닝타임에 비해 이러한 연출이 덜 지루하게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연출은, 이후에 등장하는 씬들을 잠시 앞에서 보여주는데(이 또한 자주) 이 또한 갑자기 불쑥 등장한 저 씬이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샤오홍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2. 샤오홍이라는 여성 작가의 일대기입니다. 제 나름 보기에는 그녀 삶의 세 시기, 추위와 배고픔의 샤오쥔과의 사랑의 시기를 지나 루쉰의 시기를 지나 죽음의 시기로 종착되는 세 시기를 보여주지만 결국 샤오쥔과의 사랑이라는 한 시기로 묶이는 그녀의 삶입니다.
3. 루쉰과 관련된 시기의 에피소드는 루쉰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한번 되새겨 보면서 이런 시가 떠 올라 찾아 다시 읽게 만듭니다.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것의 베갯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五臟)을 씻어 내린다.
노신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上海) 호마로(胡馬路)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거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김광균, '노신'(1947년)
4. 제목의 황금시대는 중국 근대문학의 황금시대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루쉰 말고는 이해가 없어 정말 많이 아쉬었습니다. 마치 이 영화는 우리나라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상, 이상화, 김영랑, 박태원, 정지용, 서정주, 임화, 채만식 등등이 나오는 영화를 찍는 것과 마찬가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5. 탕웨이의 모든 매력과 연기의 깊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탕웨이가 맡은 샤오홍의 연인인 샤오쥔을 맡은 남자 배우는 탕웨이에 절대 꿀리지 않고 당당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6. 샤오홍은 중국 현대사의 국민당 정부, 국공합작, 대장정, 일본 침공의 시기를 겪는 시기의 작가로 문학이 이성과 선전의 도구로 쓰였던 그 시기에도 자기가 쓰고 싶은 글, 감성의 글을 쓴, 그래서 오히려 정직하게 그 시대를 돌이켜 보게 하게 하는 중국 현대 문학에 큰 획을 남긴 작가로 생각됩니다.
7.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근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담배 피우는 장면들이 매우 자주 나오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팍팍 풀리게 합니다.
-지금까지 극히 개인적, <황금시대> 단상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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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거목같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