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스포] 넷플릭스 '킹덤 시즌2' 간단 리뷰
1. 넷플릭스 '킹덤' 시즌1은 작년 1월말에 공개됐다. 당시 나는 넷플릭스 미디어 행사에 참석해 남들보다 하루 빨리 시즌1의 1, 2화를 봤다. 그때 본 '킹덤' 시즌1의 인상은 진득하고 묵직한 기운의 정치사극에 가까웠다. 맛보기로 보고 흥미가 생긴 나는 '킹덤'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전부 시청했다. 당시 이 드라마는 2018년 10월 개봉했던 '창궐'과 비교됐다. 두 작품 모두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한량 느낌의 세자가 있었고 그를 따르는 무사(혹은 내시)가 있었다. 권력을 탐하려는 영의정이 있고 그는 왕을 능가하는 실세다. 여러모로 닮은 배경에서 '킹덤'이 '창궐'과 차별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음모와 지략이 오고 가는 싸움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즌2는 기대에 못 미쳤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확실히 '킹덤' 시즌2는 기대와 다른 결과물이긴 하다. 액션은 더 강력해졌고 이야기는 더 뒤통수를 친다. 무게감은 한껏 줄어들었고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사극의 기운은 빠졌다. 시즌1과 많이 달라졌지만 이것대로 나름 매력이 있다. 적어도 '창궐'보다는 이야기의 맥락이 합리적이다.
2. 시즌2가 전편과 달라진 점은 '슈퍼히어로 서사'에 있다. 더 정확히는 '토르의 서사'라고 봐도 좋다. 마블 히어로들의 특징은 결핍에서 시작한다. 토니 스타크나 스티브 로저스, 토르 오딘슨은 저마다 결핍이 하나씩 있다. 토니는 자신이 판 무기로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봤다.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행위는 무기판매에 대한 회개와 같다. 스티브 로저스는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한 군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야 집으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창(주지훈)과 꽤 닮아보이는 토르 오딘슨은 모든 것을 잃은 왕족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마다 죽음을 맞이했고 누나에 의해 자신의 왕국은 무너졌다. 동생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헤임달은 타노스에 의해 살해당했다. 토르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3. 창은 시즌2 초반부터 (좀비가 된) 아버지의 목을 베고 스승(허준호)의 죽음을 목격한다. 게다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스승을 괴물로 만들고 다시 한 번 목을 친다. 가장 믿을 수 있던 무영(김상호)는 자신을 배신했고 결국 죽었다. 적어도 창이 갖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토르보다 뒤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시즌2는 이것을 보여주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사실 창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세자였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변화를 주기 어렵다. 다만 좀 더 강해지고 비범해지는데서 "창이 변했다" 정도만 깨닫게 할 뿐이다. 그리고 창의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접근했다가는 이야기가 길어지고 느려질 수 있다. '킹덤' 시즌2의 여러 장점 중 하나는 전개가 빠르다는 점이다. 여기에 내면에 대한 묘사는 방해만 될 뿐이다. 작가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4. 반면 조학주(류승룡)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빌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히어로 영화에서는 빌런의 서사에도 대단히 집중한다. 조커나 타노스처럼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빌런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조학주는 3년전 왜군이 침략했을 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죽은 자들을 살려낸다. 극 중 대사에도 등장하지만 당시 전쟁으로 많은 군사가 죽었다. 전쟁은 그 정도로 치열했고 크게 밀렸다. 이는 '대의명분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 몇몇 빌런을 연상시킨다. 흡사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저주받은 인디언 묘지에 아이의 시신을 묻는 아버지와 같다. 다만 이것으로 조학주가 어떻게 권력을 탐하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왕이 죽고 세자인 창이 왕이 되면 조학주와 그 가문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창을 견제하기 위해 왕을 생사초로 살려뒀다고 이해할 뿐이다(시즌1에 이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5. 그런데 시즌2에서 조학주는 중요한 빌런이 아니다. 마치 '무한도전' 초창기에 유재석이 "조학주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아~!"라며 박수치는 것과 같다. 끝판대장처럼 묵직했던 조학주가 죽어버리고 메인빌런으로 중전(김혜준)이 등판한다. 시즌1에서 사극에 없던 낯선 중전을 보여줬던 이 배우는 중전에 대한 감을 익힌 것인지 내가 적응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한결 보기 편해졌다. 보기 편해진 중전은 그제서야 무시무시함을 뽐낸다. 궁 안에 좀비를 풀어버렸을 때 "아, 얘는 권력이고 뭐고 그냥 미친 애구나" 싶었다. 원래 그게 더 무서운 법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긴 호흡을 가진 정치사극이었다면 중전이 창을 제압하고 긴 호흡의 정치싸움을 했을테지만 이것은 좀비액션사극이니 그냥 이판사판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창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이것이 토르의 서사에 충실할 생각이었다면 그때쯤 '세자무쌍'이 펼쳐져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즌2는 그 길로 갈 생각이 없었는지 처절한 생존싸움으로 향한다. 다행스럽다.
6. 시즌2는 생략을 많이 한 만큼 궁금한 것도 많다. 특히 중전의 서사는 정말 궁금하다. 나름 메인빌런이고 '이 구역의 미친년'인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대사 몇 마디로 추측해야 할 뿐 알 수가 없다. 만약 '킹덤'의 스핀오프가 하나라도 나올 수 있다면 나는 중전의 탄생과정을 보고 싶다. 분명 이 아이는 딸이라서 아버지에게 핍박받는 수준이 아니라 딸 중에서도 서열이 밀려서 아버지에게 핍박 받았을 것이다. 그러다 자기보다 서열이 앞선 또 다른 딸을 지략으로 죽이고 왕까지 어떻게 해버려서 중전으로 올랐을 것이다. 나이로 따지면 처음부터 중전이 아닌데 기존 중전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을 수 있다. '중전 라이즈'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면 한국 드라마 중 연민정(이유리), 신애리(김서형) 이후 최강의 악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7. 중전 외에 범팔(전석호) 캐릭터도 재미있다. 괴물이나 좀비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범팔 같은 비호감에 허당 캐릭터라면 일찌감치 죽는다. 그런데 이 캐릭터는 서비(배두나)와 함께 큰아버지 조학주의 음모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변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의외의 검술까지 보여주며 창에게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아마 '킹덤'의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변화가 큰 인물이 아닐까 싶다. 범팔의 변화는 나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표현 중 하나다. 갑자기 각성해서 강한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꾸역꾸역 해나가고 힘들 때는 남에게 의지도 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한다면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범팔일 것이다.
8. 다시 세자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에 대한 슈퍼히어로 서사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창궐'이었다면 별일 없이 왕이 됐을 세자는 스스로 왕이 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원자(로 위장된)에게 왕위를 주고 자신은 세상으로 나가 역병을 정복하려고 한다. 익숙한 대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그는 조선이 필요로 하는 왕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그래.. 그리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쫓는거야.. 그는 왕이 아닌 조심스럽게 묵묵히 돕고 보호하는 구원자.. 세자저하이기 때문이지..". 슈퍼히어로 서사를 완성하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다. 시즌3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전지현은 강호를 누비는 어둠 속의 무사처럼 보인다. 시즌3에 이르게 된다면 이들은 본격적으로 슈퍼히어로처럼 굴지 않을까 싶다.
9. 결론: 시즌1에 비하면 더 가볍고 전개가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세세한 부분에서는 클리셰를 뒤집으며 의외의 재미를 준다. 혹시 시즌1이 별로였던 사람이라도 시즌2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신1) 드라마 '검사내전'을 볼 때 성사무관(a.k.a 카뮬로스 대군주)을 연기한 안은진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그 분을 다시 보니 반갑다.
추신2) '킹덤' 시즌2는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한다. 폰(갤럭시S9플러스)으로 이걸 감상하는데 다른 넷플릭스 작품과 달리 화면이 깨진다. 원래 올 하반기에 폰 바꿀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폰 바꾸고 싶어졌다.
추천인 4
댓글 6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아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다크나이트 엔딩은 좀 뜬금없이 느껴졌는데, 매끄럽게 시즌3로 넘어가기 위한 포석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ㅋㅋㅋ

시즌3 나온다면 주지훈이 흑막쯤될듯하네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