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용아맥 시사 후기 -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근 몇 년간 관람한 전쟁 영화 중 최고의 몰입력을 선사한 <1917>을 국내 상영관 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용산 아이맥스에서 관람하였습니다. 최고의 포맷에서 보는 최고의 체험 영화, 가히 영화적 경험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917>이 이토록 몰입력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시간이라는 제재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 덕분입니다. <1917>에서는 여느 전쟁 영화와 달리 넓은 개활지에서 수백 명의 병사가 치열하게 싸우는 대규모 전투 씬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전쟁이 휩쓸고 간 과거입니다. 독일군이 후퇴한 길을 따라 새로운 전선을 향해 나아가는 영국군 병사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 역)와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역)는 잔혹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죽음의 터를 마주합니다. 여기에는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성한 나무 한 그루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관객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포탄피를 보며 전투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원 컨티뉴어스 숏으로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현재적이지만, 이들이 전선에 다다를 때까지 통과하는 공간은 모두 전투 현장의 과거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묘한 이질감을 발생시킵니다. 카메라의 시간과 전쟁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경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참호 속 좁은 통로를 통해 시간의 선형적인 속성과 더불어 이 두 시간의 불일치를 시각적으로 묘사합니다. 터벅터벅 전선을 향해 걸어가는 데본셔 연대 병사들의 발걸음이 전쟁의 시간이라면 그들을 헤집고 나아가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속도는 카메라의 시간입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와중에 전쟁의 시간에 종속된 이들을 살려낼 방법은 그들을 앞지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생과 사의 경계로서 이들의 뒤에 있는 병사들은 생의 영역에, 앞에 있는 병사들은 사의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촬영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도 관객의 눈에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이 턱밑까지 추격해오는 듯한 긴박감을 부여합니다. 토마스 뉴먼 음악감독이 작곡한 "Sixteen Hundred Men"을 들어보시면 드럼의 하이햇을 4박자로 밟아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가는 소리를 표현해냈습니다.
"그들이 싸워야 할 것은 적이 아니라 시간이었다"라는 영화의 태그라인처럼 <1917>은 촬영과 음악, 각본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전쟁터 속 시간이라는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관객으로서 이러한 영화의 모든 요소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이맥스입니다. 화면과 사운드, 그 어느 것도 포기하기 아까운 이 영화의 미덕을 일반 상영관이 담아내기엔 그 그릇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보시는 분들이나 N차 관람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1917>을 좋은 스펙의 상영관에서 관람하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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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말 논리정연하게 잘 적어주셨네요
확실히 일반 상영관보단 아이맥스, MX관 , 슈퍼플렉스G관 에서 봐야지
1917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거같습니다.. 마지막장면에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네요..
MX관에서 시사로 봤고 목요일에 용아맥 가는데 기대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