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어떻게 오스카를 수상했나? 일본영화계와의 차이

이번에도 일본쪽에 꽤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겨봤습니다.
글이 좀 어려워서 애먹었네요. 오역 지적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리얼사운드라는 사이트의 기사입니다.
https://realsound.jp/movie/2020/02/post-502626.html
<기생충>은 어떻게 오스카를 수상했을까? 일본영화에는 없었던 한국의 ‘장기적 시점’
한국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한 4개 부문을 석권한 역사적 위업으로 막을 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비영어권 자본으로 만들어진 완전 외국어 작품으로서는 사상 첫 작품상이자, 아시아인이 만든 감독 수상작은 이안 이후 두 번째, 미국 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으로서 사상 최초. 영어가 아닌 언어의 작품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것은 17년 만의 일 등 실로 이례적인 기록들을 잔뜩 세웠다. 이처럼 아카데미상의 역사를 바꾼 ‘사건’ 때문에 다소 묻힌 감이 드는데 <기생충>은 국제장편영화상(과거 외국어영화상)도 수상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카데미상 자체가 미국 영화계의 상이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그 주요부문에서 아성을 깨트린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여러 한국영화 명작과 걸작들이 아카데미에 문을 두드렸지만 노미네이트는 물론 예선에조차 들지 못했다(작년도 <버닝>은 처음으로 예선까진 진출), 외국어영화상/국제장편영화상이야말로 애초에 한국영화계가 오랜 세월 동안 목표로 했던 것이다. 신상옥, 유현목, 임권택, 그리고 이창동 등등 위대한 선배들이 이루지 못했던 비원을 짊어진 봉준호는 그것을 확실하게 성취하내고 말았다.
때문에 이번에 시상식에 4번이나 무대에 오른 봉준호의 수상 소감에서 그러한 의식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각본상 수상 때는 심플하게 한국영화의 첫 오스카 수상이라는 쾌거의 기쁨을 중심으로 말했는데, 두 번째 국제장편영화상 때는 상의 명칭 변경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방향성에 감사를 표하면서, 배우와 스탭들을 호명했다. 필연적으로 시사회장 전체가 그들의 공헌을 칭송하면서,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아카데미상에 보다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됨과 동시에, 오랜 세월 한국영화계가 목표로 해온 할리우드라는 벽이 사라졌음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대원성취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상을 거머쥐었음에도 한국영화의 기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 또한 그 소감에서 살짝 엿보였다. 물론 그때까진 아직 작품상의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모두들 올해는 <기생충>의 해가 되었음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덧붙여서 3번째 무대가 된 감독상에선 작가로서 자신의 근간을 이야기하면서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두 영화계 선배들을 추켜세우고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경의도 표명했다. 4번째 작품상에서는 자신도 수상자 중 한 사람일 뿐이라며 곽신애(유색인 여성 프로듀서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에게 소감을 넘기고 자신은 조금 떨어진 구석에서 서있었다. 이렇듯 깔끔하게 분배가 된 수상 소감을 통해 생각해보면, 봉준호 자신도 여러 차례 이름이 불릴 것을 예상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한 자신감과 향상심이 있었기 때문에야말로, 그토록 재밌는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편 이번 수상 결과를 접한 일본에서는 일본영화의 현 상태를 비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이웃 나라들에 대한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파급된 열등감에 가까운 반발이, 영화에 그치지 않고 문화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 <기생충>이 할리우드의 대작들과 당당히 맞서서 승리를 쟁취한 것으로 인해, 일본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는 그리 쉽게 넘을 수 없는 큰 격차가 생기고 만 것이 아쉽게도 명백해 보인다.
일본영화와 아카데미상의 관계는 한국영화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50~60년대에 일본은 외국어영화상에 단골로 오르는 주요 국가 중 하나였다. 이후 데시가하라 히로시, 구로사와 아키라가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미국영화에 스탭으로서 관여한 일본인이 상을 받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작품 그 자체의 평가로 따지면 <굿’바이>가 2008년에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작년에 <어느 가족>이 같은 부문에 후보로 오른 것 외에, 일본의 장기인 애니메이션 부문에선 자주 후보에 오르며, 실사영화에 관해서는 이전까지의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하나의 목표로 인식되고 있다.
‘내수용 대중 작품’이 나쁜 건 아니다.
SNS상의 의견들을 둘러보면, 일본 내수 시장용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만화 원작의 눈뽕영화(キラキラ映画)’나 ‘인기 배우, 아이돌의 영화’, ‘TV 방송국이 주도한 작품’이 악의 화신(일본 영화계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처럼 여겨져서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는데, 과연 그런 작품이 정말로 문제인지 의문시된다.
생각해보면 한국은 물론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형태는 조금 달라도 분명 내수용 대중 작품이 다수 만들어지고 있고, 오히려 그런 작품들이 각국의 박스오피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할리우드의 이른바 세계 시장용 블록버스터는 제쳐두고서, 그러한 대중적인 내수용 영화와 해외 영화제 등을 목표로 한 해외용 영화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영화는 더욱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필두로 하마구치 류스케, 가와세 나오미, 후카다 코지, 구로사와 기요시와 장르 영화에 특화되긴 했지만 미이케 타카시나 시미즈 타카시처럼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도 다수 존재한다.
(이런 영화들을 '눈뽕영화'라 부르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영화에 부족한 건 무엇일까. 작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올해 아카데미상 분장상을 수상한 카즈 히로는 “일본에선 꿈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며 수상 직후 기자 회견에서 말했다고 한다. 지금 일본영화계에 부족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당당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한국영화계에선 <쉬리> 이후에 특히 할리우드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오락영화를 염두에 둔 제작자들의, 반쯤은 무모한 것으로 여겨지는 야심이 근간에 있으며, 몇 차례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와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생하는 조성금이라는 국가적인 지원이 있고, 재밌는 영화는 띄워주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도태시키는 정직한 여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늘 관객의 시선을 의식한 재밌는 작품을 목표로 하고, 결과적으로 오락거리들이 다양해지는 가운데서도 영화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기는커녕, 매년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치우는 작품들을 배출하며 <기생충>을 탄생시킨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이번에 작품상을 비롯해 최다 11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조커>의 토드 필립스의 경우도 말하자면 <행오버> 시리즈를 연출했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그 영화는 세계적인 인기 시리즈가 됐지만, 원래대로 따지면 그 역시도 미국 내수용 대중 코미디 영화 계열에 포함되는 영화이다. 또 작년에 <바이스>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도 하찮게 여겨질 수도 있는 내수용 작품들을 통해 작가로서의 소질을 제대로 깨닫고선 수작들을 선보이는 시스템을 제대로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일본에선 ‘눈뽕영화’를 연출해 어느 정도 흥행 성공을 거둔 감독에게 제안되는 차기작 역시 ‘눈뽕영화’이고, 독립영화계에서 아무리 큰 주목을 받은 감독이라도 단숨에 메이저 대작을 맡기는 사례는 대단히 드문 것으로 보인다. 하물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작가에게 좀처럼 자유를 주지 않고, 웬만큼 지명도가 높은 감독이 아니고서야, 이른바 ‘흥행할만한 소재’를 흥행할만한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도록 하는 현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물론 영화가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어느 정도 모험이 없이는 성장도 할 수가 없다. 단편용 스토리텔링과 작가성으로 인기를 모은 신카이 마코토가 <너의 이름>으로 흥행 대성공을 거두자,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작가성을 단숨에 해방시킨 <날씨의 아이>에서 거칠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것처럼, 250억 엔을 벌어들여야만 다소의 자유가 주어지는 상황은 분명 너무나도 꿈이 없는 환경이다.
또 다수의 일본인들이 한 해에 극장에서 영화를 1~2편 정도만 본다고 해서 안이하게 긍정적인 메시지만을 담거나, 무작정 이름만 알리면 된다는 식의 소극적인 홍보(이것은 외국영화에도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에 동조라도 하듯이 비평 문화가 쇠퇴하고, 마니아층 사이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비판받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 풍조가 언뜻 보이곤 한다.
때문에 누구나가 좋아할 법한 작품을 목표로 극단적인 감정에 의존한 무난한 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일반 관객층이 ‘한 해에 1~2편’으로 선택하는 영화가 무난한 것으로만 만들어지면서, 그 뒤를 잇는 3번째 영화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흥행도 만족스럽지 못해서 현장에 내려오는 예산은 풍족하지 못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무난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 환경은 악화, 작품과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애를 써야 하는 등, 악순환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수용 대중적인 작품’, ‘관객을 모으는 인기 배우를 캐스팅한 작품’의 존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눈앞의 흥행에만 눈을 빼앗겨서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흥행에서 얻은 이익이, 기존에 없던 미래의 작가나 스탭들, 거기에 더해 까다로운 관객의 육성을 위해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할당이 된다면 틀림없이 무언가가 바뀐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들은 진작부터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지만, 그럴 기회를 좀처럼 얻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절망감, 위기감 가운데서 강요되는 부정적인 변화와 비교하면, 눈앞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앞을 내다보는 향상심을 지니는 긍정적인 변화가 더 나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000년대의 한국영화계는 내수용 코미디 영화나 스타 배우들의 아이돌 영화 등 무난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봉준호나 홍상수와 같은 작가들의 배출로 연결돼서 흥행적으로도 국제평가적으로도 대약진을 한 2010년대로 이어졌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된 일이 아닐 뿐더러. 과거 선배들이 이뤄냈던 것도 아니며, 만드는 사람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영화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증명된 것은 오락물이든 예술작품이든, 호불호와 같은 감정론마저 초월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기만 한다면 세계적 수준으로 역사를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쿠보타 카즈마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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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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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
뭐 작년에 흥행공식 따라간 영화가 많이들 망해서 앞으로는 좀 나아지려나요? ㅎㅎ



확실히 20세기에는 일본에도 구로자와 아키라 등 굉장한 감독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밖에 모르겠군요.

이런종류의 글이 계속 나오는걸보니 일본이 충격을 많이 받은듯.. 근데 글 내용이 다들 좋은걸 보면 이 기회로 일본 영화도 발전할듯하네요 충격요법 ㅋㅋ

한국도 요즘 너무 뻔해빠진 상업영화들이 자주 나오는듯...이런 영화들이 독과점과 홍보로 흥행하고... 한국도 그냥 봉중호가 특별하거지 빼고나면..
우리나라라고 대단한 것도 없지만, 일본과 많이 비슷한 듯





정확한 분석이지만 일본은 이미 영화계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너무 경직되어버려서 현재 상태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최고 배우들 동원해서 우익 영화나 만드는데 영화계만 정신차린다고 될일이 아니죠.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수용 작품의 다양성과 질적 성장이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드는 기회로 이어진다. 좋은 의견이네요.
다만 오히려 자본이 투입된 한국영화들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모양새를 보면 비단 일본영화계를 걱정할 때는 아닌거 같아요.
작년말 제일 기대했던 백두산을 보고 소위 돈 좀 들였다는 영화들 질이 점점 떨어져가는 것 같거든요.
더 큰 문제는 이 작품이 800만이 넘어서 또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관객이 봐줄 걸로 생각할까 무섭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우리나라 영화계를 살펴보게 하는 글이네요. 어쩌면 우리나라의 2030년대에 적용될지도 모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제도를 개선해야겠죠.
우리나라 영화계는 현재는 작가진의 보강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또한 자본, 제작, 극장의 분리도 시급한 것 같고요.
참 여러가지가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완벽한 때 였던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기사네요. 일본의 사정을 기사로 보니 한국 내 정치 문화권 사정이나 영화계 사정이나 헐리웃 및 전세계 트렌드 변화가 꾸준히 이루어진 과정 속에서 딱 알맞은 때에 봉준호 감독님도 개인적으로 영화속에 담고자 했던 내용을 보여주는 방식이 정점을 찍어 이뤄진 결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도 일본 영화 시장 처럼 어느 한쪽으로 기울려 있는 시장 구조이죠..(극영화 / 애니메이션)
그럼에도 (미국 부심에 있어서) 일본도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기에 조만간 아카데미 상을 일본 영화도 한 자리 할거라 생각됩니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미국영화 시장에서 1952년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전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대중들은 의외로 수준이 높고 비판적이라 끊임없이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분위기가 바뀐 그들만의 일본식 시스템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기사군요.
우리들이야말로 이럴때일수록 한단계 업되어 전진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기를 응원해보네요.
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영화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