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관람평(스포없음)
어제 관람했습니다.
비록 스콜세지는 그 큰 예산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아 찍었지만, 이 영화를 보실 분이라면, 일시정지버튼을 마음대로 누를 수 없는 극장이란 환경에서 만나시길 바랍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관람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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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발언 때문에 신작이 짊어진 책임감은 갑자기 막중해졌다.
그 스스로가 말한 ‘시네마’란 무엇인지 증명해야 하는 심판대 위에 섰기 때문이다.
스콜세지는 시간의 힘을 빌려 그의 말을 실천했다.
역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어둠의 히스토리를.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경험의 총체를 동원해 자신만의 비전을 관객에게 비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스로 서부극을 종결짓겠다는 듯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만들었다면,
마틴 스콜세지는 본인의 손으로 마피아 갱스터 영화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듯이 <아이리시맨>을 만들었다.
여기엔 쾌감이 없다. 장르가 가진 효과는 소거된다.
영화의 원작이 된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는 영화 초반에 이미 언급된다.
여기서 ‘페인트 칠’은 어떤 의미로든 밝은 뉘앙스는 아닌 게 분명.
구린내가 풍긴다. 어둠의 세계에 쓰이는 용어 중에 우리에게도 유명한 ‘공구리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과 상통하는 말로 생각해도 좋을듯하다.
히트맨(프랭크 시런)의 생애를 통해 바라보는 미국 현대사의 그늘이 길게 드리우고 있다.
영화 속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는 이제 이름만 겨우 들어볼 정도지만,
너무나 유명한 장기 미제 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은 이 영화의 메인이벤트.
그 외에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피그만 침공, 워터게이트 사건 등등
영화에서 내내 따라가는 시런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교차되는 굵직한 사건만해도 이 정도다.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은 오랜 세월 충성을 바치고 성실(꼭 좋은 의미는 아니다)하게 살았지만
결국 무력하다. 그가 처한 비극적 딜레마는 자신이 여러 경계선에 걸쳐있기 때문.
가족이라 일컫는 이들과 진짜 가족 사이에 자신이 처한 교집합,
마피아와 노동조합 두 집단 사이에 처한 자신의 입지,
이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들어 있는 아일랜드 인으로서의 정체성까지.
마피아는 암세포처럼 미국의 여러 장기들에 전이되어 가는 중이다.
전미 트럭 운송 조합의 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는 야망과 확장을 위해 악귀들을 끌어들였고,
거대 조직 내에서 각자의 이해갈등과 암투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프랭크는 그와의 첫 대화 이후 지미를 패튼장군 같다고 한다.
<패튼 대전차 군단>으로 유명한 조지 S. 패튼 장군의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강하지만 굽히지 않고 자존심이 강한 불같은 인물.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는 시런에겐 호의를 베푼 은인이자 훗날엔 정신적 지주.
시런을 키웠지만, 죄악을 잉태한 업보의 책임이 크다.
이 세 사람의 세월은 휠체어에 겨우 육신을 기댄 시런의 회고속에 재생된다.
시런의 죄악은 어디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그의 운명은 이미 2차 세계대전부터 예견된 것. 그는 냉혹한 세상을 경험했다.
삶을 영화처럼 디에이징 시킬 수 있다고 한들, 과연 악행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거역할 수 없는 잔혹한 숙명의 총성들이 수도 없이 영화 속에 울려 퍼진다.
죄악의 시초부터 최후(프랭크 시런의 마지막 고백은 2003년)까지 60년의 장대한 여정이 이어진다.
신화를 만들었던 마틴 스콜세지는 본인 손으로 신화를 해체한다.
이 모든 암투는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가.
수많은 인물의 초상 아래에 뜨는, 각자의 최후에 관한 논픽션의 문구들....
시간이 진정 무서운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육신은 유한하고 구원받기에 너무 늦었다.
시런의 딸 페기(애나 패퀸)은 평생에 걸쳐 지켜보았다. 그녀는 끝내 그 더러운 아버지의 손을 용서할 수 없다.
영화는 인물들의 최후를 비장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허망할 정도로 비루한 ‘일상’일 뿐.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기점으로 최후반 30분은 굉장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시네마의 마법이 무엇인지 잘 안다.
고전적 스토리텔링 위에 디에이징을 접목해 시간을 워프하고 그걸 보는 우리들을,
209분의 러닝타임을 시간감각을 왜곡하며 워프시킨다.
이 영화의 첫 편집본은 4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그 버전을 보고 싶다.
어쩌면 이 영화의 부분을 뜯어서 논하려는 시도는 중단하는 편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오직 한 인간의 60년 세월을 한 호흡으로 연결시켜 총합으로 바라볼 때에
그 삶의 두께가 비로소 어렴풋이 엿보일 것이다. 반쯤 열린 문처럼.
두 번 나오는 반쯤 열린 문, 프랭크나 지미에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싶지 않은 불안감의 표출이었지만,
그 사이로 시대의 악령들이 스멀스멀 들어오는 듯하다.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죄악의 대서사시. 시간으로 쌓아올린 시네마의 힘.’
★★★★
텐더로인
추천인 9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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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가 끝맺는 시점은 1999년인 거 같아요. 요양원의 TV에서 코소보 사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조페시는 어쩌면 다소 저평가 된 위대한 배우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3~40분 때문에.. 지금도 후유증이...... 아.. 인생무상.. 허무함.. 우울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