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자막으로는 전달되지 않을 포인트들
극장 자막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부 불법 사설 자막 등에서는 특정 용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기 위해 부가 설명을 해주는 '역주'같은 게 있죠. 그런 걸 덧붙인다는 느낌으로(물론 제가 번역한 게 아니니 역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극장 자막만으로는 전달되기 어려울 재미 포인트들을 몇 개 짚어봤습니다.
일부 사소한 디테일과 대사들을 적어두긴 했어도 스포일러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아서 제목에는 안 적어뒀는데, 민감하신 분들께는 스포일러일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읽지 않고 뒤로가기 하실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마련해 뒀습니다.
0. 자막이라기 보다는 제목 얘기라 0번으로 시작.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시작하는 제목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오마주라는 얘기도 있지만, 타란티노는 그 두 작품과 무관하게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붙이고 싶어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날 옛적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건 동화(fairy tale)입니다."라는 걸 알고 들어가라는 장치인 셈이지요.
1. 릭 달튼은 처음에 스파게티 웨스턴을 'farce'라 지칭합니다. 이 부분이 자막으로는 '코미디'로 번역이 됐습니다.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말에서도 '희극'이라는 표현이 영어에서는 'farce'로 표현되는데, 사실은 좀 더 쎄게 표현되어야 늬앙스가 제대로 전달이 될 단어입니다. 어원상으로나 사전적 의미상으로나 소극(笑劇), 일반적인 '코미디'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보다 훨씬 더 급이 낮은 웃음거리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경멸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걸 알고 가시면 좋습니다.
2. 이 영화에는 개가 두 마리 등장합니다. 클리프 부스가 키우는 개 브랜디와 로만 폴란스키 집에서 키우는 개 닥터 사퍼스타인. 이 중 닥터 사퍼스타인(Dr. Sapirstein)은 폴란스키가 영화의 시점보다 1년 앞서 세상에 내놓은 [악마의 씨(Rosemary's Baby)]에 나오는 늙은 산부인과 의사 배역의 이름입니다. 발음 상으로는 '사퍼스틴'에 좀 더 가깝긴 하지만. [악마의 씨]에서 사퍼스타인 박사는 악마 숭배 집단의 일원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 가족은 강아지의 이름을 저렇게 지었다고 합니다만, 그 강아지의 이름이 굳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것은 차후 맨슨 패밀리와, 샤론 테이트 사건의 다른 피해자의 등장을 예견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강아지는 실제 샤론 테이트 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에, 테이트와 같이 살해당한 보이테크 프라이코프스키의 차에 치여 죽었거든요.
3. 삽입곡이 아니라 대사 속 이름으로 등장하는 전설적인 락 뮤지션이 한 명 있습니다. '더 도어즈'의 짐 모리슨. 샤론 테이트가 집에서 '폴 리비어 & 더 레이더스'의 레코드를 틀어놓고 춤을 출 때, 더부살이 중인 제이 시브링에게 이런 말을 던집니다. 네가 폴 리비어 & 더 레이더스에 맞춰 춤을 췄다고 짐 모리슨에게 내가 얘기할 거 같아서 그러냐고. 제이 시브링의 직업은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짐 모리슨 하면 바로 떠오르는 헤어 스타일을 고안해 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언급은 제이 시브링의 직업과 그가 맡았던 인물이 얼마나 거물급들(커크 더글러스, 스티브 맥퀸, 프랭크 시나트라 등)이었는지, 또 그만큼 얼마나 업계에서 잘 나갔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인 겁니다. 물론 후반부 대사에서도 시브링의 직업과 수입을 넌지시 알 수 있는 언급이 스쳐지나가기도 합니다만. 그 외에도 TMI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이 시브링은 이소룡의 할리우드 진출에 다리를 놓아준 인물입니다. 샤론 테이트와 이소룡 간의 접점이 영화 속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것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지요.
4. 클리프 부스와 세 번 마주친 끝에 스판 영화 목장으로 꼬드긴 맨슨 패밀리 일원의 이름은 푸시캣(Pussycat)입니다. 클리프와 푸시캣이 스판 목장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의 온화한 리더 역할을 맡은 듯한 집시(Gypsy)라는 인물은 클리프에게 감사를 표하며 "We all love Pussy(우리 모두는 푸시를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푸시캣이라는 이름을 또 줄여서 푸시라고 부른 것이지요. 클리프는 이에 "Yes, we do."라고 긍정하는데, 이 대사는 사실상 그냥 섹드립입니다.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이니 이 글을 읽으실 분들도 분명 성인이라 믿고 말씀드린다면, 'pussy'라는 단어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속어인 점을 이용한 겁니다. 영화가 대놓고 관객들을 섹드립으로 웃기려고 넣은 게 명백한데, 일종의 동음이의어 개그이다보니 한글 자막으로는 전달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에 이 대사를 듣고서 킬킬댄다면 "나 영어 쫌 한다"는 자랑질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5. 이건 자막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포인트라기보다는 자막이 잘못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릭 달튼이 자기 집 앞에서 히피들이 차를 공회전을 하며 시끄럽게 굴자 쫓아내려고 쏘아붙인 말 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Look chief, you don't belong here!" 여기서 'chief'가 '대장'이라고 자막에 나왔는데, 사실 맥락상 저는 '추장'이라고 번역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hief'라는 단어가 속칭 '인디언', 즉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종적으로 비하할 때 쓰이는 단어거든요. 히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히피를 혐오하는 사람이 히피를 향해 'chief'라고 한 건 '원주민 추장'이라고 인종주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거기다 'you don't belong here'도 여기는 너희들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인종주의적 화법이고요.
LinusBlan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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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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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은 알아들었어요ㅋㅋ 자막만 보면 그 상황에서 좀 뜬금없는 대사죠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멕시코 삐끼님께서 스트립 클럽 홍보를 할 때
"화이트 푸시, 레드 푸시, 블랙 푸시.. 위 갓어.... "
번역으로는
"우리 클럽에 오면 백인X, 흑인X, 동양X, 여러 계집들이... "라고 되어 있어서
한영사전을 들춰서 pussy의 뜻을 살펴보았죠.
중학생때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 감독님은 로드리게즈였지만,
타란티노 감독님을 감독이 아니라 배우로 처음 만났던 저로서는 강렬한 속어였던 거죠..
전 비디오로 봐서리 ㅎㅎㅎㅎ
n차할때 들어봐야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