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종자(The Bad Seed, 1956)
새로운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화 [검은 집]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머빈 르로이 감독의 1956년작 [나쁜 종자 The Bad Seed].
[나쁜 종자]의 주인공 로다(패티 맥코먹)는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검은 집]에서 정의된 ‘사이코패스’의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보기만 해도 꼭 안아 주고 싶은
(A basketful of hugs는 영화속에서 로다가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대사 중 하나다)
10살도 채 안 된 앳된 소녀가 아닌가.
원래 앨러리 퀸이 소설 [Y의 비극]에서
독자들을 경악시킨 반전의 장치로 사용하기 전까지
어린아이를 살인마로 묘사하는 것은
‘어린이와 여성은 약자이므로 보호 대상일 뿐’이라는
서양 부르주아 사회의 오래된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나쁜 종자]는 이 금기에 정면으로 들이대어
100년 헐리우드 영화 역사에 손꼽히는
독특한 꼬마 살인마를 탄생시켰다.
금지옥엽같은 딸 로다와 시간을 보내던 크리스틴(낸시 켈리)은
지역 뉴스에서 로다의 반 친구가 사고로 익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친구의 죽음으로 우울해할 딸이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지만
오히려 로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평스럽게 행동한다.
곧이어 로다의 학교 선생님과 죽은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로다가 죽은 아이의 기념패를 뺏으려 했다는 얘기를 듣자
크리스틴은 자신의 딸이 친구의 죽음에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입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고 살아온 크리스틴은
익사 사건 직후 집을 방문한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듣고나서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악명높은 살인마 ‘베시 뎅커’ 즉, 자신의 친어머니를 기억해낸다.
그녀는
관리인 르로이(헨리 존스)마저 자신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딸 로다를 목격한 후
자신이 계승한 악의 피를 스스로 끊고자 결심한다. (결자해지 -_-)
[나쁜 종자]의 외연적 구성은
프로이트주의자인 집주인 데이글 여사와
작가인 크리스틴의 양부의 대화,
그리고 교과서적으로 양식화된 로다의 캐릭터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유전자 결정론을 사회결정론보다 우위에 놓는
일종의 범죄심리학 사례 연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천사의 얼굴 뒤에 살인자의 썩소를 숨긴 주인공 로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치 연극배우와도 같은 과장된 어조를 일삼는 등장인물들의 관계에서
한때 파시즘의 동반자이기도 했던 우생학의 관점이 암시된다는 것이다.
집주인 데이글 여사는 정신분석을 통해
크리스틴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들'과는 '다른 무엇'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고
등장인물 중 유일한 하층계급인 르로이는
로다에 대한 집요한 추궁을 통해 그와 그녀가 결국은
본질적으로(본성 혹은 계급)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결국 '모녀'가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크리스틴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
즉, '그들'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이다.
전체 극의 구성에 비한다면
마지막 장면은 좀 황당한 편인데
[Y의 비극]과 같은 계산된 결말을 예상한 관객이라면
중상을 입을 수도 있겠다. -_-
PS. 이 영화의 리메이크 소식이 들리던데 어쨌거나 로다 역을 누가 맡게 될지가 가장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