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악질경찰' 초간단 리뷰
1. 오래전 마동석 주연의 영화 '노리개'를 보고 나는 '분노의 상품화'에 대해 우려한 적이 있다. 대중들이 뉴스의 강력범죄나 권력형 범죄를 보고 분노하는 것들이 언젠가 상품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분노의 상품화란 자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해 이슈를 만들고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나는 영화로써의 문제 뿐 아니라 여러가지 문제를 감안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악질경찰'이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가져왔다고 했을때 나는 '분노의 상품화'를 우려했다. 영화가 세월호를 팔아서 장사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영화를 다 봤을때 다행히 세월호를 팔아먹었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가 도덕적인 선을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삭 빠르게 피해갔다고 표현하는게 맞다.
2. '악질경찰'의 배경은 안산 단원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많고 강력범죄도 꽤 많은 도시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의 직격탄을 맞은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이것은 세월호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가겠다는 선언과 같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안산단원경찰서' 문패가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와 달리 세월호를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는다. 영화에서 '세월호'라는 키워드가 드러나는 지점은 송지원(박소은)과 그 주변인인 지원 아버지(임형국), 미나(전소니) 정도다. '악질경찰'의 주된 줄거리는 불량스런 경찰 조필호(이선균)가 더 불량한 재벌의 비리에 엮인 뒤 그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의 줄거리 축은 세월호와 상관이 없다. 사실 '세월호' 키워드를 완전 빼버려도 이 이야기의 틀은 바뀌지 않는다.
3. 대신 '악질경찰'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은유를 곳곳에 심어놨다. 조필호와 미나, 권태주(박해준)의 관계에 이들을 아우르는 재벌 정이향(송영창)의 관계는 세월호 사건에 얽힌 여러 관계(익숙하게 알고 있는 관계)들을 축약해놨다. 게다가 교복입은 아이들이 혼비백산하는 장면과 그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하는 조필호의 모습은 세월호의 축약판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사건에 개입을 하면서도 사건에 대해 영화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만에 하나 재벌과 약자의 관계를 두고 분노하라고 만든 영화라면 그 의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앞서 말한대로 '분노의 상품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분노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 정확히는 '화내기도 지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이미 화나는 일이 넘쳐 흐르는데 영화 속 어설픈 재벌에게 화낼 여유는 없다.
4. '악질경찰' 속 재벌은 여러 면에서 어설프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크게 어설픈 지점은 조필호에게 입막음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정이향은 조필호의 입을 틀어막는 조건으로 7800만원을 현금으로 건넨다. 우리나라 탑 재벌이 비자금 7800억원의 명운을 걸고 막은 돈이라기엔 너무 작은 금액이다. 만약 그 정도 재벌이라면 개인자산만 1조3000억원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재벌순위 50위권에 있는 조현준 효성 회장도 개인자산이 7700억원이다. 중요한 동영상의 입을 틀어막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7800만원은 너무 작다. 게다가 조필호에게 지금 필요한 돈은 2억원이다. 정이향이 그 사정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애시당초 조필호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부족한 돈이다(5만원권을 놔두고 무식하게 1만원권으로 주는 것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게다가 '장학증서 수여식'이라는 사업도 학생들을 배경으로 끌어오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다. 그런 식으로 장학사업 하는 기업은 본 적이 없다. 검경과 유착한 재벌의 모습이라는 점은 흥미로웠으나 딱 그것 말고는 볼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 재벌은 전혀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고 세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권태주의 주짓수가 더 세보인다.
5. 그런데 재벌 못지 않게 조필호도 디테일이 매우 떨어진다. 이 영화의 예고편에도 등장한 조필호의 대사 중 "나 경찰 무서워서 경찰 된 사람이야"라는 말이 있다. 그는 대단히 막 사는 것 같지만 비타민과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작은 체구의 여학생 미나가 손만 움직여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조필호는 보기와 달리 매사에 대단히 조심하고 신중하다. 그런데 검사가 으슥한 세탁소에서 보자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다. 혹자는 조필호의 신중함은 숙련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포커페이스가 안되기 때문이다. 감정을 숨기는 훈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신중하고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에 가깝다. 그냥 조심스럽기만 한 사람이다. 그런데 검사가 검찰 사무실이 아닌 으슥한 세탁소에서 보자는 말을 믿고 따라간다. 나는 그 순간 조필호의 캐릭터성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이야기에 집중도 되지 않았다.
6. 결말에 이르러, 나는 이 영화가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80%는 확신한다). 저 난리굿을 친 조필호가 죽지 않았다는 점이 의외였고 이상한 해피엔딩을 시도한 점도 정 떨어지게 만든다. 게다가 양희숙(이유영)과 소희(권한솔)의 관계를 보면 조필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느껴진다(그래야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가슴팍에 총을 맞고 살아나서 휠체어도 타지 않은채 걸어다니는 걸 보면 데드풀인가 싶을 지경이다. 이야기의 합리성을 부여하는 차원에서라도 조필호는 죽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만약 감독이 세월호를 상징적으로 집어넣으면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면 조필호는 아이들을 구하고 죽는 어른이 돼야 했다.
7. 결론: 참 얍삽하게 만든 영화다. 얍삽함이 지나쳐서 재미조차 휘발돼버렸다. 이 영화가 지금보다 더 잘 나오기 위해 이야기에 수술을 감행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그것조차 의미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수많은 오류들을 '영화적 허용'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보자. 그런데 그 영화적 허용들이 재미를 반감시킨다면 이건 허용해선 안 될 일이다. 영화는 그 오류들을 얍삽한 트릭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나 잘 만들고 쿨한 척 해도 못 만들고 지저분한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그냥 못 쓰고 못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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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세월호라는 키워드를 사용한 의도가 잘 이해가 안됐어요.
그래서 더 보기가 싫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