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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뒤늦은 관람평(스포x)

텐더로인 텐더로인
1006 3 7

1.jpg

 

어제 저녁에 보고 왔습니다. 새해 초부터 감격스럽군요.

이르지만 올해의 베스트에 오를 만한 작품을 만나 기쁩니다.

저에게는 최근 본 가장 뛰어난 음악영화입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평입니다.

 

--------------------------------------------------------------

 

 

19세기부터 러시아엔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심장은 모스크바이며 머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여기서 말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구소련시절 명칭이 바로 이 영화의 무대, 레닌그라드다.

문화 예술에 있어 유서 깊은 이 도시에서,

젊은 록 뮤지션들이 또 하나의 소중한 유산을 남긴다.

 

현 푸틴 정권 하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저항이나 마찬가지다.

록의 근원적 가치가 무엇이던가? 바로 저항정신.

꼭 정치적이지 않더라도 세상의 억압적 모든 것들에 대한 항거.

감독부터가 정치 탄압으로 가택 구금되어 촬영이 중단된 일도 있었다.

 

관객 누군가는 음악의 독법으로, 누군가는 사랑의 독법으로,

또 다른 이는 젊음의 독법으로 이 영화를 마주할 것이다.

다양한 갈래에서 접근가능하다.

 

<레토>가 담아내는 레닌그라드의 언더그라운드 무대는 1981.

록의 아이들에게 축복받지 못한 시대. 망가져가는 동구권.

감각적 뮤직비디오를 보는듯한 뮤지컬 씬들이 불현듯이 밀어닥친다.

즉각 떠오르는 현대음악사의 빼놓을 수 없는 날짜, 198181.

바로 MTV가 개국한 역사적인 날이다.

청각의 경계를 허물고 비주얼과 극적으로 만나던 순간, 눈으로 젖어드는 음악들.

이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로 유쾌하게 시치미 떼고 마는 그 환상성.

돌연변이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당혹스런 신선함.

마치 <동주>의 시처럼 칠흑 같던 현실의 장을 잠시 이탈한다.

 

이 영화는 특정인물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

주인공이었을 수도 있었을 빅토르 최가 주는 아우라를 최대한 지우고

그 시대의 지하에서 꿈틀대던 에너지를 포착한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펑크라는 인물이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열차 속에서 냉전의 일상을 보여주다가 느닷없이 프레임 브레이크를 동반한 ‘Psycho Killer’로 이어진다.

 

<레토>는 어떤 식으로든 소수나마 현재 러시아 국민들을 자극하고 고취시킬 것이다.

더불어 한국의 청년보단 중장년 관객들에게 훨씬 깊은 감흥을 선사하리라 본다.

내가 그렇게 소비하고 흘려보냈던 젊은 날의 열정을 재확인하는 과정들.

아직 기억하지 않는가?

특이한 이마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냉전을 종식시키기 이전의 차디 찬 소비에트 연방 시절을.

 

루 리드의 ‘Perfect day’가 깔리는 씬은 올해 본 가장 마법 같은 순간.

계단을 오르며 듣는 그 서글프며 황홀한 양가적 감정.

이 영화는 이입하고 싶은 인물을 아무나 선택해서 따라가도 된다.

나는 마이크의 경로를 통해 따라간다. <아마데우스><스타 이즈 본>을 결합시킨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전자에선 시기를 빼고, 후자에선 동지애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흑백의 체제 속에서 꿈틀대며 뚫고나오는 에너지의 생동감이 나를 매료시킨다.

순간의 컬러는 색채의 짜릿함을 전한다.

 

러시아어로 여름이란 뜻의 <레토>

러시아 록 씬의 초기 개척자들은 강렬한 햇살 같은 생을 살았다.

이들에게 자유는 곧 여름의 이미지다.

그들이 옷을 벗어던지고 만끽하는 여름처럼,

미세먼지에 지친 관객이 잊은 자유의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바란다.

눈물 날 정도로 신선한 공기를.

 

 

 

차가운 체제의 경계를 뚫고 나오는 색채의 자유와 에너지

 

 

★★★★

 

 

 

 

 

+ 징병 신체검사를 받는 중에 엉덩이를 벌리는 장면을 보며, 역시 만국공통인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더군요. 저도 해군에 들어가서 신검을 받던 그때가 생각나며...

텐더로인 텐더로인
33 Lv. 172345/190000P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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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흑백 영화인데도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

14:15
19.01.17.
profile image
happygroot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생동감ㅠ...시대는 모노의 체제인데
14:24
19.01.17.
profile image 2등

계속 곱씹어보니 기억나는 장면이 몇가지 있어서 좋았어요

16:17
19.01.17.
profile image 3등

확실히 영화가 누군가 1명을 비추기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물론 저도 마이크에 몰입해서 봤지만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스타 이즈 본>이 떠올랐습니다.(마이크와 빅토르의 관계에서 비춰봤을 때요)

으흐흑 이렇게 <레토>에 빠진 분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올해의 최애영화입니다.

23:51
19.01.17.
profile image
셋져
댓글 확인하자마자 셋져님 글 검색해서 읽었습니다. 깜짝 놀랄정도로 저와 비슷한 감흥(심지어 인용되는 영화들까지)을....반가운 마음이군요.
23:56
19.01.17.
profile image
텐더로인
<레토>가 호불호가 갈리다보니 나름 열심히 홍보중인데 이렇게 비슷한 감흥을 가지신 분을 만나게된 것은 영광입니다.
00:03
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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