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고양] 깔 가치도 없는 쓰레기 영화

(다른 포스터들은 너무 수위가 높아서 그나마 양호한 걸로 올립니다)
어린 시절 즐겨 봤던 홍콩 영화들(소림오조나 보디가드 같은)에 등장하던 예쁜 배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성인이 되어 그 배우를 찾아보니 구숙정이라는 이름의 여배우였고, 지금 봐도 그 미모만큼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이름 석 자를 알고 난 후 우연히 구숙정의 영화들을 찾던 중 적나고양이라는 영화를 알게 됐고 뒤늦게 이 영화를 오늘에서야 완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가 쌈마이스러울 것이라고 미리 예상은 했지만 막상 감상하고 보니 그 이상이었다.
이 영화는 불쾌하게까지 만드는 고어 장면에 여성들 간의 동성애, 일본 야동에서나 볼 법한 외설적인 장면들, 일명 ‘오빠가 허락하는 수준’의 페미니즘까지, 온갖 싼 티가 나는 자극적인 요소들은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옛날 홍콩 영화들이 그러하듯 특유의 쌈마이스러운 분위기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했다. 물론 어설프면서도 동시에 쌈마이스러운 장면들과 연기들이 한편으로는 옛 추억을 자극하며 어느 정도 정겹기까지 했다. 적어도 일본식 쌈마이 스타일보다는 어딘가 덜 부담스러웠다.
문제는 이 영화를 양심까지 저버리며 옹호할 수 있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주인공들이 남성의 생식기를 잔인하게 공격하며 나름 페미니즘 영화임을 강조하려는 의지가 살짝 엿보였다. 거기에 킬러들의 고독함, 그리고 동성애 요소를 적절히 버무리려고 했지만 이 모든 게 쌈마이 그 자체들이었다. 아니, 쌈마이를 넘어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단 일종의 하드코어 포르노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실망스러웠고, 칭찬할 건덕지는 별로 없는 반면에 깔 만한 요소들은 너무나도 넘쳐나는 참담한 영화였다.
특히 주인공 형사가 제일 답이 없었다. 눈앞에서 남자의 생식기를 흉기로 찔러댄 악질 범죄자를 놓아주는 것도 모자라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성적 판타지를 가득 충족시키려고 만들었다 쳐도 주인공 형사의 상식을 잃어버린 언행들이 감상하는 나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자신의 개인 정보를 싹 다 바꾼 채 킬러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여주인공 키티를 보고 혼란스러워 하는 남주인공 형사의 모습은 나조차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키티를 알아보는 증인까지 돈을 주고 불렀으나 그가 모른 체하자 당황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쳐도 지가 뭐라고 멀쩡한 남성을 성불구로 만들며 살인을 저지르는 악질 범죄자에게 반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손아귀에 놀아난 그는 역대급 영화 속 무능한 형사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형제의 죽음 이후 경찰임에도 총을 잡을 수 없을뿐더러 거부 반응으로 구토 증세까지 일으킨다. 형제의 죽음 이후 발기조차 안 되었다가 키티를 만난 이후 치료가 됐다고 하는데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내 머릿속까지 새하얘지는 설정이었다.
형사 역할의 배우만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각 장면들 간의 개연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멍청하다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도 없는 지경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그래도 뭔가를 말하려는 의도는 드러나지만 그마저도 수준이 너무 저급하고 전혀 정리가 안 되는 듯했다.
성적 판타지를 추구하며 동성애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요소를 결합해서 표현하는 수준 또한 지나치게 원초적이고 저급한 수준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로 인해 총을 쥘 수 없으며 구토를 하려는 형사의 모습과 거세 불안의 공포 등은 어딘가 프로이트 이론을 떠올리도록 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신봉자가 봤다면 좋아했을 법한 요소들이 아닐까 싶다.
그뿐이 아니다. 중간 중간 되도 않는, 나름 개그 요소랍시고 집어넣은 장면들은 웃기지도 않는다. 동료 형사가 사건 장소에서 잘려나간 성기를 소시지 대신 씹어 먹고 천둥이 치는 장면은…… 더는 설명하기도 싫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공주라는 이름의 악역 킬러도 답이 없는 캐릭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베이비라는 다른 여성 킬러를 레즈 커플이자 부하처럼 데리고 다닌다. 거기에 남자들을 하인처럼 부린다. 가운데에 달린 것도 없는 자기가 남자보다 훨씬 낫다며 남주인공 형사의 거시기를 세게 쥐어대고 크기가 작다고 희롱하는 장면은 또다시 내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형사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다니. 그리고 이걸 그냥 넘어가는 주인공 형사까지. 대체 이 영화는 공권력의 개념까지 모조리 씹어 먹는 만행들을 선보였다. 마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페미니즘의 대표 캐릭터로 등장했다고 하기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공주와 베이비의 본거지로 등장하는 헬스장도 실소를 터뜨리게 했다. 빌리 헤링턴이나 반 다크홈 같은 게이 포르노 배우들을 연상케 하는 헬스장이라니. 자꾸만 디시인사이드 합필갤에서나 볼 법한 붕탁물들이 떠오르며 이 영화는 성적 판타지의 요소들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집어넣는 영화였음을 다시 한 번 인지할 수 있었다.
여자 킬러가 등장한다는 요소도 상당히 성적 판타지를 자극시키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킬러들 또한 어이가 없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설픈 킬러의 철학을 줄줄이 떠들면서 막상 저희들끼리 서로 죽일 때에는 불필요한 성적인 요소들을 연출하며 시간을 끄는 모습들을 선보인다. 이건 킬러의 주된 스토리는 액세서리일 뿐이고 그냥 야동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은 게 아닌가 싶다.
여자 킬러가 등장한다고 해서 죄다 쌈마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 ‘킬빌’처럼 냉혹한 킬러들의 세계를 쌈마이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쌈마이스럽지 않게 제대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그냥 죽도 밥도 안 되는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려는 목적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장면 하나 하나 까다가는 책 한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반 권 분량으로 지적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쓰레기 영화였다. 너무 깔 게 많아서 도저히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일일이 깔 가치도 없는 수준의 영화였다. 굳이 이 영화를 그럴 듯하게 표현하자면 ‘홍콩 쌈마이 레즈비언 포르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구숙정 배우가 왜 이딴 영화에까지 출연했는지 심히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볼 바에는 그냥 일본 야동을 보는 게 나을 듯싶다. 실제로 일본 얘기가 종종 나오는 걸로 봐선 충분히 일본 성인물에 영향을 받으며 촬영한 것 같다. 워마드 같은 커뮤니티를 즐기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처럼 남성의 성기를 절단하는 것에 흥분하는 취향이 아니고선 차라리 그냥 일본 야동을 보는 게 백 번 나을 듯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정도로 쓰레기 영화다. 깔 가치도 없는 쓰레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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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홍콩영화쪽이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쌈마이 B급 영화들의 천국인 듯합니다.
아 이거 저도 속편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목은 적나고양과 다른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알아내려면 따로 찾아봐야 할 듯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