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포스
1985년 아테네에서 출발해 로마로 가는 TWA 여객기가 아랍권 테러리스트 두명에게 납치당했습니다. 여러 나라가 얽혀서 복잡하게 물밑 협상을 벌인 결과 2주 좀 넘게 지나서 억류되었던 승객 대부분은 석방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측은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인질구출 작전을 벌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 상황에서 실제로 특수부대가 투입되었더라면...하는 가정에서 영화 [델타 포스]는 시작됩니다.
[델타 포스]는 척 노리스의 대표작이면서도 척 노리스 영화 중에서는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척 노리스 영화'라는 카테고리 보다는 70년대에 유행했던 재난 영화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70년대 재난 영화의 효시였던 항공기 재난 영화 [에어포트] 시리즈 쪽에 더 가까이 있는 영화ㅂ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재난을 맞이해서 보여주는 갖가지 모습들을 올스타 캐스트를 동원해 보여준다'는 70년대 재난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하이재킹하는 상황'은 항공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난 중의 하나죠.(그러니까 항공기 재난 영화 맞아요^^)
동원된 스타들은 마틴 발삼, 로버트 포스터, 보 스벤슨, 셸리 윈터스, 한나 쉬굴라, 로버트 본, 리 마빈 등 쟁쟁한 면면이고... (조지 케네디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에어포트] 시리즈 중의 한편이라고 살짝 우겨도 될 것같아요) 이런 사람들 틈에 척 노리스가 끼어있는 겁니다. 이질적이죠.^^;
캐논 그룹 영화 치고는 고예산인 천만달러가 투자되었다고 합니다. 헐리우드 기준으로 대작소리 들을만한 액수는 아니지만 영화는 투자비 이상으로 커보입니다. 이스라엘군이 아낌없는 협조를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캐논 그룹의 왕초들-메나헴 골란과 요람 글로버스가 유태인이기도 하고 영화가 이스라엘을 선양하고 아랍을 까는 프로파간다물이니 이스라엘에선 아낌없이 퍼줘도 아깝지 않았겠죠.
어쨌든 그래서 들인 돈에 비하면 시원시원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델타 포스]는 캐논 그룹제 영화이면서도 마치 대작처럼 보이는 거죠. 배우들도 쟁쟁하고 스케일도 커보이고...
연출은 메나헴 골란 사장님께서 직접 메가폰을 잡으셨습니다. 골란은 한때 로저 코만 밑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고 연출력은 꽤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캐논제 영화 중에선 골란 연출작이 그래도 나은 편이죠. 골란은 영화의 전반부에서 실제 사건을 꽤 성실하게 재구성했습니다.
픽션으로 재구성되긴 했지만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들은 대부분이 실제로 있었던 상황들이라고 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일계 스튜어디스도 실제 사건에서 유명했던 분입니다.
여담으로, 이 스튜어디스를 주인공으로 해서 실제 사건에 더 충실하게 그려낸 영화도 있는데 예전에 토요명화에서 하는 걸 본적이 있어요. 그 영화를 보다가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리저리 찾아보게 되었고 전 그때서야 [델타 포스]가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였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었죠.(그 영화에서는 델타 포스가 언급만 됩니다.)
유태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지만 아랍계 테러리스트를 피에 굶주린 악마로 그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임산부를 배려할 줄도 알고 어린애에게는 친절히 대하고 어느정도 원칙을 지키는 인물들로 나오죠. 좀더 깨알같이 살펴본다면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그리지는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다 비행기 안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의 일부라고 하니, 골란이 아랍인에 대한 중립적인 시각을 보여주려고 한 걸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재현에 충실했던 걸로 볼 수도 있겠어요.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즉 완전 픽션모드로 들어가면서 부터는 이 아랍인 테러리스트들은 완전히 '만화에 나오는 악당'으로 돌변합니다.
한시간 정도 비행기 안이 주무대이던 영화가 나머지 한시간은 지상으로 배경이 바뀝니다. 재난 영화가 끝나고 본격적인 액션영화로 전환되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이 영화의 구성은 앞부분 재난영화 + 뒷부분 액션영화=1+1이예요.
근데, 후반부에 펼쳐지는 델타 포스의 인질구출 작전도 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70년대에 아주 유명했던 엔테베 구출작전을 모델로 했다고 해요. 메나헴 골란이 70년대에 엔테베 작전을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었던 적이 있으니 본인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고 할 수 있겠죠.(극중에서 엔테베 작전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걸 보면 속편 취급인 것같기도 합니다.)
몰론 이 영화는 델타 포스를 주역으로 삼은 픽션이기 때문에 엔테베 작전과 똑같지는 않고, 특수부대의 능력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델타 포스가 둔 버기를 타고 이동한다거나 앞뒤로 로켓포가 장착된(그것도 무한탄창) 바이크를 타고 다닌다거나 하는 걸 보면, 이건 그냥 만화예요.(그래서 아랍인 테러리스트들이 만화악당이 되었어도 튀지가 않습니다^^)
요즘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블랙호크다운]에 나온 델타포스를 본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어디서 저런 어중이떠중이들을 델타포스라고 데려다놨나 싶겠죠^^) 80년대 사람들은 그런 거 따지지 않았죠. 델타 포스라는 존재 자체가 당시에는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존재였으니 마음 놓고 뻥을 칠 수도 있었을테고요. 델타포스라는 이름도 꼭 SF영화에나 나올거같은 어감이고요...
거기다, 지금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의 밀리터리 묘사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게 만드는 안전장치가 하나 있으니, 바로 주인공이 척 노리스라는 사실입니다. 척 노리스가 지휘하는 특수부대가 일반상식 따위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후반부에 가면 스케일 크게 많이 때려부수고는 있지만 캐논 그룹제 B 무비 테이스트만큼은 가려지질 않습니다. 거기다 각종 현대무기를 능숙히 다루던 특수부대 리더가 테러리스트 두목과의 최종면담에서 뜬금없이 각종 발차기를 시전하고 있습니다. 척 노리스 영화라는 사실도 잊지는 않고 있는 거죠.^^
'척 노리스 영화'라는 부분에 무게를 둔다면 [델타 포스]는 상영시간 좀 줄이고 액션을 좀 더 타이트하게 배치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액션 영화팬이 액션 영화를 보면서 총소리 한번 들어보기까지 한시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전반부 한시간을 차지하는 재난영화 파트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이 부분은 척 노리스 팬이 아닌 사람이라도 끌어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다만 전반부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급격히 만화가 되어버리는 후반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죠.)
뭐 취향따라 이래저래 갈릴 수 있겠지만 대체로 무난한 오락물이라고 봐요. 액션 영화로서의 논리도 제법 잘 짜여져 있고 스토리도 나름대로 힘이 있고 그리고 꽤 시원스럽게 때려부수고 있으니까요.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도 인상적이죠. 영화와 별개로 음악이 명작이라는데는 크게 이의가 없을 겁니다.
뭐... 이스라엘 만세를 외치는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사실이 지금의 이스라엘 모습과 겹쳐지면 상당히 껄끄러워지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그래도 람보가 아프가니스탄에 헌사를 바치며 끝나는 [람보3]의 찜찜함에 비하면야...)
테러리스트로 출연하신 보천도사님
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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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포스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부분은
처음 알았는데 게다가 디테일을 살리기까지 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