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손을 뻗쳐 (暗闇から手をのばせ, There is Light)
어둠에서 손을 뻗쳐 (暗闇から手をのばせ, There is Light)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2013년 제작된, 상영시간 68분의 일본 작품(실사 영화, 픽션)
우선 이 영활 촬영한 마야 고이즈미는 꽤 복받은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감정
연기가 미흡하고, 일단 나이가 어린 배운데(팔팔둥이라 한국 나이로 26세) 상대역
이라든지 시나리오 라든지, 다큐멘터리처럼 소박하고 편안한 촬영이라든지 다루고
있는 소재에 비해 소녀적인 영화의 분위기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 역시 가장 이 영화에 어울리게 연기톤을 가져가 주
었고요. 감독이 성매매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선(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소외
되어있는, 배려가 필요한)이 고스란히 마야 고이즈미에게 투영되었다는 생각입니
다. 마야 역시 그런 시선을 가진채 촬영에 임했음이 연기로 드러나주었고요.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대상 성매매 여성인 사오리(마야 고이즈
미 분)와 그녀의 매니저(성매매 업체의 대표격이죠)가 길을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꽤 한참 걷는데, 둘 사이의 특별한 대화도 없고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 다소 지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런 걷는 신은 적어도
두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그렇게 다소 오래 걸어야만 닿을 수 있
다는, 사회에서 동떨어져 살고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심적 거리를 뜻합니
다. 또 하나는 그런 심적 거리를 사람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중 하나인 ‘걷기’
를 통해 좁혀가는 시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토다 유키히로가
이 영화에서 강조한 것은 ‘장애인과 성매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
라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잊고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명제입니다. 영화는 이런
명제를 유치한 대사나 에피소드를 통해 나타내요. 근데 그런 점이 싫거나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감독과 배우들의 마음 상태가 투명해서
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한마디로 악의 없는 작품을 만들어놓은 것이란 얘기죠.
극중에서 사오리의 나이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트 모양의 흔해빠진 목걸이
를 꽤나 소중히 여기는 거나(이 목걸이를 찾으러 가는건 다소 작위적이란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작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언급해보
겠습니다) 타인의 아픈 사연을 접하고나서 보이는 감정적 반응들을 보면, 그리고
자신이 대한 환자중에 가장 꽃미남스러운 사람을 친구처럼 여기는 듯한 행동을 통해
파악해보면 아직 이십대 초반 정도인(그리고 정신연령은 그보다 더 낮은) 사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이에 대해 GV가 있으면 질문을 하려 했습니다만, 아쉽
게도 전 GV가 없는 상영분을 보았어요. (정작 GV에서는 어느 무례한 관객이 사실
상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나 해대고..) 아무튼 그렇게 어린 소녀같은 사오리
이기에 극중 대사로도 나오지만 성녀처럼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저 이런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지 성인군자같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타인의 아픈 사연
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해 솔직하게 반응하고 그런 반응이 연결된 행동을 한 것일뿐이
지요. 촬영 감독이 마치 사오리를 모나리자 같은 여성으로 바라본 듯한 장면은 있었
지만 모나리자가 성녀는 아니잖아요. 그저 평범한데 사랑스럽고 선했던 여성일뿐.
무슨 얘긴고 하니 영화 속에서 사오리가 성매매 여성이면서 장애인인 환자와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 영화가 받을 수 있는 비판중 가장 유력한 것
이 작위적인 에피소드들의 등장이란 걸텐데, 사오리가 자발적으로 꽃미남스러운 환자
의 여자친구 행세를 한다든지, (자발적이라는건 그런 후에 그 환자의 어머니가 ‘내
아들과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냐‘라고 사오리에게 물을때의 목소리 억양이나 표정의
분위기 등으로 쉽게 알 수 있지요) 나중에 그 꽃미남스러운 환자를 찾아가고 함께
바다를 보러간다든지, 그리고 바다에 빠진 꽃미남스러운 환자를 구하려 바닷물에 뛰
어들고 결국 이 철없는 꽃미남 환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놔버린다든지 하는 일련
의 에피소드들이 보는 이에 따라서는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가 있거든요.
그러나 역시 전 이 영화를 조금도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런 작위적
이라 볼 수 있을 에피소드들을 위해서도 옹호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 개연성 없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 것은 결국 이 영화가 장애인과 성매매 여성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속내 즉 영화의 중심축은 사오리라는 사람이 사회에 적응해가
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영화에서 사오리는 성매매 경력은 꽤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장애인 대상 성매매를 하는데 있어서는 신입이죠. 그녀의 대사처럼
단순히 장애인이니까 손님 대하기가 더 쉬운 그런 차원이 아니라 영화에서 장애인 대
상 성매매는 비장애인 대상 성매매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사오리로서는 사회 초년생이나 마찬가지의 심적 상태가 될 수 밖에 없게끔요. 결국
사오리가 보여주는 여러 작위적일 수 있는 행동들(에피소드들을 이루는)은 사회 초년
생이 긴장한 상태에서 저지를 수 있는 일종의 실수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실수긴 실순데 나쁜 실수는 아니죠. 물론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식의 분위기는 아니거든요) 즉 사회에서
직업인으로서 일하게 된 사람이 기계적으로 일하다가 어떻게 그동안은 모르고 있던
오리지널한 세상을, 혹은 현실을 알게 되느냐 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고, 그런 이야기
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그린게 이 영화인 것이죠.
이 영화의 결말은 열린 결말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어요. 어떤 분은 이 영화를 상
투적이다 혹은 계몽적이다 라고 보실 수도 있을텐데 다 맞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비난하고 싶지 않은건, 그런 흔한 영화의 스타일을 애써 감추질 않았기 때문이죠.
감독과 제작진은 사오리와 사오리가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세상
에 전하고 싶었던 거에요. 그러다보니 영화적으로 입체적인 구성과 기교를 발휘할
생각을 미처 못했던. 어떻게 보면 어린 학생이 만든 사회성 있는 다큐멘터리와 맥
을 같이 할수도 있겠다 싶은데, 우리가 그런 학생 다큐를 보며 뻔하다는 생각은
해도 그런 이유로 불만을 가지지는 않잖아요. (지나치게 형식적인 작품이라면 몰라도
요) 영화도 결국 이야긴데,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자기 식대로 하는 것이죠. 적어도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은 자신들이 뭘하고 있는지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
았다고요. 자신들의 작품이 서투르다거나 밋밋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만들
었을 거에요. 성매매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나 성인 화보를 찍는 배우가 주연으
로 등장하는 것도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고요. 일본이 ‘성진국’
이라서가 아니라, 아예 그런 거를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그저 영화의 대중성이랄까,
이 영화가 보다많은 관객에게 보여지려면 일단 상품으로서 마케팅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요즘 나오는 모든 영화, 아니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 문화 작
품들은 그런걸 기본적으로 고려하죠. 상업성을 기본으로 깔고, 거기다 자신의 스타일을
더하는 식. 요즘 대중 문화계의 생존 공식이랄까.)
* 이 영화 엔드 크레딧을 보니 원안 혹은 원작 역할을 한 책이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에 대해서도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GV 상영이 아니어서.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정작 GV 상영때는 엉뚱한 질문이나 해대고. 대체 영화 GV에서 질문하는데 왜 영화와
크게 관계없는 걸 물어보는거죠.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는걸까요. 딴
짓이나 딴 생각할 곳을 찾은게 영화 상영하는 극장인 걸까요. 하기사 극장들도 스크린
이나 음향 환경에 대해 크게 신경을 안쓰는걸 보면 극장이나 마트나 놀이공원이나 별
다를게 없다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숨이 확 막히는 감상기입니다.
엔터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