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김성종 [헤살꾼]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 결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황바우는 무고로 인한 살인 혐의로 억울하게 20년 형을 받고 투옥 중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황바우가 출옥하고 1년 후 당시 황바우 재판에 관계된 변호사 김중엽과 양조업자 양달수가 연이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가 없는 관계로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진다. 그 때 마침 새로 부임한 김 서장은 이 사건에 흥미를 갖고 한직에 머물러있는 오 형사에게 개인적으로 수사할 것을 넌지시 지시한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거의 반 은둔 상태에 있던 오 형사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사건의 수사를 맞게 되고 그 결과 전혀 예상치 못 한 결말과 마주치게 된다.
최후의 증인은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인 김성종의 명실상부 최고 걸작이자 동시에 한국 장르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명성을 듣던 최후의 증인을 이제야 읽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이 독서의 결과는 정말 내가 왜 이제야 이 엄청난 걸작을 읽었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진심으로 그 명성 그대로 실로 대단한 걸작이었다. 총 2권에 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읽기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의 굉장한 재미와 가독성, 한국 추리소설 역사상 최고 걸작이라는 명성에 걸 맞는 탄탄한 내용, 무엇보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동족상잔 6. 25 전쟁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받아야만 했던 그 당시 힘없는 민초들을 서글픈 사연을 따뜻하게 품에 안은 점이 정말 좋았다.
최후의 증인은 오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 그 내용이 성립되는 상당히 특수한 작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후의 증인은 좌우 극한 이념 대립으로 빚어진 동족상잔 6. 25 전쟁에서 파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최후의 증인은 작품 전체에 당시 6. 25 전쟁으로 빚어진 한 편의 부조리극을 상당히 정밀하게 포착한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하다. 때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지리산 공비유격대장인 강만호는 마을에 살던 황바우와 한동주를 짐꾼으로 부리기 위해 납치한다. 거기서 황바우는 강만호의 정신적인 지주인 손석진의 딸 손지혜를 알게 된다. 손지혜는 아버지의 이념적 순수성 때문에 억지로 산에 끌러온 여자로서 이후 아버지 손석진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을 당하자 그의 후배인 강만호의 보호 하에 있게 된다, 하지만 후배 강만호는 욕정에 눈이 멀어 정신적 지주이자 선배인 손석진의 딸 손지혜를 강강하고 급기야 임신까지 시킨다. 그리고 이를 안 순박하고 착한 황바우는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게 되고 거기에 감복한 손지혜는 황바우를 자신의 남편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상황은 악화일로가 치닫게 되고 결국 강만호는 살기 위해 양달수의 손을 빌려 자수를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과 황바우, 손지혜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은 모두 죽게 된다. 어찌됐던 그렇게 살아남은 황바우, 손지혜는 그녀의 아버지 손석진이 물려준 보석으로 행복한 삶을 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지혜의 재산과 미모를 탐낸 악랄한 양달수의 농간으로 황바우는 한동주 살인범으로 몰려 무지징역에 쳐하게 되고 손지혜는 억지로 그의 첩이 된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고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황바우는 손지혜의 아들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알려준다. 이에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진 황태영은 죽은 것으로 처리된 한동주의 농간으로 자신의 아버지 황바우를 무기징역에 쳐하게 만든 검사 김중엽과 양달수를 살해한다.
이렇게 이 작품은 황바우, 손지혜를 통해 북한식 공산주의 이념과 남한식 자본주의 이념, 양 쪽에 의해 포박당한 체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는 힘없는 가련한 민초의 억울한 상황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먼저 손지혜를 보라. 그녀는 애초에 공산주의 이념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하지만 골수 공산주의자인 아버지 손석진의 강제로 인해 얼떨결에 공비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 후배 강만호의 배신으로 처참하게 망가진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쌍하기로는 황바우도 만만치 않다. 바보같이 순하고 착한 황바우는 공비에게 납치당해 본의 아니게 그들을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천성이 착한 그는 불쌍한 손지혜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기를 꺼리 지 않았고 그 결과 손지혜의 재산과 미모를 탐낸 양달수가 친 빨갱인 살인마 덫에 걸려 무지징역으로 감옥에 투옥된다. 한마디로 이 둘은 산에 있을 때는 공산주의 이념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졌고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있을 때는 자본주의 이념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다. 결국 이 둘은 남북 양 쪽 진영 이념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의 주인공 오병호 형사가 등장한다. 그는 양 쪽 진영 이념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인간적 열정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고 20년에 걸친 복잡다단한 치정 관계로 얽혀진 사건을 기어이 밝혀낸다. 하지만 여기서 작품은 그런 오 형사를 스스로 자살하게끔 만든다. 그러면서 작품은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과연 오 형사의 행동이 옳았을까를 말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사실 오 형사의 행동은 원리원칙대로 본다면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범 형상의 전범으로 높이 치켜세워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그런 오 형사에게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국가적 비극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끝끝내 지키지 못 한 죄 때문에 그렇다. 비록 오 형사의 활약으로 사건은 해결됐지만 그 때문에 이미 삶이 한 번 망가진 황바우, 손지혜, 그리고 황태영이 모두 죽게 된다. 한마디로 오 형사는 사건 이전에 인간을 놓친 것이다. 이는 오 형사의 때늦은 후회에 의한 독백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작품은 사건 해결 이전에 피해자를 좀 더 보듬지 못 한 오 형사의 오만을 힐난하면서 동시에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어떨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안타깝게도 최근까지도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로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조리돌림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외면, 방관한 역사적 사실을 돌아볼 때 작품 속 오 형사의 부끄러움은 바로 우리들의 부끄러움이다. 그런 점에서 오 형사의 마지막 자살은 남북 양쪽 이념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이 걸작의 몇 가지 아쉬움을 적겠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의 표피 위에 역사 소설을 얹은 형태이다 보니 순수하게 추리 소설로서의 모양새가 조금 약하다. 더욱이 사건의 진상을 관련자들의 진술로 너무도 친절하게 나와서 솔직히 추리하는 맛은 아주 약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비극적 신파극으로 마무리한 점은 조금 안타깝다. 물론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다 죽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여하튼 몇몇 아쉬운 점은 있지만 감히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한국 산 사회파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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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터 꼭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