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감상 (스포)
언제나 마이클 베이는 엘리트를 자처하는 권력층에 냉소적이었다. <더 록>에서 불세출의 전쟁영웅이 반역자의 길을 택한 건, 애국선열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보상조차 하지 않는 정부의 부조리 때문이었다. <아마겟돈>에서 전인류의 운명을 구원한 영웅들은, NASA가 수년간 키워낸 우주비행사나 백악관·국방성의 관료가 아닌 그들이 불신하고 조롱하던 사고뭉치 블루칼라들이었다. <트랜스포머 4>에선 전편의 시카고 공격 이후 조성된 보수적 분위기 속에 정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비밀정보기관이,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민자 신세의 외계로봇을 사냥하고 초국적기업과 결탁해 부품을 팔아 부당이득을 취한다. 그리고 신작 <13시간>에서 정부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은 정점에 달한다.
대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13시간>은 영예로운 미국을 위한 승리의 찬가가 아니다. 영화가 다룬 실제 사건은 미국의 철저한 외교적·군사적 실패이며 난잡한 정치적 논쟁거리로 변모된 지 오래다. 상당수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며 차라리 잊고 싶어하는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인 셈이다. 물론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자기위안적 결론을 도출하지 말란 법은 없다. 치욕적인 진주만 피습 이후 두리틀 폭격대의 도쿄 공습작전을 덧붙여 역경에 맞선 희망의 이야기임을 천명했던 <진주만>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13시간>의 결말을 장식하는 이미지는 폐허가 된 리비아 영사관 풀장에 잠겨버린 성조기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그 위대하다던 미국의 무능을 생생히 환기시킨다. 작품이 제기하는 질문은 명료하다. "대체 왜 우리는 이 불가해한 난국에 뛰어들어 헤매고 피 흘려야 하는가?" 극중 배경인 리비아 벵가지는 사뭇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탱크 위에서 뛰놀고 시장에서 생필품 사고팔듯 중화기들이 버젓이 거래되며 한밤중 주변에서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터져도 태연히 축구중계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적인 평온함과 일촉즉발의 불안감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공존한다. 그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방인인 주인공들은, 시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그들의 무표정 너머 심중을 꿰뚫어보지 못하며 가벼운 소음과 인기척에도 사색이 된 채 돌아봐야 한다. 영화의 주된 서스펜스는 오리무중의 혼돈에 기인한다. 왜 리비아인들이 우릴 공격하는지, 저 수많은 이들 중 누가 아군이고 적군이며 민간인인지, 아군이 오고 있긴 한 건지, 아군이라고 다가오는 저 사람은 정말 아군 맞는지, 설령 아군이라 할지라도 신뢰할 수 있는지 등등. 확실한 것이라곤 그들이 위험에 처했단 점 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런 곳에 그들이 원하는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국의 원대한 계획이야말로 순진무구한 이상이며 통제불능의 혼란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못박는다. 전투가 끝난 후 즐비한 사체들을 향해 오열하는 리비아 유족들을 비추며 야심찬 중동 개입이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빚어냈음을 명시한다. 국가의 무모한 대외정책과 더불어 무책임한 위기대응도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다. 테러 징후를 포착했음에도 어떠한 대비태세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지난한 전투 막바지에 고립된 주인공들을 구하러 온 이들은 리비아군이었다.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정부 차원의 도움은 전혀 오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그토록 기대하던, 미국의 위용을 과시할만한 최첨단의 건십도 F16도 볼 수 없었다. 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정작 자국민의 안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오만하고 무력한 국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시종일관 책임의 무게감을 역설한다. 미지의 타국에 주제넘게 개입해 뼈아픈 희생을 치르는 국가. 대사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해 밤새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호요원들. 머나먼 고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온 것을 후회하는 주인공들. 각자 자신만의 환상에 빠져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지른 셈이다. 누구도 그곳에 갈 필요 없었으며 희생당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는 회한이 곳곳에 배어있다.
영화는 철저히 전장을 누빈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극중 인물들이 지닐법한 정보량 너머 사태의 지정학적 전후맥락에 대해선 과도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시 실황에 초점을 맞추고 사력을 다한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려한다. 이러한 집중과 선택의 전략을 토대로 박진감을 창출하며 조율하는 솜씨는 가히 탁월하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와 치솟는 화염으로 폐소공포적 불안을 조성하는 영사관 습격 및 구조작전, 총알과 화염병과 RPG 공세를 버텨내며 전력질주하는 차량 추격전, <분노의 13번가>처럼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들에 맞선 일당백의 요새방어전 등 주요 액션시퀀스들에 각각의 스타일과 리듬을 부여한다. 주인공들은 용감하고 유능하지만 결코 람보가 아니다. 피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며 뼈가 드러나는 고통의 흔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그저 쾌감 어린 학살극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시청각적으로 강렬한 묘사들이 서늘한 현장감을 유발하면서도 소소한 유머와 드라마가 적절히 배치돼 긴장의 완급을 조절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와 닿는 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요즘 상업영화들로부터 감지하는 인상은, 젊은 관객들에게 촌스럽고 나이브하게 비치길 두려워하는 태도다. 낯간지럽고 진부한 관습들을 경계하는 것도 모자라 최대한 냉소적으로 경멸한다. 아마 그들의 주요 풍자대상은 마이클 베이가 대표하는 어떤 전형일 것이다. <13시간>도 감독의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들은 엘리트 정부요원이 아닌 CIA에 고용된 용병이다. 근육질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니고 단순무식한 마초라고 천대받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위험이 닥쳐도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주저 없이 뛰어들며 전우 곁을 굳건히 지키고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마초, 희생정신, 전우애, 가족애 등 요즘 영화들이 시니컬하게 패러디할 법한 스테레오타입 천지다. 하지만 마이클 베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낡았다 여겨지는 가치들을 우직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냉소를 거둔 그의 방법론은 어떻게든 감성적 공명을 일으킨다. 전투가 재개되기 직전 주인공이 서둘러 방으로 뛰어와 가족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녹화 메시지를 발송하거나 사태가 끝난 후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흐느끼는 장면 등은, 누군가에겐 고리타분할지 몰라도 내겐 꽤나 뭉클하게 다가왔다. 슈퍼히어로로 가득한 영화계에서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는 그 이야기에 진심어린 예우를 갖췄다. 여기 영웅들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을 지켜주기는커녕 무책임하게 방관했다. <13시간>은 위대한 줄 알았던 국가의 처연한 실패담이자 가련한 영웅들을 위한 극진한 헌사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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