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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영화동호회의 추억

고양이맨
7908 0 15
난 전공을 잘못 택했다. 방송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공무원이 되라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전혀 관심없는 행정학과로 갔다. 
당연히 수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결국 내가 죽치게 된 곳은 학교 전산실이었다. 

당시 전산실에서는 PC통신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시간 무지 걸리던 시절..  
PC통신은 크게 네 회사.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그리고 후발주자 넷츠고 채널아이) 
난 왜 그랬는지 천리안이 끌렸다. 토론방과 유머방에서 주로 활동하다
영화동호회에 가입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천리안 영화동호회(go screen). 
내 인생에서 이곳을 들어내면 완전 다른 삶이 될것도 같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옛 추억일수도 있지만
내게는 잊지 못할 곳이랄까. 여기 활동 때문에 학교도 제적당하고 
첫사랑도 여기서 만났으니. (헤어졌고^^) 

교양있고 사람좋은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당시 스무살 어렸던 나는 그곳 분들의 영화에 대한 그리고 뒷풀이에 대한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었다. 

월영(월요일에 영화보기) 숨걸모(목요일마다 숨은 걸작 영화 보기 모임) 
일조영(일요일에 조조 영화 보기) 등.. 자주 열리는 정기적 모임만 일주일에 세 번..
게다가 수시로 영화 번개가 내려졌다. 시사회도 물론 있었고.. 당시 신사역 근처에 있었던 
시네마천국에서 수많은 이들과 함께 시사회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정작 무슨 영활 
봤었는지는 기억이 잘..-_-;;;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참 쿨하고 잘 놀았다. 만나서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노래방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밤새도록 젊음을 만끽했다 
당시 내 별명은 '핏덩이'였다. 어린 신입이라고.. 

이곳에서 활동하셨던 분들 중에 최근까지 영화쪽 일을 하시는 분들도 꽤 계시다. 
이동진 평론가가 12월이라는 뜻의 아이디로 글을 올렸었고.. 익무 관계자셨던 故 류상욱 님도
bazin87 이라는 아이디로 영화글을 올리시곤 했다. 
그 외에도 반창꼬 애자의 정기훈 감독과 필름2.0 기자 하시다가 요근래 말하는 건축가 PD 하신
한선희 님, 강원도의 힘에 출연했던 임선영 님,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고 있다) <종로의 기적>
감독이신 이혁상님, 한효주 주연의 <달려라 자전거> 연출하신 임성운 님 
그 외에 현재 맥스무비 팀장인 김형호님과 기자인 김규한님까지.. 

회원중에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고.. 이렇게 영화일을 하는 분들이 계시게 된걸 보면
전문적인 동호회 였던 것 같다.. 빽스테이지3이라는 영화까페에서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영활 보
았고.. 또 천리안 본사의 동호회실도 빌려서 같이 영화보고 얘기도 하고.. (당시에는 예약하면 영활 
볼수 있는 까페가 있었다. 음료수 제공해주는. 스크린에 프로젝터로 보게 되어 있는 곳. 지금도 있
을까?)

부산에 사는 회원들도 있어서 부산 영화제 때 좋은 여행 코스를 소개받기도 하고.. 전주에 사는 회원 
덕분에 그 유명하다는 전주 콩나물 해장국과 육회 비빔밥을 제대로 하는 집에서 먹어보는 행운도 
누렸었다. (콩나물 해장국은 기대보다는 별게 없었지만, 육회 비빔밥은 정말 맛있어서 게눈 감추듯 
해치워 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엠티도 가고 송년회도 하고 영화제도 열었었다.  
영화제에는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뭐 거창한건 아니고 
지금도 남산 쪽에 있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를 대관해서
퍼펙트 블루 으랏차차 스모부 같은 당시 극장에서 볼 수 없는 명작들을 
무료로 보실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상영회였다. 회원 비회원 모두 볼 수 있었고..
관객들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또 기억나는게 어떤 영화를 두고 게시판에서 논쟁을 벌였던 것..
쉬리 개봉 당시에 찬반 논란이라든가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보고나서 감독과 PD를 앞에 두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던 생각이 난다. 얼어버린 제작진들의 슬픈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나고보니 그때 좀 죄송했어요 그래도 나름 고생하셨을텐데 해외 로케도 하고 
씨네플러스에서 했던 시사회에서 본 것이었는데 
열심히 혹평하고나서 나중에 그래도 영화 흥행은 잘될거예요 라고 격려해드리자 
그제야 밝게 웃으셨던 PD분이 생각나고 ^^

영화를 하거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열려있고 착하다..
다만 돈이 결부되면서 요즘엔 전과 달라졌지만 뭐 요즘 영화계도 좋다 약간 살벌해진것 같긴 하지만 

영화동호회가 좋은건 세상이 삭막해진다 해도 삭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천리안 영화동호회 분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겠고 
그당시 기억들도 많이들 잊으셨겠지만 (PC통신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래도 그런 모임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던 건 좋은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익무도 좋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못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의 지금 이 시간도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까요..:)  

첫사랑 그녀는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날 잊었겠지? 흑흑  
요즘 아무리 예쁜 여자들이 많다해도 
첫사랑 그녀보다 예쁜 여자는 별로 없는듯 그래서 남자들이 첫사랑 영화에 환장하는 것 같지만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다신 첫사랑 소재의 영화 안 본다 -_-;; 첫사랑 팔이에 현혹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서칭포슈가맨 같은 영화가 요즘엔 좋다.. 
(어째 얘기가 삼천포로 마무리 되네요 말은 이렇게 해도 첫사랑 영화 잘 나온거 있으면 또 볼겁니다 ㅎㅎ)

어느새 또 불금입니다 
익무님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고양이맨
28 Lv. 84397/100000P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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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저도 참 그 시절에 재밌는 추억들 많았네요..
영화 모임에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영화들
자막도 없는 걸 모여서 보고..^^

영화 수다란으로 글 옮길게요.
12:55
13.04.26.
golgo

예..그때가 그립습니다^^

영화수다에 올릴까 하다 여기 올렸는데..ㅎㅎ 감사합니다.    

13:02
13.04.26.
profile image
golgo

영화 관련 이야기는 무조건 영화 수다로 올려주셔야해요..^^

13:03
13.04.26.
2등

저는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할때 인터넷을 시작해서 저런 추억이 없어요.^^ 원래부터 혼자 보러 다녔음.

그땐 야후가 최강자였는데 지금은 철수했고, 멀티플렉스가 갓 생길때여서 단관극장의 추억은 많네요.

일명 코아 아트홀 세대.

13:35
13.04.26.
해피독

CGV강변이 처음 생겼을때 생각이 나네요. 단관극장의 추억 궁금해요 ㅎㅎ 대한극장이 지금처럼 복합상영관이 아니던

시절 엄청나게 큰 스크린 어렴풋이 기억나고요. 코아아트홀 극장으로 올라가던 그 계단을 잊을수가 없어요. 

레드카펫이 깔려있던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그 건물 1층에는 파스타집이 있었던^^ 

14:02
13.04.26.
profile image 3등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영화동호회의 추억은 없고.. 한때 삼청동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에 영화보러 다녔던 생각이 나네요. 작은 화면에 프랑스 영화만 틀어줬지만 거의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 그때 영화평론가 유지나씨가 영화 시작전 가이드를 잠깐씩 해주기도 했죠... 아득한 추억이고 기억도 잘 안나지만...참 열심히 영화를 봤던 거 같아요. .

14:28
13.04.26.
profile image

영화쪽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ㅎㅎ


메탈플러스3! 추억의 공간입니다

그때 운영하던 호러 사이트에서도 거기서 야간 밤샘 상영회 매달 했었습니다.. ㅎㅎ


14:36
13.04.26.
profile image

전 나우누리를 했었는데,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입했던 넷 동호회가 공포영화 동호회였어요.

이름이 가물가물한데...배드블러드?? 아마 그랬을 거에요.

어리지만 회원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던거 같은데...지금은 기억이 영....나지를 않네요...

14:52
13.04.26.
profile image

그쵸..그때가 참 좋았드랬어요.

저는 유니텔 영화동아리 '씨네시타'로 시작했는데 

비주류영화소모임 '배드테이스트'에서 활동했드랬죠.

후에 채널아이에 '씨네아이'란 모임도 있었구요.

누가 뭐래도 그 시절 영화동아리의 묘미는 밤샘영화제!!!

11시에 퇴근해서 12시부터 영화보고 첫차타고 집에가서 또 회사 출근했던!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일인것도 같아요.

가끔 '호러존' 상영회에 놀러가기도 했었는데ㅋ

그때 '배드테이스트' 회원분들 중에 지금은 평론가가 되신 분들도 계시고

영화제작자 분이 계셨어서 호러영화 시체엑스트라하러 가기도 하고

촬영장 구경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ㅎㅎ

무엇보다 구하기 힘든 영화들 함께 모여서 보던 그 재미가 없어진 것이

요즘 가장 아쉬운 점인 것 같아요. 아아..추억돋네요 -_-*

18:48
13.04.26.
profile image

새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저 역시 천리안의 다른 동호회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우리 영화 사랑'의 줄임말인 '우영사'에서 주로 활동을 했죠..

매일 밤마다 영퀴방을 만들고 영화 얘기와 퀴즈로 날밤을 까댔던 즐거운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땐 PC통신을 통한 시사회 모집이 활성화될 때라 원없이 시사회를 다니기도 했고..

시사회 다니는 재미에 홀딱 미쳐서 일년에 시사회로만 5,60편을 보곤 했네요.. 심지어 하루에 세탕도 뛰었는데 말이죠.. 


제가 소속된 까페에는 천리안 본사에 근무하던 녀석이 있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가끔 본사 회의실을 빌려서 상영회를 열곤 했습니다.. 

장미희 씨를 초청해서 '겨울여자', '느미' 상영회를 열고 함께 간담회를 열기도 하고..

'아이즈 와이드 셧' 개봉한 이후엔 노컷판 상영회를 열기도 했죠..

어쩌면 고양이맨님도 함께 영화를 본 적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ㅎㅎ


인터넷 기반의 현재보다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그 시절이 더 재미 있었는데 그립네요.. 

19:32
13.04.26.
profile image

음,,영화 좋아하는사람치고 나쁜사람없다는말 웬지 공감되요,,,영화관에서는 무매너인사람은 정말 영화도 그냥 대충 보는것같기도 하고,,,딴짓하기도 하고,,,,,,,근데 어쩌다가 이좋은 동호회가 사라졌을까요?ㅠ안타값네요,,,

16:58
13.04.27.
profile image

요즘 고양이맨님 글을 읽다보면 동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저도 자꾸 옛생각이 나네요 ㅠㅠ

본문에 저도 아는분 몇몇분이 보이시구요..

 

전  TTL 사이트 안에 있는 영화 시사회 클럽을 운영했었어요.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과 추억들을 만들었거든요.

벌써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좋은기억으로 남아있네요 :)

21:49
13.04.27.

저도 pc통신 시절을 경험했던 한명으로서 추억이 새록새록 돋네요.

밤샘 상영회나 시사회, 번개 등은 물론이고 소모임에서 단체로 콘도 잡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몇일 동안 즐겼던 기억도 나구요.

그래도 머니머니해도 그시절 빅 재미 중의 하나는 영퀴였죠.

유니텔을 주무대로 천리안, 나우누리 등도 자주 원정을 갔었고..

천리안에서 몇번 듀나님 등과 영퀴를 했던 기억도 나고..

예전에 익무에도 칼럼을 썼던 김정대군은 요즘 머하나..

참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죠. ^^;;

(사다코언니 님은 어쩜 제가 아는 분일지도.. 저도 베테 원년 멤버인지라..ㅎㅎ)

12:15
1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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