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1세 ‘에르푸르트 변소 참사’

1184년에 튀링겐의 백작 루드비히 3세와 마인츠의 대주교 콘라트는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에 폴란드 침공을 위해 튀링겐 지역을 지나가던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둘간의 화해를 주선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는 두 사람(루드비히 3세와 마인츠 대주교)과 수많은 귀족들을 에르푸르트(현 에어푸르트)로 불러서 이른바 '독일 제국의회' 를 진행하려 했다.
아래는 프리드리히 1세 초상
그해 7월 25일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에르푸르트 성에 모인다.
아래는 신성로마제국 제국회의
그들은 2층의 방에 올라가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회담을 시작하려 했는데, 2층의 나무바닥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지나친 하중을 결국 견디지 못했다.
아래는 당시 회의장이었던 에르푸르트 성 성베드로교회
그렇게 나무 바닥은 주저 앉고 말았는데, 그래서 모임에 참여한 영주들 대부분이 1층에 수직 낙하하고 만다.
그래도 1층 역시 바닥이 나무 인지라 죽지는 않고 다치기만 했다. 하지만 진정한 지옥이 곧 펼쳐진다.
1층 역시 나무 바닥이 너무 오래되어 썩었기에 1층 바닥도 붕괴되었고, 그들은 다시 지하에 설치된 변소 오물통으로 떨어지게 된다.
차라리 오물통에 떨어지지 않고 즉사한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오물통에 떨어진 대략 50~60명 가량의 영주들과 기사들은, 익사 혹은 질식사 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래는 당시 성 안 변소
당시 그 오물통은 100년 이상 청소를 하지 않아서 심각하게 황화수소 등 유독물질을 내 뿜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소집된 제국의회는 곧바로 폐회 되었고, 이 사건은 ‘에르푸르트 변소 참사’ 라 불리우고 있다.
출처) '히스토리의 역사산책'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