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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네 [오아시스] 실격당한 자들에게도 오아시스는 존재하는 가

글쓰기 모임에서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나서

관련 글쓰기로 오아시스에 대한 걸 썼는 데,

힘들게 쓴 게 아까워서 익무에도 올려봅니다 :)

_

 

 

 

 

 멜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사랑을 시련에 빠뜨릴 여러 장치들을 설정한다. 그중에는 주인공이 장애인인 경우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사랑에 대한 모든 것'처럼 "장애"는 서사를 훨씬 더 극적으로 만들고, 개개인의 사랑을 넘어서 사회적 영역의 함의까지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감독에게 장애는 매력적인 소재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장애를 도구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창작에 앞서 생각해야 할 윤리적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장애인을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어떻게 그릴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장애인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들의 실존, 사랑과 욕망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그려낼 것인지.

 

 이창동의 '오아시스'는 그 모든 기준에서 현격히 탈락한 작품이다. 단순히 논란이 된 설정 - 지체 장애인인 한공주가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던 전과자 홍종두를 사랑하게 되는 -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 장애인이 강간당하는 사건은 실제로도 벌어지고 있고, 정신이 미숙한 장애인이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있을 법하다. 문제는 이 설정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이다. 이 영화는 이것을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해서는 안 됐다. 차라리 이 사랑이 얼마나 기괴하고 이상한지 그렸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더라면 장애인의 욕망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홍종두를 순정으로 이른 바 '실드 치기' 위해 윤리적인 선을 넘는다. 나는 이 점이 너무 불쾌해서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었다.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이 영화는 한공주가 홍종두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끔 그녀를 고립시켜 놓는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여성 장애인이 치안이 좋지 않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무방비하게 살고 있고 그녀의 유일한 가족은 가끔씩 찾아와서 형식적인 보살핌만 제공한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고 그녀는 극도로 외롭다. 오직 홍종두만이 그녀의 육체에 관심이 있다. 강간 미수의 전적이 있는 홍종두는 꽃을 들고 찾아와서는 멜로드라마 남자 주인공처럼 고백하는 대신에 그녀를 강간하려 든다. 제대로 저항도 못하는 그녀는 놀라 기절하고 홍종두는 그런 그녀를 내버려두고 도망가 버린다. 그 사고가 있은 후에 한공주가  옆집 부부의 섹스를 목격하는 장면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공주가 그에게 강간당할 뻔한 일보다 그가 그녀를 육체적으로 원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결국 한공주는 그날 밤에 먼저 홍종두에게 전화를 걸고 그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이 영화가 리얼리즘을 표방한다는 것은 코미디다. 전과 3범인 홍종두는 출소 후에도 철없이 사고나 치고 다니고 장애인을 강간하고도 남을 인간이지만 알고 보면 형을 대신해서 감옥에 간 것이었고 한공주에게 헌신하는 순정남이란다. 도저히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캐릭터에게 반전을 주려고 플롯은 주말 드라마 같은 뻔한 설정을 불사하고 다른 인물들은 그의 순수함을 돋보이기 위해 평면적인 속물로 만들어 놓았다. 주변에서 한결같이 한공주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이용하는 것도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계산되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하니까. 영화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의 비정함을  성토하지만, 사랑과 헌신은 자기 둘만 하고 세상에는 누가 봐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만 보여주면서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한공주와 홍종두가 하는 섹스는 누가 봐도 야심한 밤에 혼자 사는 장애인 집에 낯선 남자가 침입해서 강간하는 걸로 보이게 연출되어 있다. 거기다 말주변이 부족한 홍종두는 캐릭터 설정에 맞게 변명도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한공주는 사랑이라고 주장하지도 못한다. 경찰에 끌려가는 홍종두를 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발작뿐이다. 신파도 이런 신파가 따로 없다.     

 

 오아시스에서 리얼리즘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은 문소리 배우의 뇌성마비 연기이다. 그녀는 실제 장애인으로 착각할 만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신체를 비틀며 열연을 펼친다. 그러나 그 연기가 리얼할수록 나는 더더욱 불편했다. 무력한 뇌성마비 장애인을 강간하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영화 속 설정들이 그녀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몰고 가는 걸 꼼짝없이 지켜봐야 했다. 그의 지극한 헌신을 받는 한공주는 이름 그대로 "공주"같은 캐릭터가 되어야만 했다. 성에 갇힌 공주처럼 자신을 구하러 오는 "장군" 홍종두만을 기다린다. 그녀의 욕망을 일깨우는 것도 그이고 그녀의 순수한 매력을 알아봐 주는 것도 그이고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도 그다. 한공주는 홍종두가 순정을 바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거울에 반사된 빛을 보며 비둘기나 나비 따위나 상상하는 아이에 불과했다. 홍종두를 만나고 나서야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평범한 연애를 하는 자신을 상상하고 욕망한다. 홍종두가 없이는 그녀 스스로는 아무것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주체성이 희생당한 캐릭터가 가장 리얼리즘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개봉 당시에 오아시스는 이런 이유들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에게 크게 호평받고 해외 영화제들에서 상을 받아왔다.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든 작품이다. 이창동 특유의 문학성이 묻어나는 스토리와 생생한 캐릭터 묘사, 배우들이 열연, 날 것의 연출이 어우러져서 거장의 품격을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격당한' 자들에게 또 다른 절망을 안긴다. 현실의 한공주들이 장애를 가지고도 어떻게 삶을 만들어 가며 정체성을 형성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 장애마저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한공주는 강간당할 뻔하고도 자신을 육체적으로 욕망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용서해야 하고, 홍종두는 그녀의 존엄을 무시한 채 큰 상처를 주었음에도 순정과 헌신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시스트로 미화된다. 아무리 잘 만들었더라도 정치적인 올바름의 경계선을 넘는다면 영화를 온전히 영화로만 보기 힘들다. 나는 처음으로 영화에 별점을 매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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