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83] 좀비 영화에서 감동이라니 - 카고

카고 – Cargo (2017)
좀비 영화에서 감동이라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카고>는 좀비 장르에서 기대하는 피범벅 아가리 액션의 쾌감이 아닌 완전히 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 작품입니다. 벤 하울링과 욜란다 람케 감독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좀비라는 소재를 빌려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진솔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48시간 후 좀비가 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앤디는 아내 케이와 아기 로지와 함께 강을 따라 보트로 이동하며 안전한 곳을 찾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졌을 때 발견한 사고 난 배에서 케이가 좀비에게 물리고, 얼마 후 좀비가 된 케이에게 앤디마저 감염됩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48시간. 딸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찾아 정처 없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2013년 7분짜리 단편으로 시작됐습니다. 단편 영화제와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는데, 처음 이 단편을 봤을 때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상에! 좀비 영화에서 이런 애틋한 여운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아이디어 하나가 이렇게 강력할 수 있구나 싶었죠. 많은 호러 팬들이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결국 장편으로 확장되면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카고>의 가장 큰 매력은 좀비를 무서운 존재가 아닌 감정의 촉매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섬뜩한 좀비들을 상대로 한 피 튀기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보다는 한 아버지가 딸을 구하려 하는 절실함이 훨씬 강하게 다가옵니다. 좀비가 주인공이 아니라 부성애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할까요.
48시간이라는 시한부 설정과 최소한의 등장인물들 속에서 앤디 역의 마틴 프리먼이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슬픔과 절망, 생존 본능과 내적 갈등, 희생과 구원에 이르는 복잡한 감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중반 이후 스토리가 조금 늘어질 때도 그의 연기만으로 계속 몰입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알던 <셜록> 시리즈의 왓슨 박사나 <호빗>의 빌보 배긴스와는 완전히 다른,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만으로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마틴 프리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호주의 광활한 자연도 이 영화만의 특별함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존 게임에 집중하는 반면, <카고>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대지를 배경으로 선택합니다. 이 드넓은 공간이 오히려 더 큰 고립감과 절망감을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광활함이 주는 막막함이 영화 전체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혹독하고 무자비한 자연은 생존자들에게 수많은 장애물을 던지지만 동시에 보호와 생존 수단이 되고 있죠.
결국 <카고>는 좀비 영화의 탈을 쓴 가족 드라마입니다. 피와 폭력으로 자극하는 대신 감정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이죠. 호러 장르 팬으로서 이런 작품을 만날 때의 기쁨이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좀비 영화에서 이렇게 울컥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덧붙임...
1. <카고>는 호주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장편영화입니다. 최초 공개는 애들레이드 영화제였고,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죠. <카고>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호주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를 받더군요.
2. 원작 단편영화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앤디 로도레다가 카메오를 출연합니다. 그는 강변에서 만나는 가족의 아버지 역으로 잠깐 등장합니다. 원작에서 아버지라고 불렸던 캐릭터가 장편에서는 앤디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원작 배우에 대한 예우인 것 같습니다.
3. 호주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상(AACTA) 어워드에서 작품, 각색, 음향, 미술, 분장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또한, AWGIE 어워드에서 장편 각색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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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단편만 보고 이 장편 리메이크는 안 봤는데..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