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몽' 의 추억

금요일밤 잠안와서 써보는 '천사몽' 소품, 세트 관련 썰.
때는 20여년 전... 모형점 죽돌이 시절 알게된 형이 당시 대박난 영화 '은행나무침대' 소품 만들었다는 회사에 입사.
무려 당시 4대 천황중 한명이었던 여명이 나오는 SF영화 소품 만드는데, 알바 하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수락.
직접 가본 그 회사 작업장은 무려 보온재 덮어놓은 비닐하우스;;
그래도 은행나무 침대에 나온 그 은행나무 모형 실물을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노란은행잎 같던건 대패질할때 나오는 톱밥에 노란색칠 한거였습니다.ㅎㅎ
암튼, 비싼 프로젝트인데 당연히 디자이너들도 있었고, 디자인도 다 잘 나와 있었습니다.
단, 그렇게 만들기 너무 힘드니 만들기 쉬운 디자인으로 해달라. 였습니다. 몇십만원 알바비 받고 졸지에 블록버스터 메인 디자이너가 되는 순간~!
대본을 받아서 읽어봤습니다.
재밌습니다!
나중에 영화를 보니 원래 대본이랑 아예 다르게 만들어 버린 영화더군요.;
원래 말타고 막대기로 공치는 격구 비슷한 중요한 스포츠 대결 씬도 있었으나, 그역시 찍기 어렵다해서 사라졌더군요.
본래 설정상, 에일리언 소굴 같은 느낌의 그로테스크한 동굴 같다는 설정의 빌런 본부도, 위 사진속에 나온것 같이, 그냥 나무벽 세우고, 당시 나이트클럽 인테리어 용으로 팔던 시판 장식들 몇개 사다 붙이고 끝냈습니다. ㅎㄷㄷ
영화상 제일 중요한 시공간 이동장치도, 본래 있던 디자인이 굉장히 멋있었는데. 제가 만들기 쉽게 대충 이발소 의자 같이 디자인 한게 영화에 나온거.;;;
그나마 그건 제가 그려준거랑 조금 비슷하게나마 만들었으나...
술집의자 6각형인데 그것도 어려웠는데 걍 사각형 상자....
환타지 세상이니 좀 색다른 술집 느낌 돈안들이고 내라고 천정에서 술나오는 호스 같은 장치 디자인 해줬더니,
영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냥 가스호스랑 벨브 한개 매달아 뒀;;;;
이나영 배우님의 영화 데뷰작이지만, 이후 어디에서도 데뷰작 물어보면 다른영화 말씀하시던.^^
사진에 보이다시피 날이 4개 붙은 간지나는 무기를 쓰는걸로 나오는데, 날이 MDF였습니다. 즉 저무기 모형인데도 5키로가 넘었어요.
가느다란 이나영 배우님이 들고 액션 하기에는 정말...=_=; 영화 보면 앞에서 포즈 각잡을때 빼고 뒤에 서있거나 할때는 무거워서 축늘어진 모습이 보입니다. ㅎㅎ
이 영화가 본래 제가 읽어본 대본대로 잘 만들어져서 대박이 났었으면,
제 인생도 지금이랑은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죠? ^^;
p.s - 그 형이 이왕 알바 하는김에 다른영화도 하나 시작하는데, 설정 그림 한장만 덤으로 그려달랍니다.
뭐 그림 한장 정도야... 하고 대본은 받아 읽어보니 엄청 재밌습니다. 초대작 환타지! 이런걸 한국에서 만들다니. 대박이네... 하고
스토리상 매우매우 중요한 동굴벽화를 스케치북에 하나 그려줬습니다.
그런데 이영화도 개봉해서 보니 제가 읽어본 대본이랑은 아예 다른 영화가 되있더군요. 벽화 중요도도 팍 떨어져 버렸고.
제목은 '단적비연수'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왜 희준 감독형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