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를 보고 (스포O)
20년 넘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걸 넘어 세계 흥행 2위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위키드’를 존추 감독이 영화화한 <위키드>를 보고 왔습니다. 저는 더빙판을 먼저 보고 원어를 봤습니다.
<위키드>의 탄생 배경을 먼저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악 구분이 이분법적이고 단순했던,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쓴 ‘오즈의 마법사’를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비틀어 다시 쓴 2차 창작물인 소설 ‘위키드’를 뮤지컬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이름도 없이 ‘사악한 서쪽마녀’로 불린 인물을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첫글자씩 따서 ‘엘파바’로 짓게 됐다고 하더군요.
극 중 엘파바의 피부색 상징하는 소수자와 인종 차별 문제 등 차별에 대한 비판의식이 뚜렷하고 직접적닌 작품입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성소수자나 장애인 캐릭터까지 의도적으로 출연합니다. 금발 백인이 생각을 하는게 이상하다며 서구사회를 재치있게 비꼬기도 하죠. 이분법적인 선악 구분에서도 벗어난 첫 넘버 ‘No one mourns the wicked’에서 바로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방향성이 공표되다시피합니다. 사악함은 타고난 것인지 사회가 부여한 것인지를요. 원작이나 후에 개봉할 파트2까지 보고 다시 오프닝을 보시면 글린다만이 남 몰래 슬픈 표정을 하는 게 보여서 캐릭터를 더욱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1막과 2막으로 구성된 뮤지컬이 인터미션 포함해 러닝타임이 170분이었는데 1막만 영화화한 영화 <위키드> 파트1의 분량만 160분입니다. 160분의 2/3를 쉬즈대학교에 할애하고, 1/3은 에메랄드시티에 썼더군요. 그건 원작 뮤지컬의 넘버를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오롯이 가져오는 동시에 영화의 특성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뮤지컬에서는 아무래도 무대극 특성상 장면간 틈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영화로 가져오면서 스토리텔링에 집중해 간극을 부가설명으로 채워 개연성과 설득력에 신경을 쓴 겁니다. 또 그래야 감정선이 충분히 빌드업되어 이 영화의 외적/내적 클라이맥스의 지점에서 확실히 폭발할 수 있으니까요.
넘버 연출을 보면 대체로 샷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면서 배우들의 동선을 담고 있습니다. ‘Dancing through life’같이 경쾌한 넘버에서는 멜로디의 포인트에 맞춰 발 등 특정 신체부위를 클로즈업해 화면을 튀게 해서 리듬감을 살리기도 하고요. ‘What is this feeling?’이나 ‘Popular’는 경쾌함과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렸지만 분활화면이나 점프컷 같은 단순한 편집스타일이 MTV스타일같아 그 매력을 더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긴 했습니다.
‘The wizard and I’에서 신시아 에리보의 뮤지컬 연기가 안정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Dancing throuth life’의 후반에서 그녀가 눈으로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정극 연기 또한 얼마나 뛰어나게 하는 배우인지 증명하더군요. 칙릿 장르에서 파티에 시스루 의상을 빌려줘 주인공이 망신을 당하게 하는 등 클리셰적인 장면인데도 그런 게 무색하게 감정이 장면을 지배합니다. 외톨이 취급받고 자신이 세상과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이 영화의 텍스트를 대변하는데 감정적인 설득력이 실로 엄청납니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사실 워낙 노래를 잘하는 가수지만 ‘글린다’라는 캐릭터 자체가 소프라노 음역대를 요구해서 우려가 컸는데 첫넘버인 ‘No one mourns the wicked’에서 그 우려를 불식시켜주더군요. 원작에서 푼수 캐릭터였던 글린다를 아리아나 그란데가 조금은 희석해서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인물로 잘 그려냈습니다.
뮤지컬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무대극의 제한을 벗어나 영화에서 표현의 자유를 얻어 확실히 비주얼적으로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졌습니다. 판타지의 작은 요소들도 놓치지 않고 그리고 있고요. 원작과 의상이 다른 부분도 있고 무대 배경이 아예 다른 곳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Dancing throuth life’는 뮤지컬 원작에서는 분수대를 배경으로 했는데 영화에서는 도서관에서 해서 시각적 묘사의 확장성을 얻었습니다. 중간중간 ‘For good’등 넘버를 군데군데 배치해 뮤지컬 원작팬들을 환호케하기도 하고여. 이렇듯 창작자가 뮤지컬 원작을 얼마나 애정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One short day’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초연의 주역인 이디나 멘젤과 크리스틴 체노웨스를 카메오로 출연시켜 예우를 다하기도 하죠.
뮤지컬에서는 흔히 1막을 마무리하면서 인터미션 동안 2막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화려한 넘버로 장식하는 클리셰가 있습니다. <위키드>에서는 ‘Defying gravity’가 그 역할인데 이 넘버에 7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할 뿐만 아니나 슬로우모션을 거는 등 확실하게 강조해서 마무리를 장식합니다. 사실상 이 장면을 위해서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졌다고 봐도 무방하죠. 이야기의 템포는 조금 느리다고 생각되지만 캐릭터 확립이나 캐릭터와 메시지의 일치에 성공해서 클라이맥스에서 강한 감정적인 울림을 주는데 성공합니다.
뮤지컬 원작을 스크린에 맞게 공들여 옮겨왔지만 몇몇 아쉬운 점이 남긴 합니다. 원작 소설 자체부터가 독자가 ‘오즈의 마법가’를 아는 걸 전제로해서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데 영화 <위키드> 역시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를 모른다면 오롯이 비틀기를 즐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차 창작물 특성상 그렇기도 하고요.
영화 <위키드>는 더구나 뮤지컬 원작을 고스란히 옮겨오는데 너무 충실하다 못해 이야기의 사족이 많이 붙어써 팬들에게는 친화적이고 팬서비스로 다가가는 화법일 수 있지만 그 외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느낄 여지가 다분합니다. 아울러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확실하지만 직접적이고 반복적인 화법을 지녀서 감정적인 에너지에 비해 사실 조금 평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감정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강요하듯 지나치게 힘을 주는 연출들도 분명히 있고요.
제일 큰 단점은 인터미션이 1년이라는 점일 거예요^^
(✨<위키드> 원어 vs 더빙 장단점✨)
- 더빙은 국내에서 공연된 뮤지컬 ‘위키드’를 보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영화 자체가 영화적 성격보다 뮤지컬적 성격에 더 주안점을 두기도 해서 더빙은 고음질로 박제된 뮤지컬같은 인상이었습니다.
- 사실 음절 등 언어의 차이 때문에 입모양 등 싱크로율이 안 맞아 더빙이 어색할 수 있어서 원어를 고집하실 수도 있는데 원어의 배우님들 역시 출중하게 뮤지컬 연기를 펼쳐주셔서 원어 자체의 뮤지컬적인 질이 좋습니다.
- 한국 관객으로서 원어와 더빙을 둘 다 봤을 때 더빙은 국내 뮤지컬 대본 라이센스를 구매해서 직접적으로 와닿는 강점이 있습니다. 원어의 자막과 더빙의 대본 번역이 차이점이 꽤 있습니다. 원어의 자막은 의역을 한 부분도 있어서 현대적인 반면에 더빙의 번역의 경우 ‘오즈머니나’같이 재치 있고 더 체감이 빠른 번역들이 많습니다. 넘버 해석도 그런 식이고요. ‘I’m not that girl’의 번역이 가장 그런 것 같네요.
- 번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더빙에서는 ‘Dancing throuth life’에서 글린다가 엘파바를 보고 ‘떨고 있다’고 말하고 후반부 ‘Defying gravity’에서도 또 ‘떨고 있다’고 반복하면서 좀 더 대사의 힘을 강하게 줍니다. 그런데 원어 자막에서는 원어의 대사에 집중해서인지 그런 부분은 없더군요.
*참고로 쿠키는 없습니다.
- 별점 : ★★★★
원작의 팬이신지 팬심이 가득 느껴지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