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의 장미> 구작에 대한 칼럼
1.
나는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팬이다. 불평 없이 즐길 수 있는 건 <감바의 모험>, 영상의 샤프함을 즐긴다면 극장판 <에이스를 노려라!>, 캐릭터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보물섬>,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내일의 죠 2>. 가장 좋아하는 것은 <베르사유의 장미>일지도 모른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 소녀만화를 영상화한 TV 시리즈. 원작은 대히트작이며,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의해 무대화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방영 개시는 1979년 10월 10일. 총 40화다. 처음부터 데자키 오사무가 감독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가하마 다다오 총감독으로 시작했지만, 13화까지 담당하고 하차. 19화부터 데자키 오사무가 치프 디렉터를 맡고 있다. 나가하마 총감독과 오스칼을 연기한 타지마 레이코 사이에서 연기 플랜에 대해 엇갈림이 있었고, 그것이 감독 교체로 이어졌다고 한다(그에 대해서는 DVD <베르사유의 장미> 6권의 해설서에서 타지마 레이코를 취재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나가하마 총감독 시절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제대로 만들어져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혁명 전후의 프랑스를 무대로 남장 미인 오스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와 그녀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나가하마 총감독은 궁정 내 인간관계가 중심이 되는 시리즈 전반부를 화려하게 연출. 그에 반해, 등장 인물이 시대의 급류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시리즈 후반을, 데자키 오사무는 격렬하면서도 다이나믹하게 그렸다. 나는 시리즈 전반부도 즐겨 보고 있었는데, 너무 후반이 강렬했다.
데자키 오사무가 치프 디렉터가 된 첫 번째 에피소드가 19화 '안녕, 동생이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했다. 지난번과 같은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마치 다른 작품 같았다. 폴리냑 백작부인의 딸인 샤를로트가 드 기쉬 공작과 정략결혼을 당할 뻔하고 괴로워하다, 결국에는 투신자살을 해 버리는 이야기다. 오스칼의 곁에는 로잘리라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이 화에서는 로잘리를 키워준 어머니의 원수인 폴리냑 백작 부인이 그녀의 친어머니인 것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샬롯이 광기에 얽매여가는 것부터, 마지막까지의 텐션 고조가 어마어마하다. 중반에 폴리냑 백작 부인이 자신을 낳은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된 로잘리가 "오히려 더 미워질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도 대단하다. 그 밖에도 볼거리는 많으며 '드라마틱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연출이다. 또한, 이 화에서는 개구리의 입에서 물이 나오는 분수의 컷이 포인트로 여러 번 사용된다. 개구리는 아마도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추악한 생물이라는 의미이며, 아직 어린 샬롯을 권력을 통해 먹이로 삼으려는 드 기쉬 공작의 상징일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분수 컷의 플래시백적인 사용법은 실로 멋있고 황홀했다.
그 후의 에피소드도 텐션은 내려가지 않았다. 심정 묘사는 한층 깊어졌고, 분위기는 농밀해졌다. 데자키 감독의 생각이 솟구치고 있었다. 원작과 데자키 감독의 궁합이 좋았겠지. 드라마틱한 원작이 더욱 드라마틱해져 갔다.
놀라운 것은 드라마의 터치나 촬영 처리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외모까지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은 시리즈 전반도 후반도 변함없이 아라키 신고, 히메노 미치 콤비가 담당했다. 이 작품은 이 콤비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전반부에서는 소녀 애니메이션다운 귀여운 도안이었지만, 후반부에서는 극화 터치가 됐다. 남자답게 변했다고 해도 좋다. 감독 교체와 동시에 작화 감독이 바뀌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팬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해서도 계속 궁금했기 때문에 DVDBOX 해설서의 편집을 맡았을 때, 아라키 신고를 취재하며 도안의 변화에 대해서도 물었다. 데자키 감독은 교체 당시, 아라키 신고에게 캐릭터 그리는 방법에 대해 꼼꼼하게 지시했다. '눈 그리는 방법은 이렇게 해라'며 샘플까지 그려줬다고 한다. 데자키 감독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아라키 신고와 데자키 감독에 대한 취재 기사는 각각 DVD의 4권, 8권 해설서에 재녹음).
감독 교체는 이 작품에 있어서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전반과 후반에서 다른 감독이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는 소녀 애니메이션다운 화려함과 역사에 걸맞는 다이나믹함, 드라마의 깊이를 겸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극적인, 너무 극적인 감독 교체였다.
2.
본 방송 당시, <베르사유의 장미> 시리즈 후반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캐릭터 드라마로도, 역사물로도 즐기고 있었다. 막판에는 방을 어둡게 하고 보았다. 집에 있던 TV는 작은 것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된 후 2화째, 20화 '페르젠, 이별의 윤무'에서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음유시인이 등장한다. 한쪽 눈밖에 없으며 다리가 불편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시를 읊는다. 그는 프랑스 평민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시의 내용은 평민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첫 등장 당시의 시는 아래와 같다. "단 한 잔의 술. 우리의 생명수. 사랑도 사랑도 없네. 가진 것은 빚더미와 굶주린 가족들. 그것뿐이네. 베르사유 같은 건 관심도 없다네. 오스트리아에서 온 왕비든 스웨덴 귀족과의 사랑놀이든 우리는 모른다네. 베르사유 따위엔 관심도 없다네. 그보다 지금 원하는 건 단 한 잔의 술. 단 한 잔의..."
그는 그 후에도 몇 번 등장해 시를 읊는다. 기본적으로는 메인 캐릭터의 드라마와는 연결되지 않고, 막간에서의 등장이지만 앙드레와 말을 나눈 적도 있다. 여기서 앙드레에게 한 대사도 실로 훌륭하다. 시리즈 막판에 그도 프랑스 혁명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음유시인의 아들이 아코디언과 시를 이어받는다. 아들이 그의 시신을 강에 흘려보내는 모습을 오스칼이 목격한다. 그때 이미 오스칼은 평민 측에 붙어 있었고, 앙드레도 잃은 뒤였다. 따로 그려져 있던 오스칼과 평민의 대표였던 남자의 드라마가 완결 직전에 교차한 것이다.
본 방송 당시, 나에게 <베르사유의 장미> 후반의 인상은 이 음유시인에게 집약되어 있었다. 그의 존재가 이야기에 두께를 더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데자키 작품에서는 그 밖에도 시를 읊는 캐릭터로 <감바의 모험>의 시진이 있다. <눈의 여왕>의 라기도 음유시인이다. 시를 통해 이야기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분위기를 중시하는 데자키 작품답다.
데자키 작품다운 포인트로는 알랭과 위병대 멤버를 잊을 수는 없다. 위병대의 반장인 알랭은 데자키 작품에서는 존 실버나 고로마키 곤도와 같은 계통의 캐릭터이며, 무모하게 남자답다. 오스칼과의 대결 중에 검이 부러져 궁지에 빠진 그는 "무슨 말이냐? 남자들은 여기서부터가 진짜 승부다"라는, 정말 소녀만화가 원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대사를 말한다.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에 관해서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원작을 읽었는데 원작의 알랭은 스마트한 미남. 애니메이션의 알랭이 앙드레의 좋은 이해자라는 입장인 반면, 원작의 알랭은 오스카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의 입술을 빼앗는 전개가 있다. 너무 큰 차이에 놀랐다. 다른 위병대의 멤버는 <보물섬>의 해적 같은 거친 남자들. 그들이 술에 취해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금방이라도 "♪一杯やろうぜ、ヨーソロー!"라며 노래할 것 같다.
기억의 실을 손으로 잡아당겨 보면, 나는 본 방송 당시에는 막판의 프랑스 혁명에 돌입한 후를 더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전쯤이 좋다. 앙드레가 좋다. 앙드레가 주인공으로 생각될 정도로 앙드레가 좋다.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태도가 좋다. 데자키 감독의 연출과 그의 캐릭터가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28화 '앙드레 푸른 레몬'이다. 제목도 대단하지만 내용도 대단하다. 시리즈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화다. 페르젠은 무도회에서 자신과 춤을 췄던 여성이 오스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스칼은 그와 결별하고, 그리고 더 남자로서 살기 위해 근위대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한다. 한편, 앙드레는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고뇌하면서 스스로를 바꾸려는 오스칼에게 짜증을 내며, 자신의 마음을 부딪친다. 오스칼의 입술을 빼앗아, 침대에 밀어눕힌다. 이 화에서는 오스칼, 앙드레, 페르젠, 앙투아네트의 마음이 엇갈린다. 캐릭터가 감정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다.
이 화는 명대사도 많다. 그 유명한 앙드레의 "빨갛게 피든 하얗게 피든 장미는 장미야. 장미는 라일락이 될 수 없어"도 이 화. 하지만, 나는 페르젠과 오스칼의 관계 정리를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의 명대사로 추천하고 싶다. "이 세상엔 두 가지 사랑이 있어. 기쁨의 사랑 그리고 괴로운 사랑"이라고 오스칼이 말하자 페르젠은 "아니야, 오스칼. 이 세상에 사랑은 딱 하나. 괴로운 사랑뿐이야"라고 답한다. 페르젠도 오스칼과 마찬가지로 슬픈 사랑에 사는 남자다. 페르젠이 떠난 후 오스칼은 말한다. "신이시여! 페르젠을 지켜주소서. 언젠가 그에게 기쁨의 사랑을 허락하소서"라고. 이런 엄청난 대사인데 쑥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드라마의 높은 텐션과 제작자의 미의식 때문일 것이다.
선곡도 좋다. A파트에서 엔딩 테마 <愛の光と影>가 삽입곡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이상의 사용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훌륭한 사용법.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좋다. 여러 에피소드를 꽉 채우고 있는데도 기분 좋게 드라마가 진행된다. 다시 한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연출뿐만 아니라 선곡의 힘도 있겠지. 8년 정도 전, DVD-BOX의 구성을 하기 위해 전 에피소드를 다시 봤을 때, 이 화에 취했다. 정신없이 취했다.
원문
http://www.style.fm/as/05_column/365/365_033.shtml
http://www.style.fm/as/05_column/365/365_034.shtml
전에 몇 번 소개했던 애니메이션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의 칼럼입니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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