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Ⅱ>를 보고 (스포O)
2000년에 개봉해 압도적인 흥행 성적을 거둔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인 <글래디에이터 Ⅱ>가 24년 만에 개봉해 보고 왔습니다. 1편의 내용 특성상 주요 캐스트가 돌아올 수 없는데, 대신 작년 개봉작 중 뛰어난 영화인 <애프턴 썬>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인 폴 메스칼이 주연으로 나섰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속편에도 참여해 직접 메가폰을 들었고요.
전작의 결말부를 그림으로 묘사한 오프닝 크레딧으로 막을 여는 이 영화는 '글래디에이터'라는 이름을 단 별개의 시리즈나 스핀오프가 아니라 오롯이 전작의 유산을 이어받은 속편임을 나타내 전작의 관람은 필수적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듯 1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아진 로마 제국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작에서 초반부 전투신을 통해 막시무스의 활약을 보여준 반면에 속편에서는 초반부 전투신에서 막시무스의 아들인 ‘루시우스’가 속수무책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전작에서는 왕위 계승 등 복잡한 관계로 '막시무스'를 노예로 전락시켜 그에게 영웅적 서사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에 반해 속편에서는 패전의 상황과 아내의 죽음이 한 번에 겹쳐져 노예로 전락해 '루시우스'의 캐릭터가 평평해졌습니다.
실정하는 황제를 쌍둥이로 설정한 것처럼 전작의 유산을 두 갈래로 나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2'라는 키워드가 줄곧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막시무스'의 캐릭터도 승전하고 휴식을 희망하지만 좌절하고 막판에는 그처럼 황제 폐위를 음모하는 '아카시우스'와 패전 후 곧바로 노예로 전락해 검투사가 된 '루시우스'로요. 그 외에도 기량을 보기 위한 맨몸 대결은 일대일로 진행되고, 황제 앞에서 처음 선보이는 결투도 일대일으로 진행되며, '아카시우스'와도 일대일 대결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대결인 '마크리누스'와의 대결도 일대일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대결에서 처음 이긴 보상으로 받은 동전도 2개고, 루실라가 기르는 개도 두 마리입니다.
제목부터가 검투사이고 속편인 만큼 더 큰 스케일을 보여주리라는 포부였는지 이번 검투씬에는 유인원, 코뿔소, 상어 등 동물이 가세하게 됩니다. 물론 전작에서도 호랑이가 검투에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코모두스'의 비열함을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그에 비해 속편에서는 자극이나 볼거기로 쓰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막시무스'가 황제 앞 검투에서 승리 후 자신의 이름을 밝혔듯이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반복해 '루시우스'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정체를 넌지시 드러내며 60분 되는 지점에서야 플래시백으로 그들의 사연을 제공해 관객이 사태를 파악하게 합니다. 중간중간 전작의 촬영분이 삽입되어 리들리 스콧이 등장해 향수를 더하기도 하고 '루시우스'의 유년시절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줘 비극을 강화시키는데 친절한 방식이긴 하지만 편의성에 의해서 기능될 뿐이라 그 화법에 고민이 없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권력 암투로 떨어졌던 '루시우스'와 모친 '루실라'가 재회하지만 미처 오해가 풀리지 않고 정치적 이유로 부득이 '루시우스'의 아내 '아리샷'을 죽인 '아카시우스'와의 관계성으로 비극성을 더합니다. 이번 속편 역시 황제 폐위 음모가 사전에 들키게 되면서 '아카시우스'는 검투에 임하게 되고 급기야 '루시우스'와 맞붙게 되는 비극을 극대화하다가 신파로 시퀀스의 종결하고는 '마르키누스'로 급격히 화살의 방향을 틀어 그간 그나마 진행해온 비극을 무너뜨려 탄식하게 합니다. 전작에서는 발각이 되어 이루지 못했던 반역을 다음 세대인 속편에서는 '루시우스'가 '막시무스'의 갑옷을 입고 반역을 꿰하면서 서사적으로는 전진하지만 영화적으로는 전진하는데 실패합니다. 영웅으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실패하고 사실상 단순한 복수극에 그친 인상이니까요.
그렇지만 초반부 해상 전투씬이나 중반부 페르시아 전투를 재현하는 해상 검투씬 등 전투씬의 연출을 깔끔해졌고, 흑백으로 단테의 신곡을 연상케 하는 내세 등 초월적 부분에 대한 연출은 훨씬 정제되었습니다. 더불어 <애프터썬>에서 이미 음울이 드리워진 연기를 소화해낸 바 있는 폴 메스칼의 깊은 얼굴은 묵묵히 비극을 연기해 차기작인 <햄넷>까지도 기대케 합니다. 코니 닐슨은 여전히 우아해서 놀라게 하고, 상황을 좌지우지라는 델젤 워싱턴은 캐릭터 자체보다는 배우 자체의 아우라만이 느껴지네요.
-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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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는 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