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를 보고 (스포O)
<플로리다 프로젝트>을 연출한 션 베이커 감독의 신작이자 바로 올해였던 제 77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서 큰 화제를 모은 <아노라>를 보고 왔습니다. 호평일색의 영화인지라 저 역시도 엄청난 기대를 안고 봤네요.
빠른 BPM의 음악과 함께 성 노동자의 근무 환경 그러니까 서스름없이 스트립쇼로 막을 엽니다. 초반부 성 노동자인 주인공이 근무하는 HQ에서 자연스레 성 노동자-손님 관계로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귀여운 여인>의 클리셰를 로맨틱하게 밟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엔 화려할 지언정 부정이나 미화 없이 가감없이 쾌락의 관계를 그려냅니다. 배드신이 잦기도 하고 노출 수위도 높은 편인데, 어둠에서 가리지 않고 그 행위를 여실히 드러내는 낮 촬영분의 배드신도 있습니다. 클럽씬과 파티씬이 잦은 초반부는 그렇게 오직 떠들석함과 쾌락에만 확실히 포커스를 맞춥니다. 중간에 가볍게 툭툭 대사로 던지듯 넘어가긴 하지만 ‘노동자’의 측면에서 성 노동자는 스케줄 근무로 일하고 사대보험 없다는 점을 뼈있는 농담삼아 다루기도 합니다. 그렇게 초반부 40분의 분량은 애니가 계속 거절하지만 꿋꿋하게 이반이 프로포즈를 하면서 sweet dream의 최절정을 찍으며 1막을 끝맺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1막이 빠르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에 대비해 2막은 진입하자마자 빠르게 식어버립니다. 1막이 외면했던 것은 아니지만 2막에서는 이제 또 다른 측면, 현실적인 측면을 보여준달까요. 이반의 가족이 개입하게 되면서 영화의 톤이 바로 다운되면서 판타지에서 현실로 발을 닿게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예측된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반이 도망을 가게 되면서 스쿠루불 코미디로 전개됩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이 직전의 판타지와 충돌시켜 현실을 강하게 자각시키는 겁니다. 젠틀한 척 하지만 토로스 일행은 깡패와 다를 바 없는 직원을 동행하고 그들의 행동은 사실상 아노라를 감금한 것과 다를 바 없죠. 그 상황에서 애니의 눈과 입을 클로즈업해서 그녀의 절규와 이 괴리를 극대화시킵니다. 이건 엄연히 폭력인데, 토로스 일행은 캔디샵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견인 관련 법률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꽤나 긴 분량을 폭력에 가까운 장면에 투자하면서 토로스 일행의 부도덕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로드무비에 가까운 2막의 여정을 겪으면서 점차 무너지게 되는 애니의 내면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아가고요.
이제 러닝타임의 90분이 되는 지점에 이야기의 원점이자 애니가 일했던 HQ에서 다시 반야를 찾게 됩니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반야는 술에 취한 상태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거기서 애니만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그의 부모도 애니를 면전에 무시하고요. 오직 같은 하층민인 이고르만이 그녀에게 사과를 하고, 스카프를 챙겨주고, 묵묵히 바라보고, 곁에 있어주고, 물을 건네고, 반야의 가족들보고 그녀에게 사과를 하라며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둘은 할머니와 가까운 관계라는 공통분모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이고르가 딱히 성적인 매력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직업이나 신분(애니)이 아닌 그저 사람(아노라)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화려하고 요란했기에 결말에서의 씁쓸함과 처연함이 배가 되네요.
- 별점 : ★★★★☆
추천인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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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21세기의 귀여운 여인이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