氷点 (1966) 너무 단단하고 비감성적인 면이 있는 빙점. 스포일러 있음.
빙점 원작소설이 1963년에 나왔고, 이 영화는 그후 3년 뒤에 만들어졌다.
원작자 미우라 아야코가 그렸던 그 소설 속 세계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는 장점이 있는 영화다.
좀, 폭풍의 언덕 느낌도 준다.
일본의 북쪽 끝 홋카이도가 무대다.
나무로 지어진 좁은 집과 황야, 그리고 아직 원시성이 남아 있는 홋카이도의
풍경 등. 지금은 홋카이도에 가도 이런것을 볼 수 없다.
좀 폐쇄적이고 야성적이라는 느낌도 주는 환경이다.
병원장 게이조나 그의 아내 나쓰에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
한 가정의 파국을 몰고 왔는지 이해가 간다.
그들의 아들 도루가 이복남매 요코와 결혼한다고 하는 것이나, 순결에 극도로 집착하는 요코가
죽음을 선택하는 결말도
이 어두컴컴하고 좁고 나무냄새 떠도는 어둠 속에서는 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들 모두 폐쇄성과 야수성이라는 홋카이도의 성격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눈의 나라 홋카이도의 정취가 당시 그대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벌판을 진짜로 나가서 찍었다. 이거 특수효과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대체 못한다.
진짜로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사람이 날아갈 것처럼 세찬 바람에, 배우들은 휘청거리면서
간신히 연기를 한다. 1960년대 삿포로 눈축제나 아이누족들의 공연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많이 삽입되어진 영화다.
나중에 나오는 빙점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한 풍경 속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공들도 도회적이고 세련되었다기보다 거칠고 투박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병원장 게이조의 아내 나쓰에는, 불륜을 저지르기 위해 어린 딸더러 잠깐 나가 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짧은 동안에, 어린 딸은 목졸려 살해당하고 만다.
게이조는 아내 나쓰에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자의 어린 딸을 입양해 키우게 만든다.
나쓰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쓰에가 살인자의 어린 딸 요코를 애지중지 키우는 것을 보고
게이조는 기분이 착잡하다.
어느날, 나쓰에는 남편의 방을 청소하다가, 남편이 쓴 짤막한 메모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요코의 정체가 밝혀져 있었다.
경악한 나쓰에는 그날부터 요코를 보이지 않게 학대한다.
이후 이 가정은 지옥으로 바뀐다.
이 영화는 세련된 멜로드라마라기보다, 아주 견고하고 장중한 일본 고전영화다.
내 생각에, 영화적 완성도는 견고하지만, 너무 감성적인 면이 없다.
게이조나 나쓰에나 아주 극단적인 인물들이다.
요코는 갑자기 바뀌어버린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기가 입양된 딸이라는 것을 알고,
바뀐 환경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려 한다. 늘 밝고 티 없고 깨끗한 소녀다.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소녀인데, 어머니는 그녀를 학대한다.
부유한 병원장집 딸인데도, 학비를 벌려 우유배달을 해야 한다.
나쓰에의 아들 도루는,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행동에 반감을 가지다가,
나쓰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적인 장중함이 강조된 나머지, 등장인물들 개개 심리묘사의 섬세함이 부족하다.
나쓰에 역을 맡은 와카오 아야코가 워낙 대배우라서 그런지, 그녀에게 너무 촛점을 맞춰
영화를 진행시키는 감이 있다. 물론 대배우라서 열연을 펼친다. 하지만, 1인극이 아닌 영화가
1인극처럼 되어 버리는 것은 문제다.
요코와 도루에게 주어지는 비중이 너무 작다.
요코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 남자가 너무 훌륭한 가문 사람이다.
나쓰에는 안 보이는 데에서 둘 사이를 훼방놓다가, 그것도 안되자 둘 앞에서 요코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남자는 별 신경을 안 쓴다. 사랑하는 여자가 살인자의 딸이라고 해서 뭐 어떻단 말인가?
하지만, 요코가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려 뛰쳐나가 버린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다.
요코가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과정이 착착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좀 뜬금없이 느껴진다.
요코라는 캐릭터가 확고하게 구축되지 않은 때문이다. 이 장면의 설득력이 주제와도 깊이 연관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참 아쉽게 느껴진다.
원작소설이 기독교적 메세지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엄청난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무덤덤한 엔딩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다.
장중하고 견고한, 대배우가 등장하는 일본고전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빙점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이것으로 좋은 것일까?
추천인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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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주 장중하더군요. 하지만, 소설가가 말하고자 한 기독교적 메세지가 좀 덜 살아난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영화로서는 훌륭합니다.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나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