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 (1960) 소피아 로렌의 명연기. 스포일러 있음.
소피아 로렌이 이탈리아영화에 이탈리아어로 연기했음에도, 외국어영화상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는 전설의 영화다. 이밖에도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
총 20여개 상을 이 역으로 탔다고 한다.
이 영화는 비토리오 데시카감독이 만든 네오레알리즘에 드는 영화다.
그래서, 감정에 호소하거나 감동을 주려는 연출을 하지 않는다.
소피아 로렌의 연기는 매우 격렬하지만, 감정에 호소하려는 연극적인 면모는 없다.
관객으로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감독이나 배우들이나 관객들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포착하고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관객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이 비극은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비극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현실이 더 이상 자신의 현실이 아니게 되어 버린
오늘날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때는 이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다.
로마에 공습이 가해지고, 로마 식료품점 주인인 소피아 로렌은
어린 딸의 안전을 위해 자기 고향인 두메산골로 피난하게 된다.
폭격이 건물을 흔들 때마다, 어린 딸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공포에 질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소피아 로렌과 어린 딸은 전쟁통에 가난, 굶주림, 강간 등을 겪으며,
전쟁의 상흔을 눈동자 속에 담은 비정한 여자로 재탄생하게 된다. 전쟁 참화 속에서 흔히 보는,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여자들 말이다.
소피아 로렌도 착실한 여자는 아니다. 부자인 남편의 돈을 노리고, 늙은 남편과 결혼해서
그의 유산을 챙겼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원래 주변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이다.
남자와 섹스하는 것쯤은 별것 아니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 인생에 단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것은 바로 모성애다.
그녀의 어린 딸은 아직 15세가 되지 않았다. 엄마 치맛자락만 붙잡고 떠나지 않는 여자아이다.
전쟁의 참화를 내 딸만은 겪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소피아 로렌의 바램은 역설적으로,
딸을 전쟁의 참화 한가운데로 밀어넣게 만든다.
소피아 로렌의 고향은, 우리나라 화전민집을 연상시키는 초가집 몇채 있는 두메산골이다.
척 봐도 가난과 굶주림이 일상이 된 사람들이 산다. 소피아 로렌은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딸만은 살뜰하게
보살펴주려 노력한다.
아직 어린 딸은 이제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해서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려 한다. 소피아 로렌의 눈에는
아직 어린 딸이 세상 물정 모르고 위험한 길로 가려 하는 것 같다.
이 두메산골에도 파시스트들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다닌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독일군인들이
마을사람들을 위협하고 다닌다. 마을사람들은 위협에는 굴복하고, 굶주림에는 익숙해지면서,
초라하게 생존을 지속한다. 파시스트가 오면 파시스트에 복종하고, 독일군인이 오면 독일군인에 복종하고,
나중에 미군 연합군이 오니까 그들에게 깃발을 흔들며 복종한다. 마을에 피난 온 대학생 청년 장 폴 벨몽도는
이런 마을사람들을 질타한다.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빈 항아리같다. 그 속에 누구나 자기 이념 자기 지배논리를 채워넣을 수 있다.
소피아 로렌의 어린 딸만이 장 폴 벨몽도를 이해한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훌륭한 장 폴 벨몽도에 투영한다.
독일군인들은 미군에 밀려 이탈리아에서 퇴각하면서, 산을 넘어가려고 한다. 산의 지리를 잘 아는
마을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은 장 폴 벨몽도를 위협해서 자기들을 안내해달라고 한다. 장 폴 벨몽도는 안다.
독일군인들이 자기들 안전을 위해, 장 폴 벨몽도를 살려서 마을로 돌려보낼 리 없다.
그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태연한 표정으로 독일군인들과 떠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영화가, 김수용 감독의 산불이다.
625를 다룬 영화 걸작인 산불이 이 영화만 못하지 않다.
그런데, 한 영화는 영화사상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고, 다른 한 영화는 잊혀져가고 있다.
이것은 후손인 우리가 못난 탓이라 생각한다.
네오레알리즘영화에 이념이나 가치 그리고 정치상황 등을 녹여넣은 것이다.
소피아 로렌의 연기는 과연 훌륭하다. 그녀도 무지한 여자다. 자기와 딸 안전만 생각한다.
오늘 하루 어떻게 하면 빵 한조각 더 먹을까만 생각한다.
장 폴 벨몽도가 그렇게 질타했던 마을사람들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독일군인들이 패배하고, 2차세계대전은 끝나고, 미군과 연합군들이 이탈리아에 진주한다.
소피아 로렌은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로마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어느 폐허가 된 성당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온 모로코군인들에게 강간당한다.
자기가 강간당한 것은 뭐 참을 수 있는데, 15살도 안된 미성년자 딸도 어머니 곁에서 강간당한다.
아마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적 장면이었을 것이다.
암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상세하게 강간과정을 보여준다.
소피아 로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고이 고이 기른 딸이 강간당해서 다리 사이로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그녀는 지나가던 미군에게 자기들 참상을 호소하려 한다. 미군은 비키라고 위협하고 지나가 버린다.
그들은 구원자들이 아니었다. 남의 힘을 빌어 구원되고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했던
이탈리아사람들은 어리석었다.
강간 이후 딸은 어머니를 밀어 버린다. 무표정해지고, 감정도 사라지고, 자기 주변을 증오하고, 냉소적이다.
자포자기해서 몸을 팔러 다닌다. 15세도 안된 소녀가 말이다.
소피아 로렌은 충격받아서 딸을 달래보려 하지만, 딸은 어머니에게도 냉소적으로 군다.
어느날, 소피아 로렌은 잘 폴 벨몽도가 독일군인들에게 총살당했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집에 돌아온 딸은 소피아 로렌에게 차갑게 군다.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하지만, 장 폴 벨몽도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한다.
그녀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자포자기가 풀린다. 아마,
장 폴 벨몽도의 그 신념과 이타주의 그리고 가치관이 이탈리아 민중을 구원할 수 있다는
감독의 메세지가 아닐까?
그렇다고, 비토리아 데시카 감독같은 대가가
메세지를 생경하게 집어넣거나, 관객들을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 속에 캐릭터 속에 자연스레 녹여 넣는다.
소피아 로렌과 딸은 비로소, 서로 얼싸안고 운다. 딸의 고통은 비로소 풀린다.
영화가 아주 단단하다. 절차탁마 - 갈고 또 갈아서 불필요한 여분을 모두 제거해 버린
걸작 조각품 같다. 비정하면서 투명하고 깨끗하다.
소피아 로렌과 딸의 비참한 운명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아무 감정도 호소력도 불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심지어는,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끌어넣으려 연극적으로
영화를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인간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감동을 준다. 전쟁의 참화인 황량한 정신적 풍경으로부터 부활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추천인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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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설명만 봐도 처절하네요.
마늘 사과식초 올리브유를 먹고 피부에 미인수(마늘 사과식초 올리브유를 섞은 화장수)를 바르는게 미의 비결이라고 합니다.83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아름다운 여배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