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소림 (1994) 홍콩느와르 그 이후. 스포일러 있음.
홍콩느와르가 화려한 막을 내리고 주윤발은 미국으로 갔다.
주윤발이 미국에서 돌아와 두 편의 영화를 내놓았는데, 하나는 화기소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화평본위다.
두 영화 모두 아주 중요한데, 홍콩 느와르 이후 홍콩이 중국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여기 나타나 있다.
화기소림에서는 미국이민 3세 중국인 주윤발이 미국을 버리고 자기 나라인 중국과 사랑에 빠진다.
화평본위에서는 냉혹한 살인자 주윤발이 자기만의 좁은 객잔을 만들고서 어느 세력이든 간에 이 객잔에서는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외부의 어떤 폭력도 권력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냉혹한 힘으로
그들로부터 자유로운 자기 공간을 선언한다. 하지만, 외부의 세력들에 의해 이 객잔은 파괴되고 주윤발은 행방불명된다.
두 영화 모두, 이미 사라진 홍콩느와르가 다시 부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정서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 두 영화들은, 홍콩느와르의 백조의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기소림에서 이미 홍콩느와르는 우스꽝스런 코메디가 되고 있다.
영화 처음에 무시무시한 CIA 저격수 주윤발이 권총을 가지고 수많은 범인들을 잡는다. 하지만 홍콩느와르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라, 유치하기 그지 없다. 개폼을 잡고 몸을 비비 꼬면서 권총에서는 총알이 수 없이 나간다.
보는 관객들이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홍콩느와르는 그 정신적 맥락이 사라지만, 그냥 허무맹랑한 코메디에 불과하다. 주윤발은 이 영화에서 과거 홍콩느와르의 영웅이었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 홍콩느와르의 정신이었던 팽팽함, 긴장, 비장함, 울분, 비극 등이 이미 사라졌다. 중국에 대해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홍콩이다.
주윤발은 중국으로 가서 국보를 가져오라는 비밀지령을 받고 중국 소림사로 간다. 이 영화는 주윤발이 소림상에 가서 겪는 일들을 그린 것이다.
지금 중국을 생각해선 안된다. 마악 개방되어 순결하기 그지 없는, 순박하고 정이 많은 곳이다.
주윤발은 소림사에서 신비한 소녀 오천련을 만난다. 그녀는 순결한 중국을 상징하는 여자다. 달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데, 왜 우냐고 물으면, 달을 보면 눈물이 그냥 난다는 소녀다. 주윤발은 오천련에게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굉장히 센티멘털하다. 주인공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오천련이니까. 하이틴 로맨스를 보면서 감동 받고 그냥 울고 싶고 그런 소녀다. 이런 영화는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쉽다. 관객들은 모두 더 이상 사춘기가 아니니까. 괜히 울고싶어지는 오천련을 보며 함께 괜히 울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공이다. 그 이유는......
오천련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녀 방이 마주보는 벽에 있는 한 그루 홍매화나무같은 여자다.
무슨 이유때문에 오천련은 소림사의 방 한켠에 갇혀 있는 것일까? 저런 소녀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고......
주윤발은 오천련이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 벽을 투과하고 물건을 공중으로 떠오르게 하고.
오천련이 신비하고 깨끗하게 그려지기에, 그런 능력도 환상적이고 몽환스럽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아름다운 환상을 현실에 풀어놓는 것이다.
주윤발이 오천련을 업고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은 유명하다. 오천련의 영화 속 이미지답게, 티없이 새하얀 눈송이들이 내리는 달빛 속을 둘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서양적이라기보다 동양적이다. 그들은 함께 이 세상 것이 아닌 아름다운 환상 속을 날아간다. 원숙한 주윤발에게야 이것은 사랑이겠지만, 이제 소녀티를 벗기 시작한 오천련에게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닿으면 깨질 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유리공예같은 장면이다. 이 장면 하나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액션이 잠깐 나오는 로맨틱코메디이기 때문에, 주윤발이나 오천련이나 코메디연기가 아주 중요하다.
둘 다 아주 코메디연기를 잘 한다. 오천련은 전형적인 미녀가 아니라, 소녀소녀스러운 깨끗한 이미지의 여배우라서
이 역할에 잘 맞은 것 같다.
주윤발은 소림사 내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다. 스님들은 코카콜라를 마시기 시작하고, 스님들이 야구부를 조직해서 서로 경기를 즐겁게 하고...... 홍콩과 중국은 서로 화기애애하게 즐겁게 지내며 서로를 개방시킬 수 있다. 오천련과 주윤발은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진다. 홍콩느와르 시대 로맨틱코메디의 장점이 이 영화에 두드러진다.
화면 하나 하나에 농밀한 감정을 잔뜩 불어 넣는다. 오천련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그녀의 깨끗한 첫사랑의 감정을 화면 하나 하나에 이렇게 불어넣을 수 있는 영화를 달리 누가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주윤발은 하나를 잊었다. 그는 외국(미국)의 스파이로 중국의 국보를 밀반출하러 잠입한 스파이다. 말하자면 간첩이다. 주윤발이 찾던 중국의 국보는 바로 초능력소녀 오천련이었다. 그는 중국을 상징하는 오천련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미국과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한다.
중국정부는 오천련을 연구소로 데려가고, 주윤발은 간첩죄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둘은 기차역에서 헤어지게 된다. 이 애절한 장면이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한다.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이 영화는 성공인 것이다. 주윤발과 오천련은 이 장면에서 애절함과 로맨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이 영화는 로맨틱한 러브스토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라면, 조금 센티멘털한 장면이 있어도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
"너는 언젠가 내게 책을 보여주었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진 다음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나는 그때 유치하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우리 이야기가 될 줄이야......"
주윤발이 이런 대사를 하며 애절한 표정을 지을 때, 이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된다. 과연 대배우다. 주윤발과 오천련이 달빛 속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과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 - 다른 영화 어디에서 보기 힘든 명장면들이다.
자기가 어딜 가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달을 보면, 그 달을 바라보던 널 생각하겠다는 말을 하고 헤어진다. 기차는 오천련을 싣고 떠나간다. 주윤발은 뛰어서 기차를 쫓아가다가 제지받고 쓰러진다. 그는 눈물을 흘린다. 기차는 점점 더 멀어진다.
홍콩에서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한국 개봉필름에 특별히 주윤발과 오천련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삽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맞다.
이 영화의 정치적 메세지는 분명하다. 중국의 국보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오천련이다. 개방이 마악 시작된 소박한 중국이다. 홍콩을 상징하는 주윤발은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아름다운 사랑에 빠진다. 지금에 와서
이 정치적 메세지는 눈에 안 띈다. 현재의 중국만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 그려진 오천련이 중국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힘이 이 영화에 매력과 비상한 감정적 힘을 불어넣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이 영화가 별로 잘 만든 것 같지 않아서, 이런 영화가 앞으로도 자주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후로 이런 영화는 나오지 못했다.
추천인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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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진출 직전에 찍은 작품들로 알고 있습니다.
화기소림은 괜찮았는데 화평반점, 화평본위는 저에게 악몽같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아마 화평본위를 명보에서 봤을겁니다. 극장에서 봤을때는 라스트 싸움씬에서 주윤발배우 혼자 수백명을 상대할때 피가 낭자하게 뿌려지는 씬이 있는데 화면에 순간 나무 국자로 피를 뿌리는 모습이 잡혀서 화까지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에 비디오였는지 DVD였는지로 봤을때는 없던 걸로 기억합니다.
중간과정은 어찌나와도 상관이 없었고 솔직히 라스트씬에만 모든 기대를 걸고 보러간거였는데 그게 예상한 퀄리티보다 훨씬 떨어지게 나와 좋지 못한 기억으로 있습니다
오천련의 순진무구한 얼굴 아련합니다.
홍콩 반환 직전에...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은유한 영화들이 많았죠.
그때 좋았는데...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