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날의 거짓말 - 간단 후기(ft.무대인사)
먼저.
사진에 보이는 최민재 배우는, 무대 인사를 위해 군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고 하더군요. 뭔가 좀 미안하고 그랬더랍니다. 한국에서 남자가 군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영화를 위해 휴가를 받아 왔을 마음과 분주함 등 그러한 생각을 하니 괜스레 먹먹해지기도 했고요.
첫 번째로 한국에서 독립영화의 위치를 가늠해 봅니다.
먼저 1월에서 6월까지 개봉한, 집계 가능한 독립영화를 찾아 보았습니다.
길 위에 김대중(128,543명), 세기말의 사랑(12,106명), 울산의 별(1,514명), 간신의 피(442명), 이어지는 땅(3,928명), 혐오의 스타(131명), 머릿속을(226명), 아네모네(7,866명), 검은 소년(4,293명), 장인과 사위(2,403명), 벗어날 탈(1,393명), 당신이 잠든 사이(4,293명), 화녀(7,075명), 뒤주(3,855명), 돌핀(6,374명), 다시 김대중-함께 합시다(912명), 부활 그 소망(9,097명), 그날이 와버렸네(35명), 세월: 라이프 고즈 온(1,303명), 검치호(689명), 연련(486명), 땅에 쓰는 시(23,591명), 바람의 세월(17,702명), 들리나요?(4,556명), 정순(4,581명), 돌들이 말할 때까지(2,207명), 그날의 딸들(466명), 8인의 용의자들(416명), 모르는 이야기(1,547명), 드라이브(339명 스릴러 드라이브는(71,749명)), 분노의 강(11,766명), 노무현과 바보들: 못다한 이야기(1,168명), 미지수(1,745명), 늦더위(1,910명), 판문점(9,623명), 대치동스캔들(1,797명), 니자리(561명), 생츄어리(7,776명), 양치기(2,574명),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469명),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856명), 우리와 상관없이(644명), 정직한 사람들(229명), 도토리(200명)
정치적 이슈, 영화로 보기 어려운 작품 네다섯 편 정도를 제외한 독립영화 44편입니다. 물론 영화진흥위원회는 제작비 특정 금액 이하는 모두 독립영화로 감안하기에, 훨씬 더 많은 영화가 독립영화에 편입되겠죠. <길 위에 김대중>, <땅에 쓰는 시> 같이 특정한 목적성을 지닌 영화를 제외하면 순수한 독립영화로 기능한 영화를 박스오피스로만 따진다면 저토록 처참한 수준입니다.
물론 특정 배급사가 단관 개봉을 하고 곧바로 OTT로 직행한 몇몇 영화는 일반 관객이 볼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뺀다 해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던 영화들이 맥없이 극장에서 내려지고 말았습니다.
중간에, 많은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네요. 강남좌파와 현 영화계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만, 여하튼 한국영화를 위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며, 좋은 영화가 상영관이 없어 좌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영화인들의 시선입니다. 일단 서두는 이즈음만 깔고요.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일은, 제도권을 벗어나 특정적인 관여 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러하기에 독립영화야말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자율적인 창작성을 마음대로 뽐낼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입니다. 물론 단어 자체 즉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그것을 의미하느냐 하면 틀리죠. 메이저 배급사에 배급권을 따내지 못한 영화, 그러해서 영화관 체인이 없는 독립적인 극장에 걸어야 하는 영화를 일컬어 부르던 게 굳어져 상용 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는 의미가 변해 특정 금액 이하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를 칭합니다. 어쨌든 독립영화를 만들며 관객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창작성에 제한을 두는 일은 우선 순위가 바뀐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니체 식 결과론에 대해 칭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져다 댈 수 있는 잣대입니다만, 관객을 염두에 두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상업영화로 규모 확장을 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현재까지도 영화를 "감독 놀음"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창작성"이거든요. 그러하기에 예술로 불리는 것이고요.
오래도록 소위 "니쥬"를 깔았던 이유는 <그 여름날의 거짓말>이 가진 "파닥거리는 날것의 몸짓" 때문이었습니다. 열일곱살의 첫사랑! 그 열화 같은 첫사랑을 겪으며 벌어지는 일이 그 어떤 영화적 로직을 비켜가며 관객을 무척이나 당황시킬 게 눈에 선하거든요.
영화 줄거리를 긁어올게요.
어떤 열일곱의 치열한 첫사랑 여름 방학이 시작되던 날, ‘다영’ (박서윤)은 만난 지 ‘28일 만에’ 다른 여자가 생긴 전남친 ‘병훈’ (최민재)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어떻게든 이 사랑을 지키고 싶은 '다영'은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열일곱, 사랑의 힘으로만 버텨내기엔 벅찬 감정의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진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은, 첫사랑을 획득하려는 다영의 집요함에 있습니다. 다영은 자신의 첫사랑을 획득하기 위해 어른을 끌어들이고 그 소용돌이로 인해 파멸과 파국을 겪으면서도 첫사랑을 획득해 냅니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가진 이성과 판단력은 좋게 말해도 참으로 보잘 것 없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딱 열일곱살만큼의 일천한 경험이 발휘되고 맙니다. 이러한 대목에서 관객석에서는 쉴 새 없이 탄성이 터지더군요.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또래의 동생,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공감한 울림이었으리라 봅니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위에 열거한 영화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며, 저들이 속한 스코어 정도에서 아마도 극장적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다시 이 영화는 독립영화입니다. 감독이 자신의 창작 잣대를 소위 '로직'에 들이대지 않고 자신의 깜냥으로만 만들어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일반적인 범주에서 완연히 벗어납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어이없어하거나 감정적 소모와 흉폭에 욕을 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창작의 예술적 승화지점입니다. 이게 반드시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로 치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영화의 낯설음이 가져올 감정적 소모와 흉폭은 분명 보는 이에게 겪어보지 않은 경험을 선사할 테니까요.
<그 여름날의 거짓말>, 독립영화에 충실했고 영화적 기교나 촬영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분명했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또렷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영화가 가진 흉폭과 파국, 그리고 현실적 도모는 "영화적 낯설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그 여름날에 다영이 벌인 거짓말, 그거 아니겠느냐고 에둘러 끝을 맺습니다. 내가 했던 거짓말, 우리가 했던 "나를 위한" 오로지 "나만을 위했던" 거짓말이 "파국"이 되어 돌아온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그저 한 여름의 거짓말로 끝난 게 얼마나 다행스러울지는 안 봐도 뻔할 듯합니다. 그렇죠, 그리고 이런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불러야죠. 한국의 독립영화, 라고.
감독과 배우분들의 무궁한 발전 기대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