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 일세를 풍미하다.
거미집이라는 영화에서,
최은희로 생각되는 인물을 "단역배우가 남편 잘 만나 호령한다"같은 식으로 묘사하였기에,
최은희의 일생을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최은희는 양갓집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기도 했고, 보수적인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은희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는 배우가 악극단을 따라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배우와 코메디언 가수가 모두 섞여서 동료였습니다. 지금처럼, 코메디언의 위상이 배우에 비해 낮았던 것도 아니고,
코메디언들의 연기력도 뛰어났습니다. 구봉서, 서영춘, 김희갑 등 모두 훌륭한 연기력을 가졌습니다.
아직은 어린 최은희를 조명감독인가 하는 사람이 채 갑니다. 당시 최은희가 뭘 제대로 알기나 했을지.
(최은희는 같이 살았지 혼인신고는 안 했다라고 말하는데 진실은......)
최은희는 뭐 집안과 의를 끊었다 하는 식은 아니고, 부모님도 최은희의 배우일을 인정해주고 계속 보살펴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최은희는 악극단계의 스타로 떠 오릅니다. 당시 삼순이라고, 젊은 여자스타들이 셋 있었는데,
황정순 그리고 최언순 그리고 다른 한 사람 이름은 잊었습니다. 최언순이 바로 개명하기 전 최은희입니다.
최은희는 스타로서 자부심이 강하고 배우로서 욕심이 많았지만, 속으로는 보수적인 여인이고
세상을 아직 잘 몰랐습니다. 악극단계에서 이 세 여배우는 굉장히 피튀기는 경쟁을 불태웠습니다.
(최은희는 아주 스무스하게 영화판으로 나아간 반면, 황정순은 처음에는 영화판에 들어와서 무척 곤욕을 치뤘습니다. 적응 못한 수준이 아니라, 욕을 먹은 수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명품조연이 됩니다.
황정순이 연기를 엄청 잘하는 대가급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주연을 맡으면 존재감히 흐릿해집니다.
반대로 최은희는 주연을 맡으면 본인이 확 살면서 영화에 아우라를 부여합니다. 주연이 적합한 사람은 따로 있나 봅니다.)
최은희는 처음 출연한 작품에서 조연을 했을 뿐, 그 다음부터는 주연만 했을 정도로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7세의 최은희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영화가 최고걸작으로 뽑혀나와서 프랑스에서까지 상영될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당시 신성일이 이 영화를 보고, 배우 최은희를 엄청 존경하고 숭배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육이오가 터지고, 최은희는 북한군에게 다른 배우들과 함께 끌려가게 됩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혼자 도망치고요. 가만히 있다가는 북한까지 끌려갈 지경이라
최은희는 도망을 칠 생각을 합니다. 같이 끌려가던 김승호에게 도망가자고 했더니,
김승호는 펄쩍 뛰면서 위험하다고 말립니다. 그런데, 그날밤, 김승호는 혼자 도망치고, 최은희는
섭섭함을 느낍니다.
최은희도 북한군으로부터 탈출했는데, 국군을 만났다가 강간을 당합니다.
(늘 자기는 북한군에게 강간당했다고 말했는데, 죽기 전 국군에게 강간당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것은 최은희에게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뒤로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중에 신상옥감독과 이혼하게 된 이유도, 최은희가 임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나 이것이 괴로웠는지,
나중에 신상옥감독이 오수미와 바람이 나서 애를 낳고 들어오자,
애를 보고 화가 나기는 커녕, 오히려 눈물이 왈칵 나며 안아보고 싶더라고 했습니다.
최은희는 다시 악극단과 영화계를 넘나들며 스타로 활동합니다.
그런데, 젊은 영화 조감독이 최은희에게 빠져서 뒤를 쫓아다닙니다. 최은희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둘 사이에 결정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하도 굶어 기력이 빠진 최은희가 연기 도중 쓰러져 졸도하게 되고,
이를 본 신상옥감독이 이때가 기회다 하는 생각으로 업고 병원에 데려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은희와 신상옥감독이 사귀게 됩니다.
그런데, 최은희는 이미 조명감독 남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혼자 북한군에게 최은희를 남겨두고 도망간 뒤, 최은희는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최은희의 아버지도 사위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딸이 겪은 그 고초를 생각하면, 사위라는 사람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최은희와 신상옥은 달밤에 해변을 거닐며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아무튼 최은희가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추억하는 순간을 보냈습니다. 최은희와 신상옥에게도 20대가 있었고, 인생이 설레임과 꿈으로 가득 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둘은 어찌어찌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상옥감독은 야심만만하게 일생을 건
주사위를 던집니다.
신필름을 설립해서, 최은희를 주연으로 해서 춘향전 영화를 만듭니다. 자신의 능력과 최은희의 스타파워를
이용해서 승부를 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다른 커플도 춘향전 영화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영화계의 지존자리를 두고 두 젊은 감독들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것입니다.
둘 중 하나는 패배할 것이고, 패배한 쪽은 나락으로 빠질 것입니다.
바로 멜로드라마의 거장 홍성기감독 그리고 그의 아내였던 무서운 아이 김지미였습니다.
굉장한 미모에다가 아직 어렸던 김지미. 야심만만하지만 아직은 성과를 내지 못한
신상옥감독에 스타이지만 이제는 원숙한 나이였던 최은희.
승패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신상옥감독은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반면, 홍성기감독은
멜로드라마의 히트작들을 내고 벌써 멜로드라마의 거장이라는 소리를 듣던 참이었습니다.
신상옥은 김진규를 이몽룡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김진규나 최은희나 "이 나이에 무슨 이몽룡과 성춘향이냐?"하면서 떨떠름해 했습니다. (김진규는 부인에게
"이렇게 늙은 이몽룡도 있냐?"하고 말했습니다. "춘향이는 왜 또 그렇게 기골이 장대한 거야?"
하지만, 대배우답게 훌륭한 연기를 펼쳐서 아주 인상적인 이몽룡을 만들어냈습니다. 나이가 생각나지 않게끔요.)
최은희는 모든 것을 걸고 도박하듯 거창한 일을 벌이는 남편이 걱정되었습니다.
최은희는 악몽에 시달리게 됩니다. 풀을 뽑았더니, 그것이 누군가의 머리였고,
그대로 쭈욱 뽑혀나온 여자가 휴우하고 한숨을 쉬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최은희는 걱정되어서 어머니에게 말해서 굿을 합니다. 신상옥이 그런 것이 질색이라서,
그가 영화를 찍고 있는 도중에 몰래 집에 와서 굿을 합니다.
그러자, 그날밤 좋은 꿈을 꿉니다. 누군가 새끼돼지떼를 끌고 시냇물을 지나가려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최은희는 자기가 돼지새끼들을 안아다가 시냇물을 건네 주었습니다. 돼지꿈이었습니다.
신상옥-최은희-김진규의 춘향전은 엄청난 히트를 칩니다.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영화판의 거인으로 성장합니다.
홍성기는 망해서, 김지미로부터 이혼도 당하고, 이후 영화판에서 쓸쓸하게 살다가 갑니다.
홍성기의 춘향전도 우수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상옥의 작품이 히트치고 이긴 것은
최은희의 스타파워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필름이 성공해서 일세를 풍미하게 된 데에는,
신상옥감독의 거장으로서의 능력과 최은희의 스타파워가 시너지를 발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최은희는 신상옥감독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예술적 동지로서 함께 예술작업을 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나중에 신상옥감독과 이혼할 때도, '이젠 그와 영화를 만들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고 했습니다.
신상옥감독의 뮤즈는 최은희였고, 최은희는 신상옥감독의 주연자리를 도맡음으로써,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되지 않는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때 최은희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스타파워와 훌륭한 연기 그리고 거장인 남편과의 협업 등 영화계에 당당히 군림할 만했습니다.
신상옥감독으로서도 대배우 최은희가 아내인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심초에 나오는 현숙하고 우아하지만 우뷰부단한 미망인,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에서 보여준 세련된 심리묘사, 지옥화에서 보여준 마릴린 먼로풍의 섹스어필 팜므파탈, 로맨스 그레이에 나오는 입이 거친 창녀, 열녀문에 나오는 수절하는 마님, 민며느리에서 보여준 발랄하고 코믹한 처녀연기, 상록수에 나오는 농촌계몽에 생명을 바치는 이상주의자, 춘향전에서 보여준 우아하고 지조 높은 미녀 춘향이, 서울의 지붕밑에서 보여준 딸부잣집 발랄한 장녀 등 못해내는 역할이 없었습니다. 다 걸작들이고, 주연을 맡은 최은희의 대가급 원숙한 연기가 돋보입니다. 최은희는 등장하는 영화마다 아우라를 부여했습니다. 신상옥감독 영화가 걸작들인 것도, 주연배우 최은희의 기여가 큽니다.
신필름에서 최은희는 파워를 휘두르게 됩니다. 여러 가지를 들어보면, 신필름에서 이인자로 남들을 위압하던 것은
사실 같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의 원천은, 단지 최은희가 신상옥감독의 아내였기 때문이 아니라, 최은희가 대배우이자 간판스타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최은희는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모두 감독으로서 비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남자로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능숙하게 여자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보수적인 여인었던 지라, 영화에서 그리는 여자주인공은 모두
이런 식이었습니다. 거장이었던 남편 신상옥은, 아내의 영화가 걸작이라고 기자 앞에서 단언했습니다. 거만하고 늘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에 찬 신상옥감독이 아내의 영화에 극찬을 한 것입니다. 그건 제가 보아도 그렇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세 편하고는 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신필름에 입사한 신성일은, 자기가 존경하는 최은희를 감히 보지도 못할 정도로 존경했습니다. 최은희는 전도유망한 신성일을 총애했습니다. 신상옥은 신성일에게 이상할 정도로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아내가 너무 신성일을 총애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하고 뒷담화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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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외국같은 곳에서는 과거인물을 가지고 영화를 많이 만드는데요, 오슨 웰즈가 시민 케인을 만들 때 에피소드로 영화를 만드는 등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영화가 드문 것 같습니다. 최은희나 신상옥감독 정도면 그런 영화가 나올 법한데요. 신상옥감독이 진짜 이야기가 많은 사람입니다.
상상하는 모든게 가능했던 시대죠
좋은것도 나쁜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