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이질적인 고질라 <고질라 싱귤러포인트> 후기
넷플릭스 고질라 애니메이션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행성포식자>의 실망감은 프랑스의 5성급 호텔 주방장이 직접 만든 최고의 디저트에게서 호두과자 맛밖에 나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보다 더했습니다
마치 평소 팬이었던 AV배우가 신작을 냈는데 야동의 70%가 인터뷰고 나머지 보고 싶었던 부분이 전체의 30%밖에 되지 않았을때의 실망감이랄까요?(딱히 제 얘기는 아닙니다)
차라리 그 옆에 있는 마이리틀포니를 봐야한다고 했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마이리틀포니도 봤어요
솔직히 5세대 극장판이 4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이냐 하면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행성포식자>와 비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재밌는 작품이거든요
고질라 싱귤러포인트(이하 고질라 SP)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또 다른 고질라 시리즈의 애니메이션으로 괴수행성 삼부작이 대부분 3D 모델링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것과 반대로 TV시리즈로 기획되었으며 디지털2D작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역사상 가장 이질적인 고질라 시리즈입니다
어느날 동네 공장에 불과한 오타키 팩토리에서 정체불명의 신호가 잡혀 공장에서 일하는 천재적 실력을 가진 기술자 아라카와 윤이 이를 조사하러 나옵니다
이 신호는 지구 관리국 미사키오쿠 저택에서 수신되고 있었으며 이를 조사하기 위해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 카미노 메이가 찾아옵니다
신호가 수신된 뒤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공룡의 형상을 가진 정체불명의 괴수들이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허나 이를 조사하면 조사할 수록 단순한 괴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절망적인 사실이 드러나고 이 모든 것들의 대한 해답은 수신되는 신호인 인도의 어느 자장가에 있습니다
고질라를 비롯한 여러 원작의 괴수들이 등장하고 괴수물로서의 성격이 짙지만 사실 따지고 보다면 괴수물이라기 보단 하드SF에 더 가깝습니다
하드SF의 특징에 대해서 열거해볼까요?
등장인물들이 안경을 쓴 지적인 캐릭터부터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락 뮤직을 듣는 것처럼 보이는 양아치마저 과학에 대한 박사학위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뭔가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이 다급해지면서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과학과 수학에 대한 용어를 기관총처럼 남발해서 공상과학을 싫어한다면 대화 따라가기가 힘들죠
이 작품이 정확하게 그런 작품입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 시공간에 대한 가설, MD5 해시함수, AI 등 문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순도 99% 이과들의 언어로 작품을 전개해나갑니다
그리고 스케일은 이야기가 전개해나갈 수록 대책없을 정도로 커지고 또 커집니다
일개 시골동네에서 일어나는 소동에 불과했던 사건이 점점 규모를 늘려나가서 전국으로 전개되고, 더 늘려나가 전 세계로, 거기서 더 늘려나가 우주 그 자체로 넘어갑니다
이는 굉장한 호불호 요소입니다
이렇게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이과의 언어를 남발하는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이해 그 자체를 그만두고 그냥 지루할뿐인 작품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래도 하드SF물로선 친절한 편입니다
어려운 부분은 세부적인 스토리로 치워두고 커다란 틀은 비교적 알기 쉽게 해놨거든요
세부적인 면으로 넘어가자면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현실 세계의 과학법칙에 위배되는 신비의 물질과 미래에서 올 메시지를 암시하며 자취를 감춘 박사가 남긴 암호 등 여러가지 어려운 부분들로 가득합니다만
커다란 틀로 보자면 세계 곳곳에 괴수가 등장하며 오타키 팩토리에서 제트 쟈가 라는 로봇으로 대항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카미노 메이가 어느 곳으로 가야한다는 쉬운 전개로 나갑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강 큰 틀의 이해는 시켜주는 가이드가 있지만 세부적인 면은 튜토리얼 없는 게임보다 불친절하달까요
캐릭터는 흥미롭다기 보단 귀여워서 애정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본작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는 커다란 활약을 한 페로2의 귀여움은 어려운 언어로 가득한 이 작품을 붙들고 있을 또 다른 이유로도 작용합니다
다만 거기서 끝이에요
이 작품에서 생각나는 캐릭터는 페로2와 카미노 메이뿐입니다
굵직한 활약을 했던 아라카와 윤, 오타키 고로, BB, 리 구이잉 등 여러가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건 그 둘 뿐이에요
캐릭터가 너무 많은 것도 아니고 활약이 적은 것도 아닙니다만 이 캐릭터들을 기억할만한 오리지날리티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래서인지 윤과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그 녀석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캐릭터에 대해 얘기가 나왔으니 또 하나 불만스러운 점은 바로 괴수들의 디자인입니다
제가 본 최악의 고질라 디자인이에요
위풍당당하거나, 경외심이 들거나, 또는 징그럽거나 어찌 생겼건 컨셉 하나만큼은 제대로 챙기는 디자인을 가졌었던 고질라는 징그러운 것도 아니고 위풍당당한 것도 아닌 어중간할 뿐이라서 그저 못생겼을 뿐이고
라돈은 동네 참새가 되어버렸어요
그나마 매섭게 볼만한 디자인을 한 안기라스는 등장시간이 너무 짧고요
세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사투에 너무 힘을 쓰다보니 괴수들이 스토리에 겉도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설정상으로도 그렇고 작중 설명으로도 그렇고 정말 답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괴수인데도 그만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큽니다
여러모로 할말이 많은 작품이지만 적어도 <괴수행성 삼부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후속작이 기대되기도 하고 말이죠
저 역시 이정도로 이과스러운 작품은 오랜만이라서 간만에 즐거운 SF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특이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으나 정반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당황스러운 신선함"
스누P
추천인 4
댓글 4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뭐랄까... 용감한 작품이었습니다. 요즘 영화 애니 할 거 없이 모두 쉬운 길로만 가려고하는데, 이 애니는 하드SF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이를 포기하지않고 끗꿋하게 가더군요. 따라가기 어려울거 같지만 예상외로 당의정이 잘 입혀져있어서, 결과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없고, 보다보면 '문과인 내가 이걸 다 이해하고 있네?' 이런 지적 쾌감마저 듭니다.
일본 애니의 고질병인 모에와 오버스런 보이스 액팅도 적고, 주인공 남녀 모두 연구밖에 모르는 너드들이라 일본 특유의 쓸데없는 갬성 따위는 싹 날리고 진지한 프로페셔널 캐릭터로 만든 것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인물은 2D로 그려서, 보는데 위화감도 적더군요.(넷플릭스산 애니 태반이 인물을 3D로 만드는데 이게 감정묘사같은덴 쥐약이더군요. 얼마전 공개된 넷플 가메라의 인물 3D모델링은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쓰레기입니다. )
하여간 첫 넷플 고질라 3부작의 바닥을 치고들어가는 퀄리티에 토호가 직접 관리해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넷플 애니중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뽑아냈다고 봅니다. 시즌2가 기다려지는, 얼마 안되는 희귀한 넷플 애니입니다.
(그리고 전 이쪽 괴수 디자인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에반게리온처럼 폭주해버린 행성포식자도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