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xic avenger (1985) 약 빨고 만든 영화. 스포일러 있음.
잔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트로마영화사라고
Z급 호러영화를 만든 영화사가 있다. 완성도 그리고 특수효과의 사실성같은 것은
애초에 신경도 안 쓴다고 대놓고 선언하는 영화사다. 그렇다고 심형래의 용가리같은 영화를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제작자 로이드 카우프먼은 예일대 출신의 엘리트다.
사실 B급도 못되는 Z급영화들은 미국영화에 계속 있어 왔다. 그중 많은 것들이
포르노들이다. 하지만 포르노들이라고 무시해선 안된다. 나름대로 소재나 주제 그리고 구성면에서
뭔가 해 볼려고 다들 노력한다. 배우들도 연기를 해 보려고 애를 쓴다.
초현실주의 영화, 멜로드라마, 시대극, SF영화들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트로마영화사는 이런 Z급영화들을 나름 주류로 올려놓은 영화사다.
정말 대놓고 허접하다. 하지만, 허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능력이 안되서 허접한 것이 아니다.
"아, 몰라. 우리 허접하게 만들 거야. 이거 싫으면 우리 영화가 맞지 않는 거니까, 딴 데로 가." 이런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로이드 카우프먼은 제2의 에드 우드인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굉장한 힘이 있다.
세상에 추한 것, 못난 것, 악한 것, 잔인한 것 다 모아 놓을 용기가 있었다.
남들이 이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뛰어넘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사람의 팔을 끓는 기름 속에 넣어서 후라이드 손을 만드는가 하면, 얼굴을 믹서기에 넣어 갈아버리기도 하고,
뜨거운 오븐에 사람을 밀어넣어 구워버리기도 한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놓기도 한다.
허접한 특수효과. 너무 허접해서 이런 잔인한 장면들을 보아도 실소가 나올 정도이지만,
이 영화들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힘을 가졌다. 사실 무덤덤하게 잘 만든 영화들보다는 이런 영화가 더
낫다.
사실 그의 영화는 정치적이다. 무정부주의적이고 권력에 저항적이지만, 권력에 지배받는 민중에게도 저항한다.
폭력이 필요한 왜곡된 사회에 대해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지만, 이 폭력을 혐오스럽게 그린다.
권력자는 권력을 가지고 민중을 콘트롤하고 지배하려 하지만, 민중은 자기들보다 더 약한 자를
괴롭힘으로써 쾌락을 얻는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인물들은 장애인, 노약자,
평범한 사람들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탓에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 식물들이다. 이런 방향성을 가진 영화이기에,
이 영화는 그 무엇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지만.
비관주의가 이렇게 철저하다면 그 또한 하나의 훌륭한 풍경일 것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
인간이 만들어 낸 오염물질로 죽어가는 지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체면 상 지나가는 이야기로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환경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일 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어느 헬스클럽이 보여진다.
남녀가 모여서 운동을 하고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다. 자기 팔뚝을 집어보더니, 지방질이 조금
생겼다고 사색이 되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자기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남들이 하면 그대로 따라하는 사람도 있다. 1980년대 미국사회의 축소판인가?
거기에서 무시 받는 좀 모자란 청소부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이지메하다가 오염물질이 바글거리는 통 안에 빠지게 한다.
괴로워하는 그를 쫓아와 둘러싸고 비웃는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비웃음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말이다.
이들은 권력자들도 아니고, 헬스클럽에서 남들이 하는 것은 생각 없이 따라하는 민중들이다. 잔인하기로는
권력자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청소부의 얼굴은 줄줄 녹아 흘러내린다. 그는 흉하게 녹아 내린 얼굴을 가진 toxic avenger 가 된다.
대신, 그는 초인적인 힘과 어떤 물리적 충격에도 끄떡 없는 몸을 가진다 (오염물질에 빠진다고 초인이 되느냐 하고 묻지 말자. 그런 궁금증이 든다면, 얼른 다른 영화를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악에 맞서서 더 큰 악과 잔인함으로 그들을 기름에 튀기고 팔을 뽑아버리고
오븐에 산 채로 넣어 구워버리고 얼굴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죽인다.
기존의 자경단영화와 비교하면 수위가 엄청 높다. toxic avenger는 장님인 여자를 구해주면서
그녀와 사귀게 된다. 얼굴이 줄줄 녹아버린 괴물과 장님 -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들은 폐차장
쓰레기더미 곁에 신혼집을 차린다. 여자가 사는 버려진 트레일러가 그들의 낙원이다.
"지금부터 네 귀를 하나씩 잘라줄께"
그런데, 카우프먼은 이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쓰레기더미 곁에 사는 그들은 루저들이다.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사는, 기형아와 장님이다.
앞으로도 무엇이 나아질 가망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toxic avnger는 불쌍한 프랑켄쉬타인의 괴물이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쾌락을 위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어느 평범한 여자를 죽였는데, 우연히도 그녀가 범죄조직의 두목이어서, 오히려 찬양을 받은 일이 있었다.
언젠가 어느순간에, 그는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의 영화는 속이 비어서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성찰이 있다.
이 영화는 단단한 뼈대에 의해 저질폭력과 허접한 특수효과가 에너지를 얻어 폭발한다.
toxic avenger가 이런 에너지와 비관주의를 얻은 데에는 당시 상황도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을 압도하고, 미국은 패배주의와 보수주의에 빠져 있던 시절.
끝없이 악의적인 이 영화의 비관주의는 시대로부터 생명과 에너지를 얻었을 것 같다.
추천인 5
댓글 6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