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스포][리뷰] 서울의 봄 - 군인들이 주연인 정치 스릴러가 실재 역사라면?
[서울의 봄]을 봤습니다.
12.12 쿠테타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과 김성수 감독 작품이라는 점
아마도 이 두 요소가 이 영화의 성격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일 겁니다.
실재 현대사의 순간을 묘사한다는 부분에서 영화는 기록되고 증언된 역사를 토대로
비어있는 순간순간들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캐릭터들은 사실보다 미화되거나 반대로 멍청하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 해당 사건을 어떻게 봐야할지 작가의 생각은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개인적으론 의도와 달리 전 씨가 미화되거나 아니면 억지로 우스꽝스럽게 그려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는 건 아닌가
양가적인 불안이 있었는데 감독과 배우가 호흡을 맞춰가며 아주 절묘하게 캐릭터를 구축합니다.
실재로야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진행되는 순간 만큼은 두광의 행동이나 판단 하나하나가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극의 긴장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야심가이자
사내들 가운데서 언제나 머리가 되고 싶어하는 보스기질
세치 혀와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으며 시전하는 가스라이팅
그런 와중에 위기의 순간마다 보이는 교활함과 졸렬함까지
다채로우면서도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전 씨를 만들어냈어요.
물론 이를 위하여 그의 측과 상대측 상당수의 능력치를 하향평준화 한 부분은 있지만
역사를 보면 영화의 모습들에서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황정민의 전두광과 대척점에 서게되는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상대적으로 심심합니다.
그는 평시에 인정많고 합리적이며 전시에는 직접 최전선에 뛰어드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군인이자 지휘관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제는 밈으로 더 익숙한 김기현 배우의 장포스(장태완)과는 또 다른 모습인데
정우성이 열연을 하고 울컥하게 하는 순간들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극중 캐릭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대가 너무 화려하고 흥미로운 인물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사람들이 언제나 자리를 지키며 시스템을 지켜내곤 하니까요.
김성수 감독 작품이란 측면에선 적지 않은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 상당수를 좋아합니다만 데뷔 시절부터 따라붙던 '스타일리쉬'나 '폭력'이란 키워드가
이번 영화의 성격과 자칫 어긋나게 발현될 경우엔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황정민과 정우성이 (그리고 상당수 조연들도) 함께했던 전작 [아수라]는 그러한 감독의 특징을 살리면서
나름의 성취를 이루긴 했지만, 현대사의 비극을 그런 방식으로 재현한다면 반발감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감독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인지 매우 정석적인 연출과 화면을 유지합니다.
몇 번의 총격전들도 기교를 부리거나 늘이지 않고 건조하게 묘사한 점이 좋았습니다.
후반의 몇 개 감정신들은 살짝 아쉬웠는데 그걸 넣지 않거나 다른 식으로 묘사하는 게 답이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태신이 마지막 전두광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목도리가 벗겨져 바람에 날아가거나 하는 장면 없어서 다행....
시사회 입소문처럼 매우 우직하고 몰입감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다만 스피디한 편집과 쏟아지듯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역사나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은 이야기를 쫓아가기도 힘들 듯한 점은
흥행에 있어 살짝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흔히 말하는 '남자영화'라는 점 역시 일정부분 장애물이 되겠네요
전씨와 하나회의 분위기 자체가 딱 그런 지경이었던 터라 영화의 순간순간마다
'인의 없는...' 시리즈 같은 60-70년대 일본 야쿠자 영화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좋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끝맛은 역시 씁슬할 수밖에 없네요....
+
이제 몇몇 영화들 마라톤으로 보면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섭렵할 수 있겠군요.
[킹 메이커] - [남산의 부장들] - [서울의 봄] - [변호인] - [택시 운전사] - [1987]
대충 이 정도가 당장 생각나는데 찾아보면 사이사이를 더 채울 수 있겠죠.
++
정병주 사령관과 김오랑 소령에 관한 이야기는 어렴풋이 들은 외에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이전까진 생일잔치 작전 3인 중 하나라는 정도만 알았어요)
영화로 재연하니 '정말 저랬다고 너무 과장했네' 싶을 만큼 상상하기 힘든 결기더군요.
더불어 사건 이후의 말로에 대해 알아보고 더욱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
안내상, 김의성... 운동권 출신(혹은 언저리)에다 현재도 정치적 입장이 유지되는 분들이
영화에선 자신들 탄압하던 상대방 역할을 능청맞게 해내시는 거 보면 대단하다 싶어요
문성근, 우현 배우도 그렇고 여러 차례 비슷한 역할을 맡은 거 보면 이젠 즐기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그들을 제일 잘 알면서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는 입장이기에 일종의 책임감 같은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죠)
추천인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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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역사여서 마음 편하게 개봉 전 리뷰들 읽고 있습니다.ㅋ
야쿠자 집단 같은 하나회였군요.
나쁜 욕망으로 뭉치는 집단은 결국 다 비슷해지는 것인지.
김오랑 소령 얘긴 제5공화국 드라마 보면서... 저런 분들도 계셨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로 처음 아셨으면 더욱 놀라셨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