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재개봉 상영회 및 박찬욱 감독 GV 간략후기

오늘 회식 자리가 있을 줄 알고 <더 폰> 시사회는 응모도 하지 않았다가
일정이 공백이 생기면서 운좋게 <공동경비구역 JSA> 재개봉 기념 상영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 수퍼플렉스G관에서의 돌비 애트모스 + 4K 상영에 박찬욱 감독의 GV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15년 전 개봉 당시 부산의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생생한데
15년 뒤 이렇게 거대한 스크린에서 한층 선명해진 화질로 영화를 다시 만나니 무척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현재와 시간적 격차가 크지 않은 지점에 놓여 있는 듯 했던 영화가 큰 스크린에 나타나니
새삼 15년의 간격이 뚜렷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날렵한 외모의 송강호 배우, 풋풋한 이병헌 배우, 한창 리즈시절을 지나던 이영애 배우,
파릇파릇한 신하균 배우, 통통한 외모의 김태우 배우까지. 배우들의 얼굴이 세월을 가장 잘 말해주었습니다.
좋은 영화는 15년이 지나 다시 보아도 촌스러움을 느낄 수 없고 재미도 식지 않더군요.
무척 유명한 영화고 개봉 이후 TV에서도 몇 번을 틀어줬을텐데 처음 보듯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런 장면이 있었던가 새로웠던 장면도 있었고, 표현수위가 정말 저 정도였던가 싶은 장면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꽤 튀는 영화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새삼 보니 튄다기보다 박찬욱 감독의 이후 스타일과 오히려 여러 부분에서 연결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이후 GV 시간에 박찬욱 감독이 직접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박찬욱 감독과의 GV가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의 진행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감독님이 워낙 성심성의껏 말씀해주셔서 무척 알찬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기록은 하지 못하고 <공동경비구역 JSA>와 관련된 부분들 위주로 기록하였습니다.
주성철 : 잘 알려졌다시피 앞서 만들었던 <달은... 해가 꾸는 꿈>, <3인조>가 모두 흥행에 실패한 후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하게 됐는데, 영화를 연출하게 된 배경은?
박찬욱 : 당시 절친 모임의 일원이었던 음악감독 조영욱의 추천으로 명필름과 만나게 되었다. (조 감독은 그 전에 명필름에서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접속>의 음악을 맡았었다.) 명필름에서 준비한 시나리오가 있냐고 묻기에 몇 가지를 제안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그 시나리오들이 후에 <복수는 나의 것>, <박쥐>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래서 내가 명필름 측이 준비하고 있는 건 없느냐 물었는데, 그 때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소설(박상연 작)을 알려주었다. 내용을 들으니 남북 군사분계선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교전에 대한 미스터리라더라. 미스터리는 자신 있다 하며 무조건 시켜달라고 했다. 조영욱 감독이 무조건 자신 있다, 시켜달라 하라고 하기도 했고. 촬영하는 내내 명필름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이전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비주류, 반골 정서라는 평가도 받았던 지라 이번엔 말 잘 듣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고, 명필름이 대중의 기호를 잘 읽는 곳이라 판단해 의견을 귀기울여 들으려 했다. 다행히 촬영하는 동안 충돌 없이 매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주성철 :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인생에도, 한국영화 산업에도,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 산업에도 큰 전환점이 됐을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유명한데,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도 '내가 본 최고의 라스트신'이라고 극찬했으니 말이다. 라스트신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박찬욱 : 사실 예술가로서 완벽히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들어간 장면이다.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 뭘 또 보여준다는 게 사족같고 내키지 않았었던 게 사실이다. 영화 중간에 판문점 관광객들에게 국가보안법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의 배경 또는 전제가 되는 이 코믹하기까지 한 기막히 ㄴ현실을 우리가 아닌 외국인의 입으로 들려주면 더욱 그 부조리함이 와 닿을 것 같았다. 그래서 꼭 넣고 싶은 장면이었는데, 드라마 전개에 필수적인 장면이 아니기에 최종 편집 과정에서 또 살아남긴 힘든 장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누구도 빼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이 장면에서 출발한 엔딩 장면인 것이다. 잔머리를 굴린 거지.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가끔 이런 짓도 해야 한다.
주성철 : 이후 여러 영화에서 함께 작업할 송강호 배우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의미깊은 영화일 것이다. 그가 연기한 북한군의 이미지가 향후 한국영화 속 북한군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용의자>의 공유 등 대부분의 북한군 이미지가 그런 식의 절도 있는 이미지 아닌가. 특히 영화 속 초코파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박찬욱 : 박정희 정권 이후로 북한을 악으로 묘사하는 건 신물나게 봐 왔고, 그런 식의 주입식 교육은 분단문제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 왔다. 북한도 지배층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그걸 다 헤아릴 줄 알아야 통일이 되고 국가안보도 지켜지지 않을까. 북한에도 야수가 아닌 사람이 산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 속 송강호, 신하균처럼 다 착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자존심'이다. 어리석고 한심한 짓을 한다 해도 자존심 하나는 대단하고, 경제적으론 어렵지만 때가 덜 탄 순수함 같은 것. 그런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남북 병사가 조화되어 어울려 노는 장면 또한 장난스런 어린애 같고, 골목에서 노는 동네 친구들 같은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그들의 관계 또한 이웃집 형동생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려 했다. 송강호도 그런 장난기 어리면서도 기대고 싶은 형같은 이미지를 의도했고. 나 역시 송강호보다 한참 형이고 선배임에도 그에게서 형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송강호와 신하균은 술을 다 좋아했고, 반대로 국군병사를 연기했던 이병헌과 김태우는 술을 잘 안마셨다. 그래도 어쨌든 송강호가 그들 중 선배니까 그가 호출하면 그들 남자 넷과 만나서 술을 즐겁게 마셨다. 보통 남자들끼리 모이면 세상 얘기, 여자 얘기 다 할 법도 한데 신기하게 다른 얘기는 안하고 우리가 만들고 있는 영화 얘기만 밤새도록 할 정도로 다 열심이었다.
주성철 : 사실 내가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에 입사하고 첫 현장취재를 나간 영화가 이 영화였는데, 당시 처음으로 취재를 갔을 때 이병헌 배우가 너무나 잘 챙겨줘서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감독님도 무척 진지하게 여러 말씀을 하셔서 이 날 대단한 장면을 찍는구나 싶었는데, 실은 북한군 병사들이 남측의 지뢰 폭파 모습을 멀리서 내다 보는, 가만히 서서 별 것 안하는 장면이었다.
박찬욱 : 신하균은 말이 적고, 내가 설명한 방식 외에 자신이 생각한 방식으로 별 얘기 없이 슥 연기를 보여주는 편이다. 그게 대단히 멋진 장면을 만들어낼 때도 있고, 만족스럽지 않아 테이크를 몇 번 더 갈 때도 있지만. 송강호는 생각이 많아 계속 의견을 나누고 싶어하고, 이병헌도 아이디어가 무척 많아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여러 얘기를 꺼낸다. 그래서 잘못하면 그의 얘기에 혹하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 해석들이 다 그럴 듯 하니까. 김태우는 영화 속 남성식 일병처럼 고민하고 망설이길 잘한다. 이 얘기를 하는 건, 이로 인해 촬영장에서 대화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특히 영화 현장이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나도 동료의 영화 촬영장에 가면 비슷한 장면을 찍고 또 찍는 걸 보면서 '겉보기에 뭔 차이가 있어 저럴까' 싶지만 그게 당사자들한테는 매우 큰 차이로 보인다. 그런 작은 차이들이 모여서 관객들을 감동시키기도 하기에, 만드는 이들은 얘기할 게 많고 영화만들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주성철 : 당시 촬영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야깃거리가 한창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중이던 박찬호 선수 얘기였는데?
박찬욱 : 한번은 송강호와 식사하러 양수리 중국집에 갔는데, 거기서 송강호가 계속 박찬호 경기를 보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직접 하면 되지 왜 남이 하는 걸 굳이 볼까 싶어 이해를 못했었다.
이번에 재개봉 기념으로 선보인 미공개 스틸사진 중에 내가 배를 잡고 웃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게 가만 생각해 보니 이병헌이 최민수 성대모사를 할 때였다. 되게 잘해서 내가 무척 좋아했었다. 실제로 최민수를 만나서 겪은 에피소드를 그가 얘기할 때마다 웃고 또 웃었다.
주성철 : <공동경비구역 JSA>는 보면 볼수록 감독님의 영화세계 속 중대한 작품인 것 같다. 남자주인공이 누워 있는 이미지나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 같이, 이후에 나오는 영화들에서도 나타나는 장면들도 보이고.
박찬욱 : 이 영화를 만들면서 타협했단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했다. 누군가가 억지로 시켜서 넣은 장면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명필름이 잘 받아주기도 했고, 나와 뜻도 잘 맞았다. 이 영화가 나의 다른 작품들과 색깔이 다르다 보니 내 작품세계보다는 명필름의 작품세계에 속한다고 많이 생각하시지만, 주어진 예산과 시간 내에서 내 의지를 확실히 반영해 만든 영화임은 분명하다. 다만, 분단 현실이라는 소재를 장난스럽게 함부로 다루지 않으려는 의식, 소재에 대한 존중은 있었다. 병사들이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와도 감독은 장난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작 당시에는 영화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개봉도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군사정권 아래에서 자라다 보니 명필름의 이은 대표와도 우리 감옥 갈 각오로 영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다른 영화들에 나오는 '이상한 시도'들을 자제한 것이다. 이 영화를 싫어하고 깎아내리려는 세력들이 이념적으론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서 많은 이들이 존중하게 된다면 낮춰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나의 다른 영화는 함부로 하는 사람이 많아도 이 영화는 안 그렇더라.
주성철 : 그 전에 JSA에서 큰 사건도 터지지 않았던가? (JSA 김훈중위 사건)
박찬욱 : 그렇다. 그 사건으로 인해 영화 제작 당시 제작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쳐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감독을 잘 알지 못하고 제작자만 찾다보니, 당시 심재명 대표가 고생많았지 나는 영화 만드느라 정신이 없어 그 사건이 터졌던 줄도 모르고 피곤해서 차에서 자고 있었다.
관객 : 영화를 보면 패닝, 트래킹을 이용한 촬영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의도는?
박찬욱 : 패닝, 트래킹을 많이 사용한 건 남북한 병사들이 하나의 유대를 이루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게 좀 골치 아픈 부분이 있었는데, 카메라가 인물들을 거쳐 이동하다보니 그 동선을 최소화하도록 인물들의 대화를 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객 : 영화가 15년 만에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되는데, 그 소감과 더불어 리마스터링시 감독님이 중요시했던 요소는?
박찬욱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처럼, 영화인들은 대개 대단한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 같은 게 있다. 흔히 영화가 훨씬 오래 가고 두고두고 보는 고전이 된다면서 TV드라마를 무시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고전을 만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자부심도 그런 고전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생길 수 있는데 말이다. 한번 보고 잊혀질 영화보다는 시대현실을 잘 반영한 드라마가 훨씬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100년까지는 몰라도 일단 15년은 버텼다는 점에서 굉장히 명예롭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필름 프린트로만 남아 있고 디지털 상영본이 없었어서, 영화제 같은 곳에서 상영할 때도 필름만 틀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지게 마련이더라. 안습이었다. 타란티노, 봉준호처럼 필름을 좋아하는 감독들도 많지만 나는 촬영은 필름이 좋을지 몰라도 상영은 디지털이 좋다고 생각한다. 노이즈가 없고, 변질되지도 않고, 어두운 환경에서도 잘 나오고. 이 영화의 리마스터링 때는 너무 밝은 장면은 좀 어둡게, 콘트라스트가 너무 두드러지는 부분은 좀 약하게 조정했다. 더불어 당시에는 CG로 처리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번에 처리하기도 했다. 판문점 근무 시 선글라스에 카메라가 비친 장면들이 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부분을 지울 여건이 못됐었는데, 이번에 그걸 지웠다. CG는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게 마치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위안삼았다.
이외에도 신작 <아가씨>에 대한 질문에도 답변해 주셨는데요,
원작과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 '원작 중간에 놀라운 반전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원작을 안보셨음 좋겠다'고 하시면서
영화는 원작 중 1~2부 까지 정도는 비슷하게 흘러가나 그 이후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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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런 정리 너무 감사드려욤 ㅠㅠ

영화잡지 기사급 정리네요 벌써 15년이 됐군요 이 영화가...

gv 가고싶었는데... 잘읽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와.. 정리 정말 잘 봤습니다. 이거 정말 쉬운 게 아닌데..
덕분에 현장에서 직접 얘기 듣는 것 같은 체험 한 듯해요.^^

선추천후 정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