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 곡비] 간략후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첫 작품으로 대만 호러 영화 <곡비>를 보았습니다.
2년 만에 찾은 부천에서 첫 영화로 너무나 강력한 작품을 만나서 이후 작품들을 보다 편하게 볼 수 있겠다 싶네요.
재미나 완성도와 별개로 널리 추천하기가 극히 조심스러운 영화가 더러 있는데, 이 영화가 그런 경우입니다.
호러 영화를 잘 보는 편이지만 호러 마니아까지는 아닌 입장에서 무척이나 가슴 졸이게 보았습니다.
대만 타이베이에 전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감기와 비슷한 증세로 시작하는 이 전염병에 감염되면,
감염자는 좀비식 단순 살인에 국한하지 않고 내재된 가장 강한 욕망을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방식으로 발산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도시는 무정부 상태에 놓이며 생지옥이 되는 가운데, 평범한 하루를 맞이하던 연인 아저(주헌양)와 카이팅(뇌가납)은
각자의 일상을 시작한 사이 끔찍하게 변해버린 도시와 사람들에 맞닥뜨리고 곧 서로에게 닿기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로 몹시 단출하지만 이 영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어떤 이야기와 마주하게 될 것인가보다,
어떤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좀비물에 비해 이 영화가 특히 무서운 것은 감염자들에게서 단순히 인간성을 거세시키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인지할 줄 알고 말도 할 줄 아는 감염자들은 보통(?)의 좀비들처럼 달려들어 타겟을 뜯어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갈구하고 있는 욕망을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 할 수 있도록 가학적이고 폭력적으로 실현합니다.
그처럼 가장 밑바닥에 깔린 욕망에 대한 악마적 집착은, 스스로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분명 알텐데도 결코 멈추지 못하는 욕망의 가장 끔찍한 발현이기에 더더욱 공포심을 유발하죠.
(그래서인지 영화 속 감염자들은 그 모든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는 와중에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참상의 순간들에 집착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탐닉하기보다 때때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공포감을 상쇄시키거나 하진 않고, 그 덕에 영화가 관객보다 서둘러 자극에 도취된다는 인상은 받지 않았습니다.
'곡비'라는 제목은 '통곡할 만큼의 슬픔'을 뜻하고 영제도 'The Sadness(슬픔)'입니다.
더 이상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곡비>는 진보하는 시간과 역행하여 점점 야만적이어가는 인간의 욕망이 진정 '슬픈 것'임을 악취미적으로 꼬집는 듯 합니다.
(인간에 대해 이토록 비관적일 것까지 있겠나 싶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호러 장르에는 어울리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설령 유머를 던진다 해도 유머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매우 짙은 비애감과 절망감으로 인해
영화가 주는 공포감이 마치 관객도 아비규환의 도시에 함께 갇힌 듯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개봉할지 의문이고, 개봉한다 해도 온전히는 어려울 듯 하네요.
추천인 16
댓글 13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고어... 신체훼손의 강도는 정말 소문대로 살벌한 수준인가요?


많지는 않을 수도 있었겠네요.....
내년 CAV라도....혹시 한다면 노려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