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감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11세 소녀 라일리의 환경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아빠 직장 때문에 태어나 지금껏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지요. 샌프란시스코의 차가운 도시 분위기와 허름한 집, 그리고 낙후된 환경은 라일리를 자꾸 우울하게 만듭니다. 라일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머릿 속의 다섯 감정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던 중 라일리의 ‘감점 조절 본부’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납니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감정 중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된 것이지요. 본부에는 ‘버럭’ ‘까칠’ ‘소심’이 남아서 둘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자신의 주된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맙니다. 결국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사라진 라일리는 방황하기 시작하지요. 그동안 ‘기쁨’과 ‘슬픔’은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라일리의 머릿속 여기저기를 여행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 ‘모험’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선사하며,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 감독은 정반대로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입니다. 인간 외부에서 펼쳐지는 주변 환경으로 시선을 돌리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내면을 파고드는 것이지요. 머릿속 세계로 침투한 그는 1) 무수히 많은 ‘기억의 구슬’이 저장되어 있는 장기기억, 2)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어둠의 세계인 ‘기억 쓰레기장’, 3) 잠을 자는 사이 꿈을 만들어 내는 ‘꿈 제작소’ 그리고 4) 생일파티를 한답시고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괴물 삐에로가 잠을 자고 있는 ‘잠재의식의 동굴’ 등을 보여주며, 인간의 내면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다가갑니다.
피트 닥터 감독이 표현한 인간의 머릿속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하게 광활했고, 그만큼 인간의 머리속이 복잡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감독은 여태껏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우면서도 다이나믹한 모험을 펼쳐냅니다. 이로서 인간내면의 탐구는 다소 지루할 거라는 필자의 고정관념을 깨고, 흥미진진한 모험의 끝에는 감동과 함께 ‘기쁨과 슬픔은 하나의 묶음’이라는 감독의 시각이 드러납니다. ‘행복한 삶을 가꾸어 나가자’는 메시지와 ‘슬픔을 극복해나가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넘어 ‘기쁨과 슬픔은 함께 공존하는 한 묶음과도 같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인사이드 아웃>이 ‘단순히 아이들만을 타겟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이미지로 형상화해낸 픽사의 놀라운 상상력입니다. 특히 감정을 의인화한 5개의 캐릭터는 관객으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한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을 잘 잡아서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다섯 캐릭터들은 각자만의 톡톡튀는 매력을 발산하며, 영화에 생명력을 한껏 불어넣었습니다.
감독이 비록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의 5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의인화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각 ‘감정’들이 실제 인간과 같이 복합적인 여러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기쁨(joy)이 ‘망각의 골짜기’에서 회색으로 흉하게 변해버린 ‘기억의 구슬’들을 끌어안고 “난 라일리가 행복하길 원했을 뿐인데”라고 울먹이는 장면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처럼 기쁨은 스스로 슬픈 감정을 느끼면서 차츰 슬픔이라는 감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나아가 ‘기억의 구슬’을 통해 과거 라일리가 슬퍼할 때, 가족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또한 슬픔(sadness)이 가족들을 라일리 곁으로 불러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로서 기쁨(joy)은 슬픔(sadness)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지요. 마침내 슬픔은 라일리에게 있어 필요없는 존재가 아닌, 배척해야 할 존재가 아닌, 라일리의 인격 형성에 정말 중요한 감정 중 하나로 거듭나게 됩니다. ‘슬픔’이에게야말로 라일리의 방황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과거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일부러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을 계획했으나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슬플 때 우는 것 그리고 내가 슬피 울 때 주변에 나를 다독여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한 감정이 없는 삭막한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간접적으로 느끼며, 감정의 소중함을 느끼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피트 닥터 감독은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을 구슬과 구슬의 색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슬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된다는 설정을 스토리의 전제로 삼았지요. 가히 신선한 설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핵심 기억(Core Memory)을 담은 구슬’이 하나의 섬을 만들어나간다는 표현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라일리의 행동에 따라 엉뚱섬, 우정섬, 사랑섬, 하키섬, 가족섬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라일리의 인격이 점차 비뚤어진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었습니다.
픽사는 이번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세상의 모든 추상적인 것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이사와 전학으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쁨이는 라일리로 하여금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요. 그러나 어렸을 적 미네소타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키를 하던 즐거운 추억은 더 이상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 합니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왔고, 더 이상 하키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솟아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마다 라일리의 감정에는 슬픔이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감독은 슬픔이가 ‘핵심 기억 구슬’을 만지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기쁨이는 라일리의 마음에서 슬픔이를 배척하려고 하였고, 슬픔이가 ‘핵심 기억 구슬’을 만질 때마다 이를 견제하였습니다. 이처럼 기쁨(joy)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즐거운 것으로 유지하고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할 때, 결국 라일리는 불행해지고 말지요. 이를 통해 필자는 ‘솔직하지 못한 감정, 조작된 기억이 한 사람의 감정을 마비시키고, 결국 우울함과 불행에 잠기게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감정을 왜곡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며 그 과정에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커가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는 아이가 다시금 행복에 다가서고,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번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라일리의 내면에서 우정섬, 가족섬 등이 예전보다 더 크고 예쁘게 탄생하고, 기억의 구슬 색깔이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감정이 섞인 알록달록한 색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는 장면은 제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쁨(joy)이 라일리의 마음에서 슬픔(sadness)을 배척하려고 했을 때, 그 둘은 ‘감점 조절 본부’에서 떨어져 나왔고, 이로 인해 라일리는 일종의 사춘기를 겪습니다. 그리고 기쁨(joy)이 최대한 빨리 본부로 돌어가려 할 때마다 위기가 닥쳐오지요. 마침내 기쁨(joy)이 슬픔(sadness)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며 한 단계 성장했을 때, 라일리 또한 성숙해집니다. 즉, 감정의 성장이 한 인간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셈이지요. ‘감점 조절 본부’의 조종간이 더 크게 업그레이드된 것 또한 라일리의 성숙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생동감 넘치는 다섯 감정이 펼치는 유쾌하고 발랄한 모험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았고, 삭막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잃어버렸던 감정의 소중함을 문득 깨닫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 때 방황했던 시기와 그 시기를 잘 이겨내서 마침내 어른이 된 저 자신에게도 뿌듯함을 느껴보는 기회를 만들어 준 참으로 값진 영화라 하겠습니다. 부모 관객들의 경우에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급격한 감정 변화와 행동 변화에 대해 일정 부분 수긍하고, 아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공감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 네이버 영화, 구글 이미지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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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한 리뷰 잘 봤습니다.
상당한 편집 능력자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