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포함] 나이트메어앨리-'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로 본 욕망의 서사
저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워낙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이번에 나온 신작은 망설임없이 영화관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판의 미로>를 작은 모니터로 본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제발 가까운 상형관에서 재개봉하기를 바라왔구요.
나이트메어 엘리가 소설 원작과 1940년대에 영화화된 작품도 있다지만, 저는 순전히 기예르모 감독판만을 기준으로 감상을 써보겠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인 줄 알았으나, 영화 본 다음 날 아침 문득 이 영화는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타로 카드를 형상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대놓고 심리분석가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고, 정신분석학의 기초적 이론을 계속 암시하며, 심지어 리리스 박사가 직접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언급하는 장면은 너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정신분석학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삶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타로 카드에서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10번 카드는 인간이 어떻게 발버둥치든 계속 움직이는 수레바퀴 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때는 수레바퀴의 가장 밑바닥에서 괴로워하며, 또 어떤 때는 수레바퀴의 가장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수레바퀴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기고만장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의도하고 쟁취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단지 수레바퀴 위에 올라탄 채 그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갈 뿐입니다. 스탠과 몰리가 회전목마의 움직이는 원판 위에서 춤을 추는 아름다운 장면은 이들이 앞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타고 파멸을 향해가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많은 제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수레바퀴의 여러 자리에 서로 포개져 있습니다. 수레바퀴의 가장 아래쪽에는 생닭을 먹는 기인(이하 ‘기인’)이 있습니다. 이 부랑자도 수레바퀴를 몇 바퀴나 돌며 부침을 겪은 후 마지막에는 바퀴의 가장 아래쪽에 도달한 것이겠지요. 그의 수레는 멈추었으며 가장 밑바닥에서 삶이 마감됩니다.
스탠은 증오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도피하다가 서커스단을 만나는데 최초로 이 기인을 마주하게 됩니다. 스탠은 살인자로서 자신의 삶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고, 이 기인은 스탠에게 또 다른 자아처럼 보여집니다. 마치 스탠이 삶을 한 바퀴 돌아서 기인의 자리로 올것임을 예고하는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스탠이 정확히 기인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폭소를 터뜨리는 것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정확히 한바퀴 돌아서 멈췄음을 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의 많은 인물들의 삶도 이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묘사됩니다. 단지 스탠과 다른 수레바퀴 속의 시간과 공간 상에 있을 뿐이지요. 스탠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헐벗은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은 기인이 동굴에서 웅크린채 ‘이것은 내가 아니야’하며 중얼거리는 모습과 겹쳐집니다. 스탠에게 독심술을 전수해 준 알코올중독자 피트의 삶도 겹쳐집니다. 스탠은 자신의 아버지, 스탠, 기인과 다르면서 또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리리스 박사는 스탠의 정신분석을 하며 스탠에게 아버지와 같은 나이든 남자와 이슈가 있다고 말합니다. 스탠은 이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면서 이들의 길을 답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리리스 박사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묘한 인상을 주지만, 저에게는 조금도 신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비롯한 상류층 인물들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서커스단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뿐입니다. 리리스는 스탠의 독심술쇼에서 그를 보고 자신과 유사한 종류임을 한 눈에 알아봅니다. 리리스는 자신의 삶을 단단히 틀어쥐고 타인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지만, 많은 정신분석가들처럼 취약한 내면을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 속의 검은 구덩이와 오물을 스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퍼내려 합니다. 따라서 스탠의 파멸은 리리스의 간접 파멸이기도 합니다.
스탠의 호구가 된 상류층들은 스탠이 제나와 서커스단에서 했던 조악한 독심술쇼에서 열광하던 관중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스탠의 잔재주에 거액의 재물을 자진해서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리리스의 말처럼 그들은 스탠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꺼이 속고 싶어한 것입니다. 스탠은 자신이 인생을 개척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류층의 자위 도구였을 뿐입니다.
영화는 미국이 2차대전 참전 당시를 배경으로 보여줍니다. 인물 개개인의 운명의 수레바퀴뿐 아니라, 그들을 덮는 더 거대한 수레바퀴를 배경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정점을 향해 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은 양차대전을 거치고 명실상부한 넘버원이 됩니다. 미국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들끓는 욕망을 상징하게 됩니다. 기회의 땅, 풍요의 땅이 되며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자신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싶어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 스탠이 아버지의 시체를 마루 바닥에 묻고 집 전체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불길은 스탠이 과거를 재로 묻고, 새로 태어난 자신의 욕망의 불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국 전체의 총체적 욕망의 불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볼 때 재미있으나 보고나면 바로 잊혀지는 종류의 영화보다, 영화를 보고나서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되는 영화들이 저에게는 더 좋습니다. 마치 2시간이 아니라, 영화 끝난 후에도 24시간 정도 계속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말이죠. 나이트메어 앨리가 그런 영화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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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토로 영화치고는 정말 잔인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