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고백한다 (1961) 스포일러 있음
마스무라 야스조는 매우 흥미로운 감독이다. 이 영화 아내는 고백한다는 말하자면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준비운동같은 영화가 아닐까 한다. 막 폭주하기 전의 준비운동같은 느낌이다. 그의 이후작 - 만지, 눈 먼 짐승같은 영화는 그 변태성, 엽기성 그리고 잔인함에서 극을 달린다. 마스무라 야스조는 일본 영화의 전통 - 형식성, 느린 스피드, 일본 전통 미학 강조 - 등을 적대시한다.
영화 처음부터 아주 새롭다. 영화 처음에 어느 사나이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는 관객을 쏘아보고 있다. 그는 차갑게 카메라를 들어 관객을 찍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180도 틀어서 뒤를 찍는다. 사나이의 뒤에는 법원이 있었고, 어느 여자가 법원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 여자를 찍으러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였던 것이다. 첫장면부터 흥미롭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감독이 어떤 선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화면 가득 얼굴을 채운 사나이가 카메라로 관객들을 찍는가?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당신들 자신의 이야기야"라는 뜻일까?
재판정에 선 여자 아야코는 남편 료키치를 살해한 죄로 재판을 받는다. 그녀는 약대교수인 남편 료키치 그리고 남편을 돕던 제약회사 직원 오사무와 함께 암벽등반을 갔었다. 아야코와 남편은 암벽등반 도중 미끄러져 대롱대롱 매달린다. 오사무 혼자 바위에 붙어 줄을 지탱하지만, 손에서 줄이 미끄러져 피투성이이고, 언제까지 이 줄을 지탱할 지 알 수 없다. 아야코는 줄을 끊어 남편을 추락사시키고 무사히 올라온다.
아야코는 남편 재산을 노리고 그를 살해한 것이다라는 의심 겸 비난을 받는다.
전형적인 법정영화다. 재판 장면 그리고 아야코와 증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장면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아야코와 료키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것이 훌륭하다고 찬사를 받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냥 유려한 정도다. 오늘날 법정영화의 세련된 연출에는 비할 바 못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른 이유에서 걸작인 듯 싶다. 바로 가정을 그리고 멜로드라마를 보여주는 그 강렬함 그리고 집중력이다. 아야코와 료키치의 가정은 모순의 집약체다. 료키치는 아야코를 강간하고 다음 청혼을 한다. 아야코는 료키치의 재산이 탐이 나서 청혼을 수락한다. 아야코는 료키치가 가정을 등한시하고 등산만 하러 밖에 나도는 것을 증오한다. 하지만 사실, 료키치는 아야코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가정이 지옥같아서 밖으로 나돈다.
"만일 모든 여자가 아야코같다면, 아내가 언제 등 뒤에 칼을 꽂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검사의 분노에 찬 비난이, 일본 가정의 허상을 폭로한다.
감독은 법정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야코가 범인인지 아닌지 그 모호함을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아야코는 재판정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비련의 아내를 연기하지만, 재판정 밖에 나오면 자유분방하고 웬지 즐거운 표정이다. 등산을 함께 갔던 제약회사 직원 오사무는 책임감 때문에 아야코와 함께 해주면서 돕는다. 그런데, 아야코는 남편을 살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오사무에게 교태를 흘리며 유혹한다. 그것도 은근히 하는 것이 아니라 육탄공격(?) 수준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섹X를 하는 사이까지 된다. 고지식한 오사무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아야코에게 끌려간다. 감독은 아야코가 범인인지 아닌지 아리송하게 만들 생각도 없다. 거의 90%로 아야코는 남편을 자기 목적을 위해 살해한 범인이다.
아야코는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열과 사랑이 너무 많아서, 거기 휩쓸려 폭주한 것이다.
감독은 이런 아야코를 찬양한다. 아야코의 모순되고 감옥같은 가정은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가정을 파괴하고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살해하고, 남편 사망보험금으로 오사무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아야코의 폭주는, 사회의 도덕율과 관슴과 법을 파괴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다.
법정영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말이다.
진실을 안 오사무는 아야코에게 진저리를 치며 그녀를 버린다. 아야코는 이 때문에 절망하여 자살한다.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오사무를 영원히 잃었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자살한 것이다. 자기가 죽인 남편에 대한 죄책감같은 것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나와 오사무 사이에 끼어서 내 사랑을 방해했으니 그 이기적인 남자는 죽어도 싸"라는 생각을 최후까지 갖고 갔을 것이다. 이 철저한 이기주의, 이 철저한 악 - 이것이
이 영화 감독이 제시하고 찬양하는 인간형이다.
이 영화는 아주 잘 만든 멜로드라마다. 여자의 심리가 아주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으며, 아야코와
오사무 간 형성되는 사랑의 관계 등이 걸작수준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 내면은 멜로드라마와는 관계가 멀다. 이 영화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주인공의 암흑의 심연을 노려보는 그로테스크하고 폭력적인 만화경같은 세계가 나온다. 바로 만지, 눈 먼 짐승의
세계다.
추천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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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번에도 좋아하는 영화 소개해주셨네요 +_+
욕망을 위해 살고 죽는 아야코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보다보면 아야코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와카오 아야코 배우에게 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