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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의 수정주의 걸작 <흑사회> 분석(장문)

율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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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재작년에 학위 논문을 위해 작성한 '두기봉 감독론'을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여러 한계가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 글이지만, 한편으로 제 글을 빌려 두기봉 감독을 익무분들께 꼭 소개를 하고 싶었습니다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순도 높은 액션과 서스펜스를 선보이는 데 장기를 가지신 두기봉 감독이 전성기 때 그렇게 왕성한 창작력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영화 산업이 완전히 몰락해버린 지금은 별다른 작품 활동을 보이지 않아 좀 많이 안타깝습니다

 

글의 주제는 "<흑사회> 시리즈가 홍콩 느와르의 수정주의적인 작품으로서 기존의 홍콩 느와르와 무엇이 다른가"를 중심으로 한 분석이고

깊이가 있는 분석은 아니겠지만 흥미롭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포는 당연히 포함입니다. <흑사회>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두기봉은 홍콩 느와르에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만들어 온 감독이다. 90년대 이후 홍콩 느와르가 몰락했음에도 그는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홍콩 느와르를 만들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미션>(鎗火, 1999)으로 오우삼 이후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되던 홍콩 느와르 장르에 전혀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두기봉은 해외 영화제들로부터 초청받으며 홍콩 느와르의 집대성자라는 평가와 함께 2000년대 홍콩 느와르를 대표하며 발전시킨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두기봉은 상업영화 감독이면서 동시에 작가주의를 아우르는 독특한 위치에 서있다. 그는 영화 제작이 빠른 홍콩 영화산업 시스템 안에서 활동해왔으며 느와르 장르뿐만 아니라 코미디, 멜로,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담긴 영화들은 두 계열로 구분되는데, ‘<니딩 유>(孤男寡女, 2000), <역고산고신년재>(嚦咕嚦咕新年財, 2002)와 같은 상업적인 작품들과 <PTU>(2003), <대사건>(大事件, 2004), <흑사회>(黑社會시리즈(2005~2006, 이하 편의를 위해 <흑사회>로 지칭)와 같은 개인적이면서 작가적인 성향이 짙은 영화로 나뉜다. 이러한 점은 두기봉의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되는데, 이에 대해 감독 역시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상업영화를 찍어야 합니다. 제 이상을 위해서 좋아하는 영화도 찍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상업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제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위해 전형적인 상업영화 연출도 마다하지 않는 자신의 행보를 숨기지 않는다. 그의 행보에 대해서 임대근은 변증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두기봉에 대해 영화를 고립적인 예술이나 완전한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장르를 사용하되, 장르에 매몰되지 않으며 작가를 지향하되 관객을 무시하지 않는 변증법적인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독특한 위치에서 두기봉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누적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고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홍콩 느와르의 정의

 ‘홍콩 느와르는 학술적으로 정의된 단어가 아니며 국제적으로 쓰이는 용어도 아니다. 이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표현이며, 기본적으로는 홍콩에서 제작되었고 홍콩을 배경으로 한 느와르 영화를 뜻한다.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홍콩의 장르영화들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쳤고 한국에서는 ‘1987년부터 10여년 가까이 홍콩영화 붐이 일었다.’ 이소룡과 성룡의 무술영화, 무협영화와 더불어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과 같은 느와르 장르의 영화들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홍콩 느와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홍콩 느와르는 필름 느와르의 암울한 분위기와 홍콩 무협영화의 테크닉을 접목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하위 느와르 장르와 구분된다. 홍콩 느와르는 장르적으로 혼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할리우드에서 발생한 장르영화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홍콩 지역의 특색으로 변주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콩 느와르에는 고전적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 그리고 홍콩의 무협영화와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가 죄다 녹아들어있다’. 홍콩 느와르 영화에 대해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샘 페킨파(David Samuel Peckinpah),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 같은 서구 감독의 영화와 호금전(胡金銓), 장철(張徹)과 같은 홍콩의 원조 감독들의 무협영화가 같이 이야기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홍콩이라는 지역에서 뒤죽박죽 섞인 장르들의 덩어리로서 발전한 갱스터 영화들이 홍콩 느와르로 지칭된다고 볼 수 있다.

 홍콩 느와르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쇠락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아시아 시장의 축소와 중국 반환 등의 정치사회적 이슈가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와중에 장르 영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던 홍콩 영화의 장르적 답습과 반복되는 스타 시스템 등 내부적인 문제도 작용하였다’. 혼란스러운 홍콩 영화계에서 홍콩 느와르도 자기 복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지 못함에 따라 유행처럼 사라졌다.

 

<흑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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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1><흑사회 1> <그림 1-2><흑사회 2>                          

 

3.1.1. 인물들의 가치관

  <흑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인 인물상과 다르다. 가령 홍콩 느와르의 인물들은 선악으로 명확히 나누어지고 현실적인 인물들도 아니다. ‘영웅적 인물은 개념화되고 심지어 신화화된 초상의 인물이며, 성격은 단순하고 애증선악이 일목요연하며, 인물 이미지는 빈약하다. 반면 두기봉 감독은 <흑사회>를 통해 비현실적인 인물을 형상화하는 패턴을 깨고 각 캐릭터에 더욱 현실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흑사회>의 이야기는 홍콩 느와르의 영웅/악당의 명확한 선악구도로부터 출발하기는 하지만, 이내 두기봉은 선악구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캐릭터들을 개념화된 이미지에서 탈피시키고 있다.

 

- 파괴되는 선악구도

 <흑사회>의 삼합회는 형제로 칭해지는 조직원들 상호의 의협심을 중요시한다.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처럼 이 조직도 서로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형제들끼리는 서로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지 않은 형제들은 죽음으로 다스린다는 규칙 내용은 조직의 정신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이는 워뤈신 조직을 유지하게 하는 기초적인 바탕이다. 의리와 믿음이라는 가치는 조직 내부의 수직적인 계급 구조를 합리화하고 그 구조 안에서 조직원들은 계급 상호 간에 예의범절을 갖춘다. 그리고 그것들은 워뤈신 조직의 회장 선거 시스템을 구성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근간이기도 하다. 상호합의된 선거 시스템 하에서 조직은 한 명으로 인해 독점될 수 없다. 회장 후보자들은 선거 기간 동안 경쟁을 거치고 부정한 수단으로 경쟁을 하는 후보는 조직에 의해 처단된다. 회장직은 2년의 임기기간과 개인의 연임이 불가능한 조건을 가지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장기적인 독재는 구조적으로 견제된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견제도 조직원이 서로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규칙에 순응한다는 믿음 하에 작동하는 것이다.

 영화 속 조직의 정신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은 록이라고 볼 수 있다. 록은 회장 후보로서 따이디와 대립 구도를 이루며 조직의 전통적 가치관을 계승하려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회장 자리에 오를 당시 조직의 원로인 당 백부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만큼 예의를 중시하고, 따이디와 대립 구도를 이루면서도 내분을 피하기 위해 따이디를 계속 설득하는 방향을 추구했다. 그는 조직의 내분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차분한 판단력을 가지면서도, 조직의 규칙의 위반한 따이디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로서 포용하려는 관용적이고 이상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록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거나 직접 무기를 들지는 않지만, 소탈한 반영웅으로서의 이미지가 부여된다. 또한 록이 회장 자리에 오르는 데 기여하는 형제이자 부하들인 둥군, 페이게이, 다이타우, 시예쏘우, 지미는 록에 대해 충성심으로 묶여있다. 그들은 정당하게 선거에 의해 선출된 록을 대부라고 칭하며 록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록과 그의 형제들에 반하는 인물로서 물질주의, 권력욕,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서는 따이디로 볼 수 있다. 그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여 조직에서 내분을 일으키려 하는 호전적인 인물이며 당 백부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그에 맞서는 행동을 보이는 등 예의범절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고 값비싼 옷을 입고 다니며 록과 대비되는 인물로 나타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며 조직의 전통적 가치관을 부정한다고 볼 수 있는 그는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인 악당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흑사회> 1편은 록과 따이디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록이 조직의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따이디는 그 공동체 의식에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다른 가치관을 상징하는 개념화된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인 선악구도를 그대로 응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악구도는 이내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록은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 이후로 스스로 변화한다. 따이디와 화합을 하였지만 공동 회장을 제안하던 그를 죽임으로써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형제를 잔인하게 처단한다. 이는 록이 대표하던 가치관을 스스로 파괴함과 동시에 조직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록의 살인행동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이는 록이 개념화되고 평면적인 인물상으로부터 탈피하면서 현실적이며 다층적인 캐릭터로 변모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 혼란스러운 무법지대

 두기봉은 홍콩 느와르에서 신성시되었던 가치를 인물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절하시키고 파괴하게 한다. <흑사회> 2편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소유욕이나 추구하는 목적에 충실하다. 록은 회장직 연임을 추구하고 있고 지미는 자신의 사업을 중국 본토로까지 넓히기 위해 회장직을 목표로 한다. 회장직을 두고 지미와 록 사이에 잔혹한 암투가 벌어지는데 록과 지미는 자신의 목표에 방해가 되는 형제들을 살해한다. 이러한 암투는 그동안 조직에서 중요시되었던 신뢰나 우정 등의 가치를 필요시에만 악용되는 수단으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록이 연임 부탁을 거절하는 당 백부를 죽이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당 백부는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오랫동안 조직이 지향해왔던 가치와 자신의 신념을 일치시킨 인물이며 그 자체로 조직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당 백부의 타살은 조직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두기봉은 인물들을 공동체로 묶거나 공동체가 유지시킨다기보다는 다층적인 인물들을 통해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주변 인물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었던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 영웅과는 달리 <흑사회>의 인물들은 스스로 공동의 대의를 저버림으로써 모두가 악당이 된다. 인물들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각자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다만 이들의 행동은 공동체의 가치관이나 규칙으로 견제되거나 제한되지 못한다. 인물들은 그 규칙을 어겨가고 파괴하면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혼란스러운 무법지대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이러한 개인의 욕망들이 커짐에 따라 누군가의 중재 없이 시종일관 충돌하고 복잡하게 엮이면서 공동체의 전통과 규율의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진다.

 

3.1.2. 시각적 특징

- 범죄 세계의 일상화

 장르는 각자 도상(icon)을 가지고 있다. 도상은 한 장르가 다른 장르들과 차별점을 가지게 하는 역동적인 요소나 반복되는 이미지를 뜻한다. 장르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형성하거나 관객에게 오락적인 충족감을 주는 역할을 하며 더 나아가 장르를 대표하는 관습으로 나타난다. 서부영화의 도상은 주인공의 카우보이 복장이나 사막 등으로 나타나고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는 강한 음영을 가진 도시적 이미지와 팜므파탈 캐릭터 등으로 나타난다. 홍콩 느와르의 도상은 홍콩 밤거리, , 감성적인 남성 주인공, 슬로우 모션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도상들은 장르의 세계관을 압축하고 부호화하며 감성적인 남성성이 주를 이루는 범죄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두기봉은 도상을 변주하면서 기존의 홍콩 느와르와는 다른 시각적인 특징들을 보여주며 홍콩 느와르의 세계관을 재해석하고 있다. <흑사회>에서 홍콩 밤거리는 감성적인 남성들이 낭만을 향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폭력이 은연히 일어나고 냉정한 현실과 유사한 감각을 주는 공간이다. 또한 남성 주인공은 감정을 호소해가며 애잔하게 죽는 인물이 아니라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거나 싸늘하게 죽는 인물이다.

 두기봉은 범죄세계를 일상적인 영역으로 끌어온다. <흑사회>의 인물들은 일상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홍콩 느와르의 인물들은 실력 좋은 킬러이든 폭주족 양아치이던 간에 카리스마를 가지고 멋부림을 허용받음으로써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강하다. 반면에 <흑사회>의 인물들은 다른 홍콩 시민들과 비슷한 복장을 하며 이질감 없이 그들과 섞여들고 있는데 마치 인물들이 실제 홍콩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삼합회의 원로 당 백부는 평소에 강아지를 데리고 거리를 산책하며 록은 저녁 식사를 위한 음식 재료를 시장에서 산다. 그리고 지미는 대학교에서 경제학 수업을 청강한다. 그들은 이미 홍콩 사회의 일원으로 환원되고 있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말과 행동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흑사회>의 인물들은 평범한 인간이며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산다.’

 <흑사회>에서 총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전복적이다. 홍콩 느와르에서는 총이 주된 무기로 사용되지만 사실 총기 규제가 적용되는 홍콩 사회에서 총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홍콩 느와르 속 총은 평범한 홍콩 시민의 일상과 동떨어진 세계를 상징하는 무기로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흑사회>에서는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무기로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칼이나 몽둥이 같은 단순한 물건이다. 이러한 무기들은 폭력의 세계를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가까운 것으로 더욱 밀착시킨다.

 이러한 원시적인 도구로 벌어지는 폭력은 일종의 운명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장성세하지 않는 일상 속의 인물들이 일상적이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도구를 통해 벌이는 폭력 행위를 통해 두기봉은 운명 또는 죽음의 무상함을 드러낸다.’ 홍콩 느와르의 영웅적 인물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비장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과 다르게 <흑사회>의 인물들의 죽음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일상적인 세계에서 죽음은 손쉽게 일어나며 그 죽음은 무감각하게 그려진다.

 

- 필름 느와르적 화면

 ‘필름 느와르는 프랑스어로 검은 영화라는 뜻으로 폭력적인 범죄와 타락의 도시 세계를 그린 영화를 지칭한다.’ 고전적인 필름 느와르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짓는 건 어두움을 표현하는 시각적 스타일이다. 로우 키(low-key), 콘트라스트가 강한 조명, 어두운 야간장면 등은 흑백 영상을 바탕으로 발전한 필름 느와르의 고유한 특징이다. <명탐정 필립>(The Big Sleep, 1946), <선셋 대로>(Sunset Blvd., 1950), <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과 같은 대표작들은 그러한 스타일을 이어받았다. 이러한 어두움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영화에서 컬러 영상이 보편화되었음에도 후대의 영화들로 이어진다.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차이나타운>(Chinatown, 1974), <세븐>(Se7en, 1995)을 보면 화면의 채도를 낮추어 어두움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필름 느와르는 점차 발전하면서 장르적인 변용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존 필름 느와르의 모호한 장르적 관습은 사라지고, 향유자의 관점에서 남겨지는 필름 느와르의 장르적 관습들은 이미지 혹은 분위기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홍콩 느와르가 그 대표적 예인데, 홍콩 느와르에서 고전적 필름 느와르에서의 조명과 카메라의 특징은 완전히 소멸된다. 대신 범죄 집단을 배경으로 총격전과 피의 이미지와 같은 남성적 상징 장치들이 부각된다. 어두운 야간 배경이 아닌 낮이나 밝은 조명 아래서의 총격전이 이뤄진다.’ 따라서 홍콩 느와르는 필름 느와르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스타일적으로 필름 느와르와 공통점이 거의 없는 장르로 보여지기도 한다.

 <흑사회>는 홍콩 느와르보다 필름 느와르에 더 가까운 시각적 스타일을 보여준다. 두기봉은 필름 느와르의 특징이라 언급되는 강렬한 음영의 대조, 어두운 밤, 사선과 수직 구도 등을 활용하여 불완전하고 차가운 느낌을 연출하여, 기존의 홍콩 느와르와는 다른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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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천장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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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첩혈쌍웅>

 

 홍콩 느와르는 필름 느와르와 다르게 화면의 색채가 화려하다. 홍콩의 야경을 이루는 거리의 네온사인이나 가로등이 밝게 빛나고 술집과 같은 유흥업소의 조명은 원색에 가깝다. 또한 인물들의 옷에 튀어 묻는 붉은 피는 강렬하게 표현된다. 홍콩 느와르는 색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나 감정적인 기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그림 2>, <그림 3>)

 반면에 <흑사회>에는 화면에서 색이 대부분 제거되어있다. 영화 속 유흥업소나 식당의 조명이 화려하지 않고 단조로우며 붉은 피와 같은 색감이 감정적인 충격을 일으키는 장면은 극히 드물다. ‘두기봉은 사회의 어두운 면에 존재하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조폭의 블랙을 부각시킨다.’ 그는 적은 광원을 사용하고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들을 대비시키면서 어두움를 더욱 짙게 만들거나 (<그림 4>) 실외는 밤을 주로 배경으로 하되 화려하지 않은 골목이나 조명이 거의 없는 거리를 활용하면서 전반적인 어두움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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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흑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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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흑사회>

 

 두기봉은 역광 촬영을 통해서 인물의 실루엣만 보이거나 인물의 얼굴이나 행동이 겨우 보일 정도로 연출한다. ‘그는 주광원을 사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만을 밝히고 기타 부조 광원은 윤곽을 그리는 작용만 하게 만드는데,’ 그 결과 화면에 생기는 음영은 범죄 세계의 은밀함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미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그림 6>, <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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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흑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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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흑사회>

 

 필름 느와르에서 화면의 구도는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불안정하게 연출된다. 따라서 수평보다는 수직, 사선의 구도가 주로 사용되는데 이러한 구도는 비일상적인 느낌을 주며 균형이 무너져 있는 듯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또한 광각렌즈를 활용하여 화면의 왜곡을 줌으로써 인물의 일그러진 내면을 드러낸다. 두기봉은 이러한 필름 느와르의 시각적 특징을 <흑사회>에 화면에 녹여내면서 영화의 긴장감을 세우고 인간의 어두운 내면이라는 주제를 보여준다.(<그림 8><그림 9><그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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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흑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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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흑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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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흑사회>

 

 필름 느와르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범죄와 죄악의 세계를 지배하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두기봉은 제한된 광원으로 만든 그림자를 활용하며 <흑사회>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한 화면에 담는다. 부감 쇼트로 촬영된 쇼트에는 지미의 그림자가 담겨져 있는데, 렌즈의 화각이 넓어서 그림자가 거대해 보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그림 11>) 이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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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흑사회>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흑사회>의 폭력 장면에서도,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폭력과 범죄를 묘사하는 필름 느와르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홍콩 느와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폭력이다. 홍콩 느와르의 폭력은 액션 자체가 과장되어 있는 시각적 스펙터클이면서 동시에 영웅적 인물로 인해 신성시되는 감성적인 드라마를 자아내는 요소이다. 비현실적 액션을 스타일리시하고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동시에 슬로 모션을 통하여 액션 장면의 결정적인 순간을 느린 동작으로 바꾸어 보여줌으로써 감성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반면에 <흑사회>의 폭력은 과장되어 있지 않다. 폭력은 일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느낌에 가까우며 카메라도 슬로우 모션이나 스타일리시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기봉은 폭력이 나타나는 상황 그대로를 포착하여 화면에 담아낸다. 록이 따이디의 머리를 돌로 내려쳐 죽이고 따이디의 아내를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보여줄 때 두기봉은 폭력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롱테이크로 화면에 담아낸다. 그는 죽음과 폭력의 과정을 건조하게 표현하면서 현실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비정한 세계의 잔혹성을 부각시킨다. 지미가 록의 부하들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어 개의 먹이로 주는 충격적인 장면은 폭력의 극단 속에서도 매우 고요하며 충성심, 믿음, 공동체 정신이 사라진 범죄 세계의 잔인하고 냉정한 면모를 강조한다.

 

3.1.3. 종합평가

 두기봉은 <흑사회>에서 홍콩 느와르의 관습을 변주하고 파괴하며 새로운 홍콩 느와르 세계를 펼친다. <흑사회>는 평론가로부터 홍콩 느와르를 새롭게 개척했다는 장르적 평가를 받은 동시에 홍콩 느와르가 가지는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되살렸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범죄세계를 통한 홍콩 사회에 대한 은유라는 측면에서 주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홍콩의 영화 평론가 Shu Kei“<흑사회>의 배경에는 홍콩의 투표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홍콩이 부정선거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는데, 온갖 부정 선거를 동원하는 정치적 술수가 나타나는 흑사회에 대한 묘사는 감독이 의도한 홍콩의 현실반영이다라고 언급한다. 또한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흑사회> 리뷰를 기고한 스티븐 테오(Stephen Teo)삼합회가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하려는 바로 그 사실은 보편적 투표권을 통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없는 홍콩의 처지에 대한 언급이라고 썼다’.

 결론적으로 두기봉은 영화 속 범죄 세계를 실제 홍콩 사회와 연결시킨다. 캐릭터에 현실성을 부여하며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일상적인 세계로 밀착시키고 홍콩 사회의 문제를 영화 속 삼합회 조직에 직접적으로 투영시키면서 홍콩이 겪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홍콩의 현실적 문제를 영화에 담으면서 두기봉은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 사회의 사회적 불안을 같이 담아낸다. 이러한 불안에 대해서 두기봉 감독이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흑사회>에서 묘사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997년을 맞이한 홍콩의 시대 상황인데요. 달라진 시대 상황에서는 직접 선거가 부재했죠. 가장 역설적인 대목은 삼합회조차도 오랜 표결의 역사가 있는데 하물며 홍콩은 그 반대의 경우라는 거죠. 홍콩 반환 후 10년 뒤에 <흑사회>를 제작했는데 많은 게 변한 시기였죠.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발생했어요.(...)일상에서 많은 부분이 불확실해졌어요. 사람들은 동요했고 불안감이 퍼졌습니다.

 

 중국 반환이라는 변화를 겪은 홍콩 사회와 그에 따른 홍콩 시민의 불안은 <흑사회>의 거대한 주제이다. 두기봉은 홍콩 느와르를 변주함으로써 홍콩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악당이 된 인물들만이 현실적인 공간에서 잔인한 암투를 펼치는 <흑사회>에서 영웅적 인물들의 부재는 홍콩 사회의 차가운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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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avybar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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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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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이 작품 볼 때 자막의 한계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막만으로 파악 힘든 게 많아서 중국어의 각 지역별 뉘앙스를 좀 알면 얼마나 느낌이 다를까 싶은 게 있었습니다.
16:45
22.01.23.
2등
스크랩 해놓고 챙겨 읽겠습니다. 두기봉 팬이라 반가운 글이네요!!
17:29
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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