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스 오브 구찌] 실화를 모르고 봤어야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저는 이 영화에 크게 매력을 못 느낀터라 아쉽습니다. 영화의 호불호를 말할 때 작품의 리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좋게 말하면 변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박치입니다.
음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던데 Bgm은 취향이었고, 영화의 이미지와 음악이 잘 붙어갈 때는 정말 재밌게 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음악이 없는 씬은 처졌습니다. 박자가 딱 딱 맞아 떨어지면서 같이 리듬을 타게 만들기보다는, 어느 구석에선가 틀렸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템포가 등장합니다. 펌프를 한다고 치면 miss는 안 나오는데 perfect의 향연 속에 good이 종종, bad가 가끔 뜨는 식으로, 정말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정확한 리듬이 아니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 편집이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을 내내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쁜 흐름에 힘을 더한게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실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언제 할거야? 하는 조바심이었습니다. 아마 몰랐다면 그래도 혹시 저게 복선인가? 하는 긴장감을 갖고 나름대로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영화보다 실화가 더 막장 오브 막장이라)
편집자도 조바심을 느낀건지 몇 십년의 세월이 지나가는 것도 잘 안 느껴지는 와중, 시행 직전 작전을 짜는 단계가 너무 급작스럽고 생뚱맞게 뾱 솟아오른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피나가 나오는 씬이 다 그래요. 피나와의 관계가 사건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긴 한데 뭐랄까 참 재미없게 구현했습니다. 스토리가 자극적일 뿐 연출과 각본이 기깔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이럴거면 작품 때려쳐라 싶은 일일 드라마를 본 느낌.
구찌 가문(하우스 오브 구찌)은 반대하고 현 구찌 소유주 관계자가 직접 출연하는 영화라니, 혹시 외적인 요소가 영화의 완성도에 영향을 준 거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개봉했던 [라스트 듀얼]의 편입니다. 무려 같은 이야기를 3가지 시나리오로 다시 보여주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며 영화를 따라 쑥-쑥- 나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도 이 작품의 좋은 점을 따져보자면 이미 말했던 음악. 예고편에도 삽입된 Heart of Glass는 이런 리듬일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터라 낯설면서도 본영화와는 잘 붙어서 좋았습니다. 가사를 찾아보니 영화에 그려진 사랑을 너무 잘 표현한데다 여러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해서 더 좋네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건 구찌 남자들이 아닌 파트리시아인데 모든 스타일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팜므파탈의 존재감은 확실히 대단합니다. 긴 시간 연습했다는 독특한 억양과 미모를 살려주는 검은 머리(가가의 퍼컬은 금발이 아니라 흑발이 착붙이었던걸로), 파란 눈이 시릴 정도로 안광을 돋운 모습은 이 거대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납득하게 만듭니다.
2세대인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로 분한 명배우들은 각기 다른 카리스마를 적절히 발산하며 많지 않은 분량에도 무게감을 확실히 만들어줍니다. 심지어 두 사람은 직접 대면하는 씬 없이 관계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합니다.
3세대 중 파올로 구찌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애증이 담긴 멍청이가 아니라 진짜 멍청이같아서 열연이라기보다는 부담스러웠습니다. 후손들이 반대한데 이해갈 정도로요. 실존인물을 이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되나 하는 불편함을 떨치면 알도처럼 멍청하지만 내 새끼 ㅠㅠ 하게 되는 마성을 갖고 있긴 합니다. 마우리찌오는.. 당신은 왜 또 나쁜놈인가. 패터슨을 다시 꺼내듭니다. 주체라기보다는 대상에 가까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파트리시아에게도, 영화 안에서도 사실 본인이 직접 욕망하기보다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편. 실화는 마우리찌오가 구애를 했다는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의 욕망을 거세하면서 손 안에 남은 것이 자기 욕망인 줄 착각하는 사람으로 만듦) 걸리적거리지도, 압도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배우들이 어디에 집중하고, 힘을 실어줘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에 나오는 호흡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피나는 아니야)
만약 이 영화에서 한 장면을 뽑는다면 저는 이 장면을 뽑겠습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인간이 내뱉는 공정성이란 얼마나 덧없고 편파적이고 지독한 것일까요.